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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08. 2018

나쁜 남자, 왜 나쁜 영화인가

다시 꺼내보는 영화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쁜 남자는 2002년 1월 개봉한 영화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 수상도 했고, 개봉 당시 한국에서도 상당히 이슈가 되었던 영화.
하지만 그 영화가 2018년 지금, 미투 운동과 함께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당시에는 나는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므로, 사실 이 영화의 존재는 거의 몰랐다.

워낙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에야 알게 되었지만, 영화를 보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접 보고 몇 가지 조사를 한 뒤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짤막짤막한 줄거리 소개와 내 생각들이 차례로 오가는 글이 될 것이다.








나쁜 남자는 오래된 영화인만큼 영화의 설정이나 조연의 연기, 카메라의 화질이 굉장히 올드하지만 그 시작의 첫인상은 어느 영화보다도 굉장히 강렬한 편이다.




사창가를 운영하는 조폭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장에서 우연히 한 여대생 선화(서원)를 보게 된다.
홀린 사람처럼 그 여대생을 계속 쳐다보는 주인공 한기(조재현).
남자친구를 기다리던 선화는 한기의 시선에 불쾌함을 느껴 자리를 피한다.
조금 늦게 나타난 남자친구와 만나서 알콩달콩한 재회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사이를 갑자기 한기가 비집고 들어가 강제로 키스를 한다.
선화도 저항을 해보고 남자 친구도 떼어내려고 애를 써보지만 요지부동.
결국 한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응징을 당하고, 선화도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시원하게 욕을 해주며 그 자리를 떠난다.




이 장면은 스틸컷 미리보기나 블로그 후기들에서 어느 정도 미리 본 장면이라서 충격이 조금은 덜 했는데, 만약에 이 장면을 모르고 봤다면 더 큰 충격을 받았을 법한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공공 장소에서, 남자친구도 옆에 있는 상황에서, 오로지 힘에 제압되어 당할 수 밖에 없는 여자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장면이다. 보는 나조차도 그 무력함이 온 몸에 스며들 만큼 허탈했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피해자를 어느 정도 '응징(근처에 있던 남자들에게 떼로 맞음)'은 하고, '작은 복수(침을 뱉고 욕을 함)'도 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되지만, 여기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경찰을 부르지 않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2001년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겠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고, 경찰을 불러도 이미 중범죄를 저지른 조폭에게는 큰 죄목도 되지 않았으려나.




한기는 그 날 이후 같은 광장에서 계속해서 선화를 기다린다.
어느 날, 그 때처럼 선화는 남자친구와 그 자리에서 만나서 평범한 데이트를 즐기고 한기는 계속 선화의 뒤를 밟는다. 남자친구는 선화를 데리고 모텔에 가려고 하지만 선화는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기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교묘한 술수로 아무것도 모르는 21살 선화에게 거액의 빚을 지게 만들고 그 돈을 갚기 위해 사창가에서 일하도록 만든다.
선화가 지내면서 일도 하는 방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은 사실 반대편에서 그 방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수 유리.
한기는 선화가 방으로 들어갈 때 마다 그 곳으로 가서 선화를 몰래 훔쳐본다.




첫번째 장면 만큼이나 충격적인, 아니 좀 더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 장면.

배우 조재현이 라디오스타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로 언급했던 게 바로 이 장면이다.

과한 장면인 것 같아 김기덕 감독도 이쯤에서 멈추자고 했던 씬인데 조재현 본인이 조금만 더 찍자고 졸라서 더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본인 입으로 이야기 한 장면.

보는 내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장면이었다.

글쎄, 모르겠다.

성폭행, 성폭력을 주제로 당사자가 아니면 느끼지 못할 그 참담한 심정을 영화로라도 풀어내는 작품들은 몇 있다. 그런 영화들은 정말 이야기나 기사만으로는 공감하지 못할 그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목적성이 있어서 이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윤리적인 메세지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뭐랄까. 딱 네글자다.

막무가내.





선화는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한기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기를 찾아가서 울분을 토하고, 사창가를 나가려고 하지만, 들어올 땐 쉬워도 나가기는 어려운 감옥같은 그 곳에서 선화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기 부하의 도움을 받아 창문을 넘어 겨우 탈출해 보았지만, 집 대문 앞에서 한기에게 다시 붙잡힌다.
한기는 선화를 바다로 데리고 가는데, 둘은 거기서 어떤 여자가 붉은 드레스를 입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당황하여 동공이 흔들리는 선화와 달리 한기는 그저 무표정하게 그 여자를 바라보았고, 선화는 그 곳에서 자살한 여자가 모래 속에 묻어놓은 찢어진 사진 조각을 가지고 돌아온다.
사진을 이어 붙여보았더니 한 커플이 나란히 찍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얼굴 부분의 조각이 없었고, 얼굴이 없는 그 사진을 선화는 거울에 붙여놓고 멍하니 바라본다.
결국 선화는 점점 손님들에게 반항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가게 앞에서도 우두커니 앉아만 있던 예전과는 달리 그 곳의 모습에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기가 부하의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감옥에 들어가 사형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선화는 자신의 마음이 한기를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한기의 부하가 선화에게 이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된다고 보내주었지만, 선화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사창가에 남는다.





본래 영화란 것이 관객을 좀 들었다가 놨다도 해야하는 법인데, 이 영화는 계속해서 내 마음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보내려는 것 같았다. 이유가 뭘까. 순진하기 그지없던 여대생이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삶에 순응해 나가는 모습이어서? 거기서 포기해버린 캐릭터 설정이 너무 답답해서? 아니, 아니다. 여자 주인공이 반항하려고 할 때마다 폭력을 당하고, 결국 평범한 사람 중 한명일 뿐인 이 여자 주인공은 환경에 순응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풀어나가는 이 흐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아무런 특별한 계기도 없이 선화가 한기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증오가 사랑으로 갑자기 바뀌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실제로 애인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람들은 때리고도 다시 잘해주는 애인의 모습에 파렴치한 잘못을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것은 폭력이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위장하였기에 더 악독한 폭력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폭력에 대해서 아무런 제어 장치가 없다.

 서로 비슷한 권력의 조폭들이 싸우는 것이 위주가 되는 액션 영화들은 그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급의 위치에 있는' 상태에서의 폭력이므로 감정적으로 불편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강자가 사회적 약자, 특히 신체적으로 불리한 여자 주인공에 끊임없이 '신체적 폭력', '욕설', '성폭력'을 일삼고 있으니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충심 넘치는 한기 부하가 한기가 사형당하는 것을 막아서 한기는 다시 풀려나게 된다.
다시 재회한 한기와 선화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한기는 선화를 자유롭게 보내준다.
새장에 오래 갇혀 있었기에 나는 법을 잊어버린 새처럼, 선화는 더 이상 지난 날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다 한기와 함께 갔었던 바닷가에 갔다가 찢어졌던 사진의 마지막 조각, 얼굴 부분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사진 속의 남자는 한기였고, 자살한 여자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진 속의 여자는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선화는 사진 속의 여자의 옷과 비슷한 원피스를 사서 갈아입고 바닷가로 돌아온다.
바닷가에는 한기가 이미 와있었다.
둘은 작은 트럭을 준비해서 어촌을 돌아다니며 두 사람이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간다는 결말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모르겠다. 솔직히 이미 편견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그 편견을 억지로 버리고 생각해본다고 해도 도무지 선화의 행동과 결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편견이 없었다면, 감독의 설명이 불충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겠지만, 이건 오히려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 우울해져서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기분.







나쁜 남자가 논란이 되어 나처럼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굳이 아까운 낭비하지 말고, 위의 줄거리를 읽고 판단하시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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