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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25. 2019

혼자이지만 더욱 더 혼자이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꿈 이야기 -

그리고 내 맘대로 해몽하는 이야기 (조금 잔인할 수 있음)








1월 24일 아침 나는 울면서 잠에서 깼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꿈에서 서럽게 울었는데 그 감정 그대로 울면서 잠에서 깼다. 꿈에서 느껴졌던 고통을 아직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꿈속에서 나는 어떤 이상한 창고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공간은 휑한 거실이고 두 사람이 겨우 잘 수 있을 만큼의 작은 방 하나가 있는 집이었다. 생긴 건 둘째 치고 그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문을 잠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앞문도 뒷문도 잠글 수가 없어 아무나 들어올 수 있었다. 심지어 생긴 것도 허름해서 지나가던 사람도 뭐하는 곳인가 슬쩍 열어볼 정도였다. 여러개 난 창문 중 하나는 구멍이 뻥 뚫려 있어서 바람이 슝슝 들어와서 추웠다. 꿈속에서도 그 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계속 빨리 이사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한 무리의 지인들이 연락도 없이 집에 들이닥쳤다. 서로 아는 조합도 아닌데, 그 개개인은 나랑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얼굴은 알고 예의차리는 사람들이었다. 무대뽀식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나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소심한 나는 그 사람들이 내 거실에 앉아서 떠들다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중에는 좀 친한 친구가 와서 내 방에서 자고 갔다. 나는 잠도 오지 않는데 친구가 잘려고 누우니 나도 따라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결국 친구는 잠들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방 밖으로 나왔다. 쌩한 거실이 추워서 따뜻한 곳을 찾아서 집 밖으로 나섰다. 집 근처에 무슨 온천 수영장 같은 것이 있어서 그곳 어드메 따뜻한 곳에서 좀 쉬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량배 같이 생긴 사람들이 나한테 뭘 좀 도와달라고 했다. 뭔가 번호를 선택하는 거였나, 복권이었나 아무튼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나는 선뜻 도와드렸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바로 당첨이 되서 당첨금을 받게 되었다. 엄청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천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도와주었으니 나에게도 그 돈을 나눠달라고 했다. 내 말을 영 내켜하지 않던 불량배 우두머리는 선심 쓰는 척 아주 쥐꼬리만큼 준다고 했다. 나는 겁도 없이 더 큰 액수를 불렀고, 불량배 아저씨는 단칼에 거절했다. 화가 난 나는 그 아저씨의 복권 종이 같은 것을 찢어버렸다. (꿈이라서 그런지 겁이 없었다.)

그러자 불량배들이 양쪽에서 내 팔을 잡더니 갑자기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그 칼로 내 허벅지 안쪽을 아주 얇게 하지만 아주 천천히 그었다. 왼쪽과 오른쪽에 줄을 하나씩 긋는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했다. 깊이 베는 건 아니라 베이는 고통은 견딜만 했지만, 그 칼을 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 게다가 그 상대가 불량배라는 사실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 신체에 느껴지는 고통이 그 열배 백배로 훨씬 더 두렵고 아팠다. 그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나를 더 깊이 찌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협박을 하는 듯 했다. 더 깊은 상처를 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두려워 비명을 지르고 우는 내 모습에 만족을 했는지 그들은 웃으며 떠나갔다. 살이 베인 고통 보다 이런 일을 겪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섭고 서러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데 갑자기 동생이 나타났다. 동생이 내 상처를 살펴봐 주는 동안 나는 아빠한테 전화를 하고 있었다. (꿈에서 아빠가 경찰이었다. 실제는 아님.) 그렇게 전화기 신호가 가는 걸 들으면서도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깼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든 생각은 '아침부터 울면 안되는데.' 였다. 요즘 아침에 감사하면서 기분좋은 하루를 시작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얼른 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요즘은 마음이 안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왜 이런 꿈을 꾸었나 자꾸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건 아마 최근의 내 가장 큰 고민들과 맞물려 있는 것 같았다. 전날 잠들기 전 봤던 영상 속의 질문과 답이 생각나서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계속 혼자 있고 싶어지고 학창 시절 친구가 아닌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두려운데 왜 그럴까요?' 



짧은 질문인데 참 공감이 많이 갔다. 이런 사람이 나뿐이 아니구나. 

답변은 이랬다.



'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두려운지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나도 한 번 생각을 해보다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아마 그게 꿈으로 나타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에 문이라는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마음대로 넘어다닐 수 있는 낮은 담장 하나 정도가 있는 마당이 있는 초가집 같이 오픈된 곳. 그런데 그 초가집은 유리로 된 초가집이다. 처음엔 나도 잘 몰랐다. 그게 유리인지, 흙인지도. 내 마음이 이렇게 섬세한 줄은 미처 몰랐다. 모든 사람이 다 이런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열린 문으로 누구든 드나들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게 맞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록 흠집만 생기고 깨져갈 뿐이었다. 깨진 조각을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두었더니 들어온 사람들이 돌아다니다 밟고 상처를 입고 떠나기도 했다. 내 마음을 돌본 적이 없던 나는 그 사실도 몰랐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 내 마음을 돌아보니 이건 거의 폭삭 주저 앉기 일보 직전. 일단 나부터 살려야 겠기에 깜짝 놀라서 집 주위에 높이 높이 장벽을 쌓아버렸다. 급하게 벽을 쌓느라 문도 달지 못한 채로 말이다. 




내 마음은 두려운 거다. 

내 마음이 다칠 일도,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할 일도.

지금은 그저 혼자 있는 것이, 나도 살리고 다른 누군가도 다치게 하지 않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 더 철저하게 혼자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 꿈을 꾸었다. 

이 꿈의 의미가 뭘까. 

그냥 내 무의식의 반영...?

아니 난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뭘까.

이토록 생생한 꿈을 통해 나는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 걸까.




꿈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문을 잠글 수 없는 집, 아무때나 들이닥치는 사람들, 내게 상처주는 존재들.

그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키워드가 두 가지 떠올랐다.

'예쁘고 튼튼한 문'과 '베푸는 마음 또는 사랑'을 가지는 것.

현대인의 집은 현대인의 마음을 보여준다.

과거 우리 조상님들이 살았던 집은 현대의 우리가 사는 집에 비하면 오픈된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담을 넘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비밀번호를 모르거나 열쇠가 없으면 쉽게 들어갈 수가 없다. 아주 꼭꼭 잠겨있다. 마치 현대인들의 마음처럼. (물론 그걸 뚫는 도둑들도 있지만.)




하지만 내 마음에는... 그냥 문이 없는 것 같다.

 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난 그저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열어줄 문도 없었다. 그러니 천천히 문을 만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에 튼튼한 문을 달아두고 거기에 예쁘게 또는 정중하게 안내문을 적어두면 아무나 벌컥 벌컥 열고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튼튼하고 예쁜 문을 만든다는 건 나라는 사람도 지키면서 상대도 서운하지 않게 하는 소통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푸는 마음 또는 사랑'.

꿈에서 복권에 당첨된 불량배들에게 내가 욕심내거나 심술부리지 않고 베푸는 마음으로 그저 주었다면 나는 비록 불량배와 엮였다고 한들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 속에 깨진 유리 조각이 늘어날수록 내 마음에 원망과 화의 지분이 점점 늘었다. 

요즘 나는 조금만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나를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다. 과거의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 생각도 안해본 일이었다. 지금은 나에게 상처가 될만한 씨앗만 보여도 벽을 세운다. 조금 과잉 보호를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래야만 살 수 있다, 일단 지금은. 문제는 그러다보니 선량하게 베푸는 마음을 잊어간다. 내가 손해를 본다는 건, 곧 '나를 해친다'는 의미로 번역되어 손해 보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상념이 나를 강하게 쥐고 흔든다. 절대로 손해를 봐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사실 그건 아닌데. 내가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를 상처줄 수 없듯이 내가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내게 손해를 끼칠 수 없다. 왜냐면 나에게 끼치는 상처도 손해도 결국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꿈이 더 이상 무섭거나 아프지 않고 하나의 교훈처럼 생생하게 가슴에 박혔다.





그 문을 만들기까지, 그 사랑으로 가득찰 때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원히 문을 닫은 채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것 만으로도 오늘 하루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짐을 느낀다.














글: 노이

커버 이미지: Photo by Anthony Tr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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