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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08. 2019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기까지



나에게는 오랜 시간 소꿉친구로 지내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연락하는 정말 오래된 사이이다. 셋이서 늘 함께 놀았던 다른 친구도 있었지만, 다른 친구와는 정말 이유도 없이 그냥 자연스레 서로 연락을 안 하게 되었고, 결국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 건 이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도 웃길 만큼 이 친구와는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다. 낮에는 붙어서 수다를 떨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전화기를 붙잡고 수다를 떨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 학교가 달라지면서 자주 볼 수 없었고 대학도 서로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더더욱 자주 보기가 힘들어졌음에도 우리는 꼭 오랜만이라도 한 번씩 만나서 그간 쌓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는 했다. 평소에 자주 카톡을 하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우리 사이를 멀게 느껴지게 하진 않았다. 그 뒤로도 나는 서울에, 친구는 부산이나 고향에서 지내면서 어쩌다 한 번씩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의 장거리 우정은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문제는 우리가 다시 한 동네에 살게 되면서 일어났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한동안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편입 공부를 하려고 고향에 내려가서 지낸 적이 있었다. 친구는 당시 프리랜서였는데 마침 고향에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되고, 함께 카페에 앉아 나는 공부를 하고 친구는 일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작은 스트레스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그것도 편입 공부를 하는 스트레스와 줄어가는 통장을 보며 공부를 그만두고 다시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스트레스 속에 쌓여갈 무렵, 그동안 참아왔던 친구의 행동들을 더 이상 참기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친구는 오래전부터 습관적으로 늘 약속 시간에 늦는 버릇이 있었다. 나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늘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는 늘 그것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래, 기다리는 동안 다른 걸 하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만나도 문제였다. 우리 둘은 만나기만 하면 수다를 떨어온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걸핏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다. 점점 더 조용한 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서실을 끊고 다니기 시작했다. 겉으론 쿨한 척 해도 소심한 나는, 별 것도 아닌 그런 일을 친구에게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다른 핑계를 대면서 친구가 만나자는 약속들을 거절했다. 그때까지는 나의 감정을 솔직히 말함으로 인해 상대를 서운하거나 슬프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을 정말 두려워했다. 그리고 친구는 누구보다 내 상황을 모두 다 알고 있으니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편입 면접을 끝낸 날이었다. 얼마 전부터 친구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지만, 면접 준비 때문에 같이 가주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려 영화를 보러 가자고 먼저 연락을 했다. 이 날 사달이 났다. 나는 일단 친구가 되면 절대 싸우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친구와 싸운 건, 그것도 정말 친한 친구와 싸운 건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친구는 언제나처럼 약속 시간에 늦었고, 나는 그걸 감안하고 전날부터 표를 예매해두자고 제안했었다. 친구가 싫다는 바람에 결국 현장 예매를 하러 왔는데 또 아슬아슬했다. 나는 이미 이 상황 만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는데 친구가 그것도 모르고 이것저것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영화 표를 끊으면서 하나둘 일이 꼬이기 시작하자 나는 결국 폭발해 버렸다. 처음으로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다. 화를 내고도 미안한 마음에 밥 사 주면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겨우겨우 화를 삭이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에 친구도 서운했는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완전히 꼬였었다. 며칠이 지나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과를 했지만, 사실 나는 이 날 완전히 솔직해지지 못했다.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사과를 했고, 지금까지 내가 너의 이런 행동들로 서운했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첫째로는 그 친구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습관을 고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로는 그래서 고칠 수 없는 그 일을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어쩌면 내가 쪼잔한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속으로만 커진 원망을 나는 여태껏 품에 안고 살아왔다.


그 후에도 우리는 몇 번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지만, 나는 내 마음에 생긴 벽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 다 풀린 척을 했다. 당연히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고향에 갈 때마다 그 친구를 보는 것이 나의 관례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가까웠던 그 친구를 보는 일이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독일에 오면서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내게 상처 줬던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들의 마음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언젠가 한 번 솔직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제 와서? 갑자기?'

이대로 영영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빨간 동그라미 속에는 6이라는 숫자가 있었고 작은 프사 속에는 웨딩 사진이 들어있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우는 이모티콘이었다. '결혼 얘기구나' 하고 짐작이 갔다. 왠지 마음이 불편해져 메시지를 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혹시 나에게 말하는 것도 깜빡하고 벌써 결혼을 했나?'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만큼 잘 까먹는 친구이기도 하고, 차갑게 변한 건 나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참 신기한 것이 이번 주에 불교대학 과제로 수행 중인 과제가 바로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를 생각하면서 21배를 하는 것인데, 마침 그 시기에 친구에게서 이런 연락이 온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하필 내가 불대를 다니고, 하필 이번 주 주제가 원망이고, 하필 이 친구가 이때 연락이 오다니. 

절을 하면서 친구를 생각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잘못한 일도 아닌데 내가 작은 일을 너무 키워왔구나.'

'내 마음의 짐을 만들고 품어온 것은 결국 친구가 아니라 나였구나.'

'그래도 친구가 이렇게 얼굴에 '나 아직도 화났어요'라고 쓰고 다닐 만큼 모든 감정이 다 티가 나는 나를 알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연락해주고 다가와서 이만큼이라도 우리 관계가 유지되었구나.'



그렇게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친구의 카톡을 확인했다. 

역시 결혼 이야기였지만, 그 내용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의도한 건지 아닌 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는 다다음 주 일요일인 2월 24일, 그러니까 내 생일에 결혼을 한다고 했다. 

가장 친했던 만큼 딱 그만큼 다시 멀어진 친구가 내 생일에 결혼을 한다. 

예전 같은 사이였다면 이렇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아도 벌써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 직전까지도 친구를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복잡 미묘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결혼식에 가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대로 축하해줄 형편도 못 되는 내 상황에 한 번 더 마음에 파도가 밀려온다.



오늘이야말로 어리석었던 나의 아집을 내보내고, 그리웠던 친구를 다시 마음에 들여야겠다. 







OO아, 너에게 어떻게 내 이야기를 하면 좋을 지 몰라서 이렇게 글로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 뿐이네.
그동안 솔직해지지 못해서 진짜 미안.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니 모습을 좋아해주지 못해서 미안.
솔직하게 말해도 니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서 미안.
너무 늦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우리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결혼 정말 축하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신부로, 아내로, 한 여자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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