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10. 2019

서른세살,  여전히 엄마의 강아지이고 싶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국에서의 추억을 하나 끄집어 내보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약 3개월 전, 올해 4월이었다. 그동안 제주도는 일로만 다녔지 여행으로 많이 다녀보지 못했던 나는 드물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여자끼리 떠나는 가족 여행'. 즉, 엄마와 여동생 나, 이렇게 여자끼리만 셋이서 오붓하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자는 컨셉이었다. 하지만 오붓하고 싶었던 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출발 전에는 엄마의 신분증이 보이지 않아 비행기 출발 직전까지 호들갑을 떨며 겨우겨우 간신히 비행기를 탔고(다마스 끌고 신분증 전해주러 공항까지 날아온 아빠에게 감사...) 돌아올 때는 내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비행기 수화물 체크인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비행기를 놓쳐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 날 비행기로 돌아와야 했다. 이것저것 몸고생, 마음고생, 돈 고생했던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들이 훨씬 훨씬 더 많다. 그 기억 속 엄마를 더듬는 조각조각들을 기록해 두는 글.







여행 중 만난 안갯속에서 신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나





#1 엄마 강아지



운전하고 가던 중, 어떤 길에서 갑자기 심하게 안개가 끼었다. 날씨와 지형적인 영향인 것 같았다. 그래서 속도를 늦춰서 운전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마침 너른 들판에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장소였다. 차를 멈추고 내려서 우리도 나무 옆에서 사진을 찍어보려고 다가갔다. 하지만 안개가 너무 심하게 끼어서 나무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바람은 불고 추워서 다들 안개가 지나가길 기다리거나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 와중에 신이 난 강아지처럼 잔디밭을 방방 거리고 뛰어다녔다. 평소에 좀처럼 보기 힘든 자연현상을 보면 흥분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혼자였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진 못했을 것 같다. 사진을 찍어주던 동생이 있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마음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저기서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애쓰지 않아도, 어느 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어도 엄마 눈에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겠지만, 나는 더욱 더 철없는 아이처럼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엄마 앞에서 이렇게 뛰어다닌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오히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조금 세상의 때가 많이 묻고 예전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걱정을 하는 서른이 훌쩍 넘은 딸이 되었지만, 하지만 여전히 그때 그 시절 엄마가 기억하는 천진난만한 당신의 딸이라고 말이다.











#2 엄마랑 같이 오면 좋을 텐데




뜻하지 않게 이 나라 저 나라로 많이 돌아다니게 되면서 예쁜 장소, 멋진 장소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엔 그곳의 정취에 감탄을 하고 그다음엔 그곳을 온몸으로 탐험하다가 그러고도 정말로 마음에 드는 곳이면 마지막에 꼭 이런 생각이 든다.





엄마랑 같이 오면 좋을 텐데



요즘은 부모님 친구분들은 해외로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데 우리 부모님은 일 때문에 멀리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시지를 못한다. 그런데 비단 일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엄마는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을 너무 무서워한다. 제주도는 이제 두 번째라 조금 괜찮아진 모양이지만,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는 이륙하는 순간 같이 탄 남동생의 손을 꼭 잡았더랬다. 한 번은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독일로 오라고 이야기해본 적도 있었지만 엄마는 극구 사양했다. 열몇 시간 걸리는 거리를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건 엄마에겐 마치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무섭다는 사람을 억지로 비행기에 태울 수는 없기에 나는 설득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해외에서 좋은 장소를 알게 되면 늘 그리움과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든다. 친구의 어머님이 친구를 보러 함부르크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우리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이 참 많은데. 하지만 당장 이루기 어려운 소원을 생각하며 아쉬워하는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제주도로 떠났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 글렌코는 꽤 만족스러웠다. 마셨던 음료들도 맛있었고, 카페에 꽃을 같이 파는 컨셉도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지만 카페보다 몇 배는 더 큰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봄이 되면 함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에 꽃이 한가득 피어있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었다. 이 날은 이 곳에서 그 기억을 대신했다. 널찍하게 열린 문밖으로 푸르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지던 곳.







#3 "엄마 사진 사진"




여행에서 남는 건 역시 사진인 것 같다. 그게 엄마와의 여행일 때는 더더욱.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상에서는 엄마랑 사진을 같이 찍거나 엄마를 찍어주는 일이 많지 않다. 늘 삶의 특별한 순간에만 카메라를 드는 나. 어쩌면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지루하기 짝이 없는 듯 느껴지는 고루한 일상에서 더 많이 카메라를 들었어야 했다는 반성이 밀려온다.


'새 차를 뽑았다며 다마스를 끌고 공항에 마중 나온 엄마의 모습, 아침잠도 많으면서 엄마랑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아침 일찍 엄마 차를 따라 타고 엄마 출근길을 따라가던 그 순간들, 엄마가 그냥 냉장고에 있는 나물에 대충 비벼준 그 나물비빔밥, 늦은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쪼개서 엄마 손잡고 영화 보러 가던 그 시간들'


나중에 가장 많이 그리워할 시간은 결국 이런 순간 들일텐데 그 시간을 기록해 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제주도를 여행한 추억들을 떠올릴 때보다 오히려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 더 왈칵 눈물이 났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의 엄마와의 일상을 추억하며 촉촉해지는 마음을 달랬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부모님의 사진을 많이 남기는 것도 좋지만, 영상을 많이 남겨두라고. 나중에 나중에 자신이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부모님의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이 온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꼭 엄마와 아빠를 24시간 따라다니며 엄마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밀착 셀프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





엄마, 사진 사진






#4 엄마 뭐 먹고 싶어?



엄마는 아빠와 입맛이 조금 다르다. 아빠는 웬만해서는 느끼한 서양 음식은 잘 못 드신다. 그래서 가족이 다 같이 식사하는 날에는 보통 한식을 먹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엄마랑 하는 여행이니만큼, 좀 느끼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밤에 시간이 늦어서 치킨을 시켜서 호텔 방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먹은 것도 재미있었지만, 제주도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주도 남쪽의 테이블 앤 데스크라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던 '가지, 호박 라자냐'였다. 예쁘고 좋은 장소에 가면 엄마랑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인생 라자냐를 독일에서 처음 먹었다. 그때는 함부르크에 출장을 왔을 때였는데, 헝가리 친구가 커다란 그릇에 집에서 만든 라자냐를 들고 와서 내가 묵던 숙소에 주고 간 적이 있었다. 특제소스로 만든 라자냐라고 하길래 그냥 하는 말인가 보다, 했는데 그 라자냐는 정말로 맛이 있었다. 워낙 큰 그릇에 만들어와서 같이 먹고도 많이 남았길래 매일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 후에 한 조각씩 잘라서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면 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채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라자냐를 잘 먹지 않게 되었다. 보통 라자냐에는 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자냐를 먹는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었는데, 고기가 메인이 아니라 가지와 호박이 주인공인 라자냐라 너무 반가웠다. 나에겐 새롭고 기쁜 충격이었다.






가게의 느낌이 너무 좋아 여기는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엄마와 함께 한 테이블 앤 데스크에서의 모든 경험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우리 집 고향은 작은 도시다. 드문드문 새로운 가게가 생기기는 하지만, 그 가게가 모두 맛이 기가 막힌 것은 아니어서 서울이나 제주도처럼 숨어있는 유명한 맛집을 일부러 찾아가서 맛깔난 음식을 먹고 희열을 느끼는 경험을 자주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엄마와 이 곳을 다녀온 모든 순간순간들이 나는 참 좋았다. 엄마는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무의식에는 이 순간들이 하나의 세포로 자리 잡길 바랬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이 가게를 찾아가던 길, 가게를 들어설 때의 느낌, 독특한 인테리어가 마음을 톡톡 건드리는 감수성 마사지, 그 자리에 앉아 빛을 발하지만 절대 손님 곁으로 오지 않는 가게 강아지, 다른 식당처럼 고르느라 머리 아플 필요 없이 그냥 다 시키면 되는 단순한 메뉴, 아기자기한 앞접시, 오픈 키친에서 우리가 앉은 테이블까지 고스란히 날아와 코끝을 지나 혓바닥을 쾅쾅 두드려대는 맛있는 냄새, 정갈하면서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에서부터 그 기대를 뛰어넘는 맛, 그리고 후식, 다정한 인사까지.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맛있어서 사람이 바글바글한 맛집에 가는 매력도 분명 있지만, 음식뿐만 아니라 가게의 외관부터 벽에 걸린 그림 하나, 작은 수저 하나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루는, 이를테면 우리의 감수성까지 배불리 먹여주는 이런 맛집을 나는 엄마가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5 엄마가 내 엄마라서 다행이야



사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는 엄마와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워낙에 서로 애정 표현도 자주 하지 않고 서로의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 채 커버린 우리 가족이라 평범한 일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워낙 어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시간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함께 간 이 여자 세 명이 모두 그런 일에는 젬병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쳐서 비행시간이 달랐던 여동생만 먼저 돌아가고 엄마와 단둘이 호텔방에 누워있게 되었을 때에도 엄마는 갑자기 고스톱 게임을 핸드폰에 깔아달라고 하더니 열심히 맞고를 쳤다. 엄마가 샤워를 하는 동안 엄마가 게임에서 잃어놓은 돈을 내가 다시 땄다. 그리고 티브이에 재방송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각자 잠이 들었다. 일상에서도, 여행을 와서도 이 마음을 표현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나는 대체 언제쯤 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카톡으로는 예전보다 더 표현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손 꼭 잡고, 꼭 끌어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애정 표현을 다 해주고 싶은데. 이렇게 모든 게 어색한 몸만 큰 어른이가 돼버린 나는 언제 엄마의 귀에 대고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엄마가 내 엄마라서 다행이야





여행은 때로 여행을 떠나는 목적지에 대한 희열보다 떠남으로 인해 더 깊이 느껴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한다. 이번 여행은 내게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제주에서의 참 좋았던 그 순간들이 모여 꽃가루가 되어 내 일상 위에 흩뿌려져서 내 일상을 더 예쁘게 만들어주는 느낌.

일상으로 돌아오기 싫은 게 아니라, 한 뼘 더 행복해진 내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낌.

처음엔 몸이 멀리 떨어져 있어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가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작년, 올해 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더 서로가 애틋하고, 평소 같으면 내기 힘들었을 시간을 기꺼이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멀리 떨어져 있는 게, 꼭 슬픈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필명 노이.

30살이 되기 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쓰려고 독일에 왔다가, 독일이 너무 좋아서 2년째 거주 중입니다.

탈회사원을 선언한 뒤 먹고살기 위해 독일에서 글 쓰고, 영상 찍고, 구매대행 일을 하고 있어요.


- 글: 노이

- 커버 이미지: Photo by Vincent Delegge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