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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07. 2019

연애를 오래 해본 적이 없다.

아니 못한다. 지금도.





남자는 다양하게 많이 만나봐야 해.




스무 살 무렵,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살고 있던 사촌 언니가 연애 꼬꼬마였던 내게 해 준 말이었다. 그때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에이, 나 혼자 어떻게 그래. 남자들이 많이 만나줘야 많이 만나지. 
내가 많이 만나고 싶다고 만나지나?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의도치 않게 적지 않은 연애를 하게 되었다. 참 많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받기도 하고, 내가 이별을 먼저 꺼내기도 하는 등 다행히 일방적으로 차이기만 했던(?) 연애들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 대부분의 연애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기간일지라도 늘 온 마음과 진심을 다했기 때문에 그들의 빈자리가 남기는 고통은 매번 상당히 아프고 쓰라렸다. 익숙해지지도 않는 이별이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20대 후반쯤 그것은 어느새 내 콤플렉스가 되어있었다. 그래, 만나다 보면 누구나 이별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연애가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나?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하기도 전에 스스로 그런 의문을 품게 된 건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존감을 회복한 이후에 겪게 된 연애에서 나는 '이별'에 의연해질 수는 있었지만, 역시 '연애 기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상처와 슬픔에 허우적거리던 과거의 연애들과는 달리 자존감을 회복한 이후의 연애에서는 상황을 나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침착해지다 보니 이별을 하면서도 만났던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그동안 서로가 느꼈던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통해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니 이렇게 마음이 잘 맞다니, 인연인가 봐.'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다니 나도 믿고 마음을 열어보겠어.'




연애 초반, 상대가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모습에 감동하고 그 마음에 퐁당 빠지고는 했다. 나의 어떤 행동에 의해서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존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인연', '운명' 이런 단어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최근 지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이지만 나는 생각보다 대화를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들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런 재능들이 남자들로 하여금 '아니 이 여자처럼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것. 하지만 나는 그 문을 내가 연 줄 모르고 '운명'이나 '인연'이라 생각하고 네가 먼저 문 열고 들어왔으니 너의 마음을 보여줘 봐,라고 기대를 하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나와 맞는지 미처 알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이미 문 다 열어놓고 '어서 들어와'라고 두 팔 벌려 환영해놓고는 막상 만나보니 '어라, 엄청 안 맞잖아?' 하고 헤어지는 일의 반복. 




뭐, 가끔은 모르고 시작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으니 그건 그러려니 하지만, 또 하나 깨달은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의 직감. 엄청날 정도는 아니지만 내 인생 살아가고 내 몸 건사하는 데 있어서 직감이 꽤 들어맞는 편이고, 상대가 보여주지 않는 부분까지 잘 읽는 편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닫고 있다. 그것이 오해일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직감보다는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해서 믿으려고 해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직감이 맞았어, 하는 경우가 반복되다 보니 이것도 무시할 수는 없게 돼버렸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상대가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짧은 시간 안에 상당히 빨리 캐치하는 편이고 내가 이 사람의 단점을 감수하고 연애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빨리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사귀기 전에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나는 친구 관계에서 보는 한 사람의 모습과 연인이 된 이후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말로 나와 사귀면서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찌 보면 다소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상대를 읽은 후 나도 모르게 선을 긋기 시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가진 독특함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이고, 그것을 깨달은 지금에도 희망을 가지고 여전히 누군가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는 않지만, 나 자신조차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린 나란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짧은 연애'와 '이별'을 반복한다고 해서 내가 못났다고 나를 책망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잘 몰라서 내게 누가 맞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다 꿈꾸던 '백마 탄 왕자님'만 꿈꿔왔던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즈음. 나를 사랑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정말로 내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다. 대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나는 내 사람을 빨리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거야!'

'내가 못나서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너무 특별한 사람이라서 짝을 찾는 데 좀 더 오래 걸릴 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미 나 자체로 소중하고 내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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