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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14. 2019

독일 대학원을 준비하는
30대 백수의 심리 상태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적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올랐다. 며칠 전부터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하루하루 정신줄을 부여잡으면서 지내왔다. 얼마 전 올렸던 글 '이럴 줄은 몰랐다'에서의 이야기처럼, 내가 이렇게 독일에서 대학원 지원을 준비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한국도, 일본도, 미국도 아닌 독일. 그리고 나는 이렇게 어딘가에 지원해야 할 때면 엄청나게 극도로 예민해지는 유형의 인간이다.




오늘 아침까지는 당장 내일모레까지 급하게 지원서를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 바짝 조이는 긴장감에 그동안 늘어지기 좋아했던 나를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찰싸악 찰싸악 때려댔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그것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까지 더해지면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자는 것조차 스트레스로 느끼는 인간이다. 

씻는데 소요되는 시간, 먹는 데 소요되는 시간, 자는 데 소요되는 시간까지 모두 다 이 급한 일에 올인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증 같은 것에 시달린다. 잘 먹고, 잘 자면서 준비해도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자면서 준비하니 스트레스가 배가 된다. 운동도 조바심이 나서 못 가겠다. 그러면 더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는 것을 정말 너무 잘 알면서도 못 가겠다. 

그래도 점심쯤이 되어서 한 건을 해결하고 나서는, 일정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나마 조금 긴장이 풀렸음에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불안을 애써 외면하려는 저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중할 겸 프린트도 할 겸 처음으로 근처의 코워킹 스페이스에 나와서 준비를 하는데도 어제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귀가. 불안을 달래려고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더 늦게 자는 악순환... 

'일정에 여유가 생겼으니까 이제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나는 지금 멘탈과 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또 코워킹 스페이스의 한 책상 앞에 앉아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마다 아픈 특정 부위가 있는데, 어제부터 신호가 오더니 오늘 빵-하고 터졌고, 어딘가 정신이 홀린 사람처럼 자꾸 무언가를 까먹는다. 




내가 서두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4월이나 돼서야 잡힐 줄 알았던 외국인청의 비자 상담 예약이 갑자기 덜컥 다음 주 목요일로 잡혔기 때문이었다. 본래 예약을 잡으려면 3개월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를 두고 예약을 잡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도 1월 말일에 신청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잡혔다. 그렇다면 최소 대학원 합격 서류는 아니더라도 지원했다는 증거(?)라도 가져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가고 싶었던 대학원 A가 가능성이 높아 보여 다른 곳은 지원하지 않으려 했는데 갑자기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 대학원 B까지 지원해야겠다고 또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대학원 B 지원 마감일이 2월 15일까지였다. 어익후. 부랴부랴. 이 서류, 저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준비하며 대학원 B 홈페이지를 보는데 비 EU권 학생들의 마감일은 이미 작년 말에 종료돼있었다. 2월 15일은 EU권 학생들의 접수 마감 기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연말연시의 우울증에 시달리던 동안 이미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두 번째 어익후. 그래도 어쨌든 어느 곳이든 빨리 지원을 해보자 싶어 서두른 지 대체 며칠 되었다고 벌써 몸이 고장 난 것인지. 




이러고 있다 보니 그나마 불타오르는 의지로 3일 연속 올리던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도 4일 차부터 업데이트를 못하고 영상을 찍고만 있다. 진짜 몸이 열개도 아니고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건만. 그래도 축 늘어진 나 자신에게 '그래, 오늘 대학원 준비는 그만하자. 집에 갈까? 가서 뭐할까?'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묘하게 브런치 생각이 났다. 지금 이 마음을 이리저리 활자로 풀어헤쳐두면 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려나, 하여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대학원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보니 요즘 그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대학원 이야기만 한다.

'나 대학원에 지원하게 됐어. 꼭 붙게 기도해줘!'

이 말이 내 단골 멘트가 되었다. 잘난 성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될지 안 될지 정말 모르는 거라 한 명의 바람이라도 더 추가되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붙잡고 늘어놓은 것일 뿐인데, 돌아오는 대답들이 나는 또 의외였다. 





멋있다!



응...?

전혀 멋있으려고 가는 게 아닌데, 어쩌면 그 반대인데 많은 이들의 '멋있다'는 반응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 말에 딱히 반응하지는 않았다. 예전 같으면 '아니야, 멋있긴... 안될 가능성도 높고... 그냥 비자받으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냐...'라고 그들의 말을 극구 부정하면서 부정적인 말들을 늘어놓으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떨어뜨려놓았을 텐데. 지금은 그저 '아, 사람들이 이걸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신기하네.'라고 생각하며 진짜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주위에 두었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을 내었다. 





그래서 정말로 30대 중반을 향해 달리는, 백수나 마찬가지인 1인 사업을 하고 있는 내가 갑자기 웬 대학원이냐고 한다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더 큰 이유는 아직도 풀타임 회사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독립적으로 내 일을 하면서 수익을 만들고,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다고 보는 게 맞겠다. 이제는 정말로 내 생활을 영위할 돈을 스스로 벌어야만 한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난 2년 간 이 짓 저 짓 벌려온 내일들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건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 일을 지속 성장시켜서 한 달 생활비를 꾸준히 벌어들이는 것(!)이지만, 아직 1년은 더 달려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지금 다시 풀타임 회사원으로 돌아가 버리면 또 회사일에 치여 내 일을 손 놓게 될까 봐, 포기하는 기분이 들어서 영 찜찜하다. 첫 백수 때도 공부를 하다가 돈이 벌고 싶어 져서, '그래 회사 다니면서 공부해야지'하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 놓고 공부는 깡그리 잊어버렸더랬지. 그래도 내가 가고 싶은 대학원이 일을 같이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합격하면 파트타임 일&학업&내 일까지 쓰리잡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세 번째 어익후! 그래도 그렇게 되면, 공부도 하고, 생활비도 벌고, 내 일도 할 수 있으니 지금으로선 가장 이상적인 시추에이션이다. 어쨌든 솔직히 말해서 대학원 지원은 나에게 함부르크에 더 머물기 위한 수단일 뿐, 요즘 공부가 좀 재미있긴 하지만 내가 바라왔던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조차 않았던 일이었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내 나라가, 당당히 돌아갈 수 있는 내 나라가 있으니, 이 곳에서 머무르기 위한 일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생각하는 주의인데도 그래도 생각보다도 더 많이 독일이, 아니 함부르크가 좋아졌나 보다. 사실 어느 쪽으로 어떻게 되든 2019년의 내 인생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기왕이면 내가 바라는 대로 함부르크에서 계속 사는 나를 상상하고 싶다. 아니, 매일 아침 상상하고 있다. 






휴, 이렇게 끄적여 놓으니 스트레스도 좀 풀리고 정신없던 마음도 좀 정리가 된다. 

전 직장 대표님께 추천서 작성을 부탁드릴 때에도 왜 대학원을 가냐 하셔서 '저 아직 풀타임 회사에 못 돌아가겠어서요.'라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독립적으로 수익을 내서 내 힘으로 함부르크에 있고 싶다.'는 단단하고 건강한 의지가 내 안에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 일요일, 월요일 스카이 캐슬 보면서 충분히 긴장 풀고 스트레스 해소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무너진 내 멘탈이 엄살이 엄청 심하다는 것도...









ps. 지금 이 나이에 대학원 지원 준비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어린 나이에 유학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해요 (짝짝짝)








- 글: 노이

- 커버 사진 이미지: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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