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을 보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10가지 방법
작년 12월 31일은 처음으로 독일에서 보내는 해였다. 나는 그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원래가 이런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는 날들을 보내오긴 했지만, 그 날은 몸도 좋지 않아 모임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쉬고 있었다. 독일은 한 해의 마지막 날, 번화가에 모여 다들 불꽃놀이를 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다는 '소문'은 들었기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단 생각은 들었지만, 도무지 밖으로 나갈 몸 상태도 마음 상태도 아니었다. 몸이 좋지 않으니 기분도 덩달아 저기압이 되어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23시 50분쯤부터 밖에서 '피융- 피융-' 하는 폭죽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함부르크 센터 구역과 가깝기는 하지만 동네 자체는 정말 조용한 주택가라서 아무리 뉴 이어 이브라고 해도 조용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조용하게 쉬고 싶었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강제로, 반강제도 아니라 정말 강제로 이 나라의 뉴 이어 이브 행사를 지켜보게 되었다. 2018년 1월 1일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기라도 한 듯, 그 폭죽 소리들은 점점 커져갔고 이내 창문을 닫아도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아무 소용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그야말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하나의 폭죽만 터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폭죽 소리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세계 곳곳에서 이 날이 되면 성대하게 불꽃놀이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 행사장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함부르크가 특이한 건 그렇게 번화가에 모여서 시에서 준비한 폭죽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슈퍼에서 산 작은 폭죽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정말 마구마구 쏘아 올렸다. 다른 날에는 도시 예산으로 준비한 커다란 폭죽도 잘만 쏘아 올리면서 뉴 이어 이브에는 그냥 아무나 터뜨리고 싶은 폭죽을 맘껏 터뜨리는 것이 참 이상했다.
나는 겁이 많아서 일반인들이 폭죽 쏘아 올리는 근처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일전에 친구들과 바닷가에 가서 작은 폭죽을 쏘아 올린 적이 있는데 친구가 장난을 친다고 그 폭죽을 나에게 겨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트라우마인 것 같다. 물론 친구가 날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닌 건 알았지만,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폭죽이 불량품 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무서웠던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 행사를 치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더 많은 다양한 풍습이 있겠구나. 그리고 찾아보니 역시나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행사를 떠나서 나라마다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스페인의 전통은 조금 재미있다. 뉴 이어 이브에 스페인은 온통 '포도' 투성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새해 1월 1일이 되는 자정이 되기 12초 전부터 1초에 하나씩 포도알을 먹는다. 그러니까 총 12개의 포도알을 먹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1초마다 포도알을 하나씩 먹어서 12개를 모두 잘 먹는다면, 새해의 12개월을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가족끼리 집에 모여서 TV로 카운트다운을 보면서 포도를 먹은 다음 할머니에게 굿 나잇 키스를 해준 뒤에 12시가 넘어서부터 밖으로 나와 해가 뜰 때까지 밤새도록 술을 마신다. 스페인도 큰 도시의 번화가에서는 성대하게 불꽃놀이 행사가 열린다.
호주는 당연히 시드니 하버 브리지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행사가 가장 큰 볼거리이다. 호주의 크리스마스가 여름인 것처럼, 뉴 이어 이브도 여름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피크닉을 나가고 1월 1일 자정이 다가올수록 함부르크 못지않게 시끄러운 소음을 일으킨다고 한다. 숟가락으로 냄비를 두드리는 사람들, 휘슬을 부는 사람들, 차 경적 소리를 울려대는 사람들은 새해가 왔음을 알리고 다 함께 모여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감상한다.
스코틀랜드의 연말 겨울 축제는 12월 31일부터 1월 2일까지 3일 동안 이어진다. 옆동네 영국 사람들이 1월 2일이 되면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하루 더 논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고 한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연례 기념일이자 축제의 시간 이어 왔지만, 스코틀랜드는 약 60년 전까지도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남들 다 크리스마스를 즐길 때 못 즐겼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그 한을 12월 31일 뉴 이어 이브에 풀다 보니 그 축제가 훨씬 커졌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호그머네이(Hogmanay)라는 이름의 바이킹에서 유래한 전통 축제가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것이 그 규모가 가장 크고 볼만하다고 한다. 횃불을 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 답게 프랑스 사람들은 12월 31일에, 1년 중 가장 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샴페인은 그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좋은 와인, 굴, 푸아그라, 그 외 각종 맛있는 음식들을 가족, 친구와 함께 늦은 시간까지 먹는다. 조용하게 가까운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밖으로 나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이 기간에는 코스튬 파티를 여는 곳도 많다고 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풍습은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연말 풍습 중 하나로 늘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하다. 매년 마지막 날 밤이 되면, 이 사람들은 자기 그릇을 챙긴다. 음식은 담지 않은 빈 접시다. 그리고 그것을 이웃집 문 앞이나 친한 친구 집 문 앞에 던져 그릇을 깨뜨린다. 깨진 접시의 가장 큰 조각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친구와 행운이 들어온다고 믿는다.
여기 한 번 따라 해 볼 만한 재밌는 관습이 하나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좀 특이한 것을 마신다. 12시가 되기 전에 새해 소원을 종이에 직접 적는다. 그리고 그 종이를 불에 태운 뒤, 그 재를 샴페인에 넣어서 함께 마시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헝가리에서도 12월 31일 밤, 커다란 소음을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한 관습이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모든 사람들을 깨워서 사람들이 새해 첫 날을 맞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그리고 이 날은 파티 호스트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6명, 7명이나 되는 다른 지인들을 초대해도 전혀 무례한 행동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많이 부를수록 더 좋아한다. 또한 새해 첫날에 돼지고기를 먹으면 새해에 행운이 온다고, 그리고 콩으로 만들어진 수프를 먹으면 부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이탈리아도 세계 각국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12월 31일 밤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불꽃놀이를 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며 들썩인다. 한 가지 이탈리아의 특이한 점은 바로 '남자와 여자에 상관없이 12월 31일 밤에 빨간 팬티를 입고 있으면 새해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라고 믿는다.
이탈리아에서는 한 해가 끝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기는 가장 길한 시기로 여겨진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여서 카드 게임을 하는데 이 카드 게임을 이른 저녁부터 자정 전까지 몇 시간에 걸쳐서 릴레이처럼 진행한다. 또 새해 첫날에는 우리나라의 설날과 비슷하게 아이들이나 조카에게 용돈을 주는데, 새해 첫날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면 그 해가 풍요로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전해진 미신이 있다. 하지만 영국은 그 내용이 조금 다르다. 영국에서는 새해에 처음으로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 그 집에 그 해의 모든 행운을 다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이 사람은 First Footer라고 불리는데 특히 검은 머리를 한 손님이 가장 많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고 하니, 영국인 친구가 있다면 그의 집에 새해 첫 손님이 되어주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