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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21. 2019

한 뼘 더 자랐다.

이제 왠만한 문제에는 웃어줄 수 있다. '허허허'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인 또 어떤 하루가 가고 있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 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일어난다. A인줄 알았는데 B였다거나 이쪽으로 가야하는 줄 알았는데 저쪽이었다거나... 그 상황에서 매번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폭발할 때 쯤 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엔 다 나에게 좋은대로 잘 되기 위해서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 결국 다 잘 될 거야.' 





외국인청 가는 길





오늘도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다들 꼭 한 번씩 가야하는 관청이 바로 '외국인청'이다. 여기서 비자를 받기 때문인데... 가장 애매한 건 예약제로 운영되는데다 예약 날짜를 내가 원하는대로 잡기가 어렵고 예약을 잡기 위해서도 일찍 연락을 해야한다. 지난 번 비자를 받을 때에도 3개월은 훨씬 지나서 예약이 잡혔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3개월 전에 일찍 연락을 했는데, 또 예상과는 다르게 3주뒤로 예약이 잡혀서 너무 빨리 잡혀버렸다. 문제는 아직 학교 입학도 지원하기 전인데다가 재정보증을 할 돈도 마련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서류가 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 



처음에는 '예약이 잡힌 김에 모든 걸 그 전에 해치워 버리자!!!'고 의지에 불타서 입학 지원 준비에 열을 올렸지만, 그 준비도 하나하나 계획대로 흘러가주진 않았다. 결국 코너에 몰린 나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그렇게 비자 상담 예약날짜 전까지 학교 입학을 마무리 짓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어차피 가도 지금 비자를 받기 어려운 건 기정 사실화되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날짜로 예약을 미루자고 답장을 보냈지만, 원래 커뮤니케이션이 느린 곳이라 내 메일을 아직 보지 못한 듯 했다. 




일단 몸만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예약 날짜를 받아올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내가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라도 보여주고, 미리 준비된 서류라도 먼저 확인을 받자 싶어서 가능한 서류는 모두 준비해갔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증명 사진을 새로 찍고, 보험 회사에서 내가 보험에 가입 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받아서 출력했다. 천성이 게을러서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은 최대한 나중에 하는 사람인데, 왠일로 이번엔 몸이 움직여졌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예상보다 빨리 예약 일정이 잡힌 것도, 어차피 못받는 상황이라해도 할 수 있는 만큼 서류를 준비해 간 것도 참 잘한 일이었다. 일단 아직 학교 합격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상황을 설명하니 담당 직원도 준비된 서류만이라도 먼저 보여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 보험 서류를 보더니 표정이 안 좋아지며 말했다.




"마비스타*는 통과되는 사례가 거의 없어요. 제 경험 상으로는 그래요. 다른 보험 회사 서류로 가져오셔야 해요." 



*마비스타(Mawista): 일단 저렴하고 인터넷으로 모든 게 처리되고 업무 처리 속도가 매우 빨라서 한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독일의 사보험 회사.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지금의 어학연수 비자를 받으면서 통과가 됐던 보험사였다고 이야기 했더니, 이 보험사는 처음에 단기 비자를 받을 때에만 되고 그 이후부터 장기 비자를 받을 때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 했다.




 '삐-뽀-삐-뽀- 새로운 문제 발생!' 





한국에서도 보험관련된 일들이라면 복잡해서 딱 질색인데, 독일에서 보험은 어떨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예전같으면 이런 일이 생기면, '아 진짜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 거야. 이건 또 얼마나 복잡할까. ㅠㅠ' 라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 증폭기가 가동되었을 테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예전 습관대로라면 이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두었겠지만, 이번에는 내 생각보다 빨리 예약 일정이 잡힌 덕분에 이 문제를 더 빨리 발견하게 되서 다행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나쁜 일이 아닌 좋은 일이었다. 오히려 그 직원이 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All good. I've got a new quest! I will figure it out. ;)  
괜찮아요. 새로운 퀘스트가 생겼네요! 잘 해결해 볼게요.





Welcome to Wonderland...?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 특히 미국과 독일에서 - 한국에서만 살았을 땐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워낙 여러차례 겪다보니 이제 내성이 좀 생기려는 걸까? 

처음에는 비자를 신청하는 일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 독일에 더 머무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 살기 위한 과정에서 하나의 아주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 쯤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서류 준비는 복잡하고, 신경 쓸 것도 많고, 행여나 잘못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왜 땅덩어리를 자기들 마음대로 나눠서 살 권리를 주네 마네 하는 걸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함부르크, 니가 이뻐서 참는 거야.






휴,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할 줄 알아야지. 그치만 하기 싫은 일이 더더군다나 내게 익숙치 않고 어려운 일이라면 꾸역꾸역 하다가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정말로 한국에 그냥 돌아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로 진짜 하고 싶은 걸 쉽게 포기한다면, 나중에 너무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러다 오늘 아침 양치를 하면서 들었던 '마담 간디'라는 아티스트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인상깊게 읽었다던 구절을 들었던 게 생각난다. 







Nothing is hard. Things are just unfamiliar.
어려울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일 뿐이죠.





어려운 건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아직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을뿐이다. 내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든,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든, 그것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라면 두려움을 이겨내고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해나가면 된다. 그 결과는 항상 나에게 좋은 일이 될 것 임을 믿으면서 말이다. 












몇 년 전에 어떤 일본 베스트 셀러에서 재미로 B형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참 공감했던 한 문장이 있었다.






B형의 특징
-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혼자 빵 터질 만큼 200% 공감했던 이야기지만, 이제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은 해낸다.












글: 노이

커버 이미지: Photo by Joao Tzann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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