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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23. 2019

당신이 갑자기 미국에 파견된다면

미국에서 살게 되면 무엇이 가장 힘들까?

지구 반대편에서 한식 없이 살기




만약 내가 갑자기 우리나라를 떠나서 미국에서 오랜 기간을 살게 된다고 상상해 보자. 나는 영어도 못하고,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갑자기 미국 지사에서 일을 하라고 회사에서 파견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겪게 될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목구멍에서 턱턱 막히는 영어? 
낯선 타지에서 집을 구하는 일? 
햄버거, 타코, 샌드위치, 피자, 파스타를 주식으로 먹어야 하는 일?
지구 반대편에서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외로움? 
전혀 다른 언어로 따라가야 하는 학업 또는 업무?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





위에서 상상해본 이 상황은 몇 년 전 실제로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영어도 못하고,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는 내가 갑자기 당시 다니던 회사의 미국 지사로 가게 되었다. 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모든 일이 일어나고 진행되던 회사 분위기 상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았다. 모든 일이 매우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미국은 여행으로도 가본 적이 없는 나였고, 그 머나먼 땅에서 살게 되리라 생각하니 내가 가장 걱정되었던 건 바로 '영어'였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다못해 싫어했던 것이 참 많이 후회가 되었다. 부랴부랴 일대일 영어 회화 학원을 끊었다. 하지만 수많은 일에 치이면서 두어 달 학원을 다녔다고 해서 영어 실력이 크게 늘 리가 없었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땅에서 1년 정도 살면서 일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여러모로 힘든 게 참 많았던 짧고도 길었던 1년이라는 시간. 모든 것이 다 과거가 된 지금, 영어 공부를 미리 하지 못했던 것보다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 만약 누군가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의 나에게 '미국에 가기 전에 이걸 준비해!'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영어학원 다니지 말고 요리를 배워! 
특히 한국 집밥 요리로.






대한민국 땅의 수많은 영어회화 학원을 적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그때 그 학원이 별로였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내게 주어졌던 조건과 남은 시간을 고려했을 때 정말 중요했던 건 언어가 아니라 바로 '먹을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차피 평생 기피해온 영어, 한 두 달 다닌다고 쑤욱 보란 듯이 실력이 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뭔가 내가 잘 준비하고 있다는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 위해서 다닌 것이라도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미국 갈 준비를 하면서 내가 완전히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완전한 '요알못', 뭐 요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처자였다는 것이다. 누군가 왜 요리를 안 하냐고(못하냐고) 물어보면 늘 나름의 핑계는 있었다. 어릴 땐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살았고,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부터는 동생이 절반 정도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동생이 한식 요리 전공이었다. 자연스럽게 요리는 동생이, 뒷정리 및 설거지는 내가 하는 역할 분담이 되어버렸고, 그 편이 더 맛있었다. 여자는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박 같은 것도 싫었다. '내 소원은 요리 잘하는 남자랑 결혼하는 거야.'라는 농담과 함께 내 요리 실력에 대한 이야기는 늘 훈훈하게(?) 마무리되곤 했다.




그때가 완전히 처음 겪어보는 해외 경험도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 정도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도 음식이 완전히 입에 맞는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쌀이 주식인 나라이기에 큰 위화감은 없었다. 그래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빵이 주식인 나라에서의 삶'을 말이다.








아... 나 미국이랑 안 맞나... 돌아갈까...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정식으로 근무를 시작한 지 고작 한 달만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유는 바로 음식이었다. 평소에 햄버거나 피자, 샌드위치, 파스타를 싫어하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같은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가끔 골라먹던 메뉴 중 하나인 것과 주식으로 먹게 되는 삶은 너무나 달랐다. 내가 다니던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식당은 대부분이 햄버거 가게이거나, 멕시컨 레스토랑, 태국 음식, 지중해 음식, 그리고 또다시 햄버거 가게였다. 맛이 없었냐고? 아니, 음식은 맛있었다. 콜라도 좋아했다. 양도 참 많았고, 음료 리필도 대부분 무제한으로 할 수 있었다. 미국 동부 사람들이 먹으러 비행기 타고 날아온다는 미국 서부 맛집인 인앤아웃 버거 (IN-N-OUT BURGER)도 있는 동네였다. 한식 마니아이신 이사님도 점심시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점심시간은 짧았고,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는 한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만들어 배달해주시는 곳을 찾아서 다 같이 주문해서 먹기도 했다. 한동안 그걸로 괜찮은 듯했지만 도시락 음식에도 한계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점차 음식 퀄리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같이 야근을 했기 때문에 저녁도 문제였다. 저녁 시간에는 시간이 좀 걸려도 다 같이 차를 타고 나가서 순두부찌개를 잘하는 한식 식당을 찾아가고는 했다. 그 집 순두부찌개는 거의 우리 회사의 한국 출신 직원들의 소울푸드였다. 한국에서는 순두부찌개를 안 먹던 나도 이때부터 좋아하게 될 정도였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순두부찌개를 먹고, 몸살이 나도 순두부찌개를 먹고, 또 어딘가 아프면 순두부찌개를 먹는다고 농단 반 진담 반 이야기할 정도였다.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건 다 '바깥 음식'이었다. 나에겐 집밥이 필요했다. 그때의 나는 라면밖에 끓일 줄을 몰랐다. 그걸로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요리를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패해서 맛없는 음식을 먹고, 오븐을 써보겠다고 까불다가 손등에 화상을 입었는데 의료보험 카드가 없다고(카드가 우편으로 오고 있었다) 의사 진찰을 거부당하고, 대부분 집에서 혼자 먹다 보니 의욕이 점점 줄어들면서 그냥 그냥 늘 그렇게 간단한 음식들로 배를 '채우기' 바빴다. 집에서 뭐라도 해 먹지 그랬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 이상으로 요리를 몰랐다. 못한다기보다 그냥 몰랐고 어려웠다. 요리 레시피를 쳐다보고 있으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고 하면 비유가 될까? 그렇지 않아도 영어와 업무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에 시달리느라 에너지가 고갈돼서 요리를 배울 힘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냉정히 말하면,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한마디 뻐끔하기도 어려웠던 영어는 1년 정도를 살고 나니 부쩍 늘어있었지만, 내 요리 실력은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그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짐했었다. 이제 외국에서 사는 건 그만하자고. 음식은 한국 음식이 역시 최고라고.







영어는 어찌어찌 늘었지만
요리는 자취 10년 차가 넘어도 제자리에






또 다른 지구 반대편에서






그로부터 약 4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또 다른 지구 반대편인 독일에서 살고 있다. 이번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대부분의 끼니를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이 곳의 음식도 나와 맞지 않다는 걸, 또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질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번엔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작은 것부터 시도했다. 



'그냥 구운 채소 접시에 담아 먹기, 고기 뺀 카레라이스, 소고기 없는 미역국, 소고기 없는 된장국, 어딘가 약간 어색한 감자볶음...' 



평소에 먹던 음식들과 비교하면 '완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결과물이었지만, 이제는 안다. 

밖에서 사 먹는 완벽한 한 끼 식사보다는 조금 부족해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은 열 끼 식사가 내 몸과 내 마음에 더 건강한 선택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평생 먹고 자라온 내 나라의 음식이 나에게 최고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해도 흉내낼 수 없는 맛, 평생을 따라갈 수 없는 맛이 있다. 

그건 바로 엄마가 해주는 밥이다. 

해외에 나와서 사는 동안만큼 엄마의 집밥이 그리울 때가 없다. 정말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이 거리감이, 지금 바로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해도 엄마 옆에 도착하려면 13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고, 그렇게 자유자재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답답함이 엄마의 밥에 대한 그리움을 더 크게 만든다. 이따금 한국에 들어갈 때 마다 한국 가면 뭐 먹고 오지 곰곰히 생각을 해도, 난 그냥 엄마가 해주는 밥이면 다 좋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독일에 있다가 잠깐 한국에 들어가도 진수성찬을 받거나 하지는 못한다. 아빠랑 엄마는 늘 많이 바쁘시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적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눈가까지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른다. 분명히 내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은 다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종종 가졌지만, 대부분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다 늦게 들어오시는 엄마아빠를 기다리며 우리는 대부분의 식사를 혼자 또는 가끔 같이 했던 것 같다. 그 바쁜 와중에도 엄마는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해두고 나가셨다. 어쩔때는 곰국을 가득 끓여주시기도 했고, 어쩔 때는 카레라이스를 잔뜩 끓여주시기도 했다. 그 중에 제일 좋아했던 건 김치찌개와 미역국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다정하게 함께 밥먹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더 많았더라면 하는 욕심같은 소망이 내 마음에 늘 남아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가면 내가 오랜만에 왔다고 해서 특별한 진수성찬이 차려지는 것은 아니다. 엄마 밥을 제일 좋아하는 걸 모르는 엄마는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고 외식을 하자고 한다. 일하느라 피곤할 엄마가 밥을 차리고 치우고 하게 될 것이 미안해서 그러자고 대답하지만, 사실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건 그냥 흰 밥과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내가 엄마와 아빠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줘야 할 차례가 된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에 한 번, 아빠와 단 둘이 일요일 점심을 집에서 뒹굴거리게 된 적이 있었다. 모처럼이니 내가 요리를 해보겠다며 두 팔 벗고 나서서 나름 어딘가 티비에서 봤던 에그스크럼블을 만들어서 밥상을 들고 거실로 나갔었다. 그 때 아빠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게 뭐고? 계란 후라이 하다가 망했나?"



에그 스크럼블을 모르는 아빠는 내가 계란 후라이를 하다가 망해서 대충 휘적휘적 거려서 온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웃겨서 한참을 웃었지만, 그 때 이후 왠지 자신감을 잃은 나는 다시 아빠에게 요리를 해드리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었다. 아무리 아빠가 이 요리를 몰라도, 음식이 얼마나 볼품 없어보였으면 아빠가 망했다고 생각했을까, 한편으로는 참 많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그게 무슨 창피한 일이라고 그러고나서 요리를 뚝 끊었을까. 해외에 나와 사는게 무슨 벼슬이라고 집에 돌아가면 늘 맛있는거 먹여줄 기대만 하고 갔던걸까. 참 어리석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해주셨던 집밥이 많이 그립겠지. 

아주 어릴 적에 외할머니를 여읜 외손녀라 나는 외할머니의 요리 솜씨는 전혀 모른다. 안다고 해도 그 발끄트머리조차 따라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그 채울 수 없는 빈 자리에 '딸이 해주는 집밥이라는 맛'을 새로 채워드리고 싶다. 늘 집안일은 젬병이라 요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큰 딸이 해주는 집밥이 가끔 우리 엄마가 또 아빠가 그리워하는 맛이 될 수 있을까.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내가 겨우겨우 넘어선 초보 요리의 문턱을 딛고,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한 끼 식사를 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제 다음 번에 한국에 들어갈 때에는 얻어먹을 생각은 그만해야겠다. 외식도 그만하고 싶다. 맛에 자신은 없지만, 내 손으로 지은 밥으로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연말이면 다시 한국으로 잠깐 들어가게 된다. 

그 때까지 열심히 연습해 봐야겠다. 

오늘도 소고기 없는 된장찌개를 끓인다.










글: 노이

커버 이미지: Photo by Vanessa Serp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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