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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n 08. 2020

있나요 잔디밭에 누워 비를 맞아본 적




15살의 나는 비를 맞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하굣길, 친구와 같이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비를 맞으며 돌아오던 날이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빗방울이 강하지 않은 날에는 한 손에 콘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스크림 위에 손우산을 만들고 빗방울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한입씩 베어 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혼자서 길을 걸을 때도 종종 가지런히 접힌 우산을 손에 쥔 채로 비를 맞고 걸었다. 내 살갗 위로 토독토독 빗방울이 내려앉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부터일까, 아니면 조금씩 화장을 하기 시작하던 그때부터일까, 아니면 점점 아이스러움을 벗기 시작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체면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일까. 어느 날부터 나는 내리는 비를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원래도 복합성 피부에 속쌍꺼풀인 탓에 해가 쨍한 날에도 잘 번지던 내 눈 화장은 늘 나의 콤플렉스였다. 화장이 당연하던 그때는 매일 같이 번지는 아이라인을 신경 쓰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아마 그래서 비를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자면 힘든 시간이 잦았던 20대의 나는 우산도 없이 천천히 터벅터벅 비를 맞으며 걷는 건 세상이 다 끝날 것 같은 우울함 속에 사는 패배자로 비치는 기분이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도 않았고, 실연한 여자처럼 비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보는지 아닌지는 잘 몰랐지만 늘 대부분이 실연해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함부르크에서는 오히려 우산을 쓰고 있는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 되었다. 우산 쓰고 있는 사람이 멀리서 보이면 가보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현지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그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가랑비일 때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가랑비보다 좀 더 굵은 비가 내릴 때에도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이 정도 비면 90% 이상이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할 상황에서도 이 곳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모자로 머리를 가리는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우산을 쓰고 다녔는데 그러던 어느 날 우산을 지하철역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 봤지만 우산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비올 때 우산도 안쓰면서 남의 우산은 왜 가져가는 거야?’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깜빡한 나를 탓하지 누굴 탓하랴. 그때부터였던가 나도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니 나쁘지 않았다. 산성비가 걱정이 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더 일찍 시작된 유럽의 중심국가 중 하나인 독일은 이미 과거에 산성비로 숲의 절반이 죽거나 유적물들이 산화되는 현상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고 그때의 경험을 교훈 삼아 강력한 규정을 만들어서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산성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몸이 축축하게 젖는 것을 왜 마다하지 않는 걸까. 나는 궁금했다. 어딘가에 이렇다 할 정답이 나와있을 질문은 아니었기에 종종 친구들을 만나면 묻곤 했는데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정리가 되었다. 하나는 함부르크는 바람이 한 번 불면 꽤 강하게 부는 편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우산을 산다고 한들 그런 날 들고나갔다가는 일회용 우산이 되어버린다는 것. 이런 날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한 번 구입한 물건을 아껴서 오래 쓰려는 분위기가 강한 독일에서는 내가 돈 주고 산 우산이 망가질 것을 알면서 그런 날씨에 우산을 들고나가지는 않는 것 같다. 두 번째로는 함부르크에는 비가 자주 온다. 겨울에는 거의 런던 날씨와 맞먹을 정도이다. 매일 하루 종일 주룩주룩은 아니지만 가랑비가 자주 오다 그치다 반복되거나 하는 날도 많아서 우산을 들고나가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날씨도 꽤 변덕스러워서 기껏 우산을 들고나갔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거나 우산을 안 들고나갔더니 비가 오는 경우도 많고 그런 자잘한 비는 기상예보에서도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로 모자가 달린 후드티나 점퍼를 많이 입는다. 그러면 절대로 잊어버릴 리도 없고 비도 다 맞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비에 익숙해져서 나도 함부르크에서 우산을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비가 정말 심하게 오는 날은 물론 나도 이 곳 사람들도 종종 우산을 쓰지만, 그런 날은 자연스레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 라이프치히에 가기 전 날씨를 확인했더니 라이프치히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올 예정이라고 했다. 일단 일기 예보에 번개 표시가 있으면 어느 정도는 대비가 필요한 날씨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랜만에 우산을 챙겼다. 라이프치히는 처음 가보는 것이기에 그 지역에서의 천둥 번개가 치는 날씨가 어느 정도일지도 잘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오후 2시에 비가 내리기 시작할 거라던 일기 예보와는 달리 오히려 햇빛이 더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 날씨에 힘입어 나는 중앙역에서 30분 거리를 걸어 라이프치히 시내의 한 커다란 공원으로 향했다. 나는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의 공원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차피 풀과 나무, 꽃이 있을 것이고 더 많아봐야 연못이 있는 건 다 똑같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공원이라고 해도 도시마다 그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리고 오히려 공원은 관광객보다 현지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그 도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냥 나이를 먹어갈수록 기회가 있다면 가능한 자연을 더 즐기고 싶어 지는 것 같다.





내가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걸어서 도착한 곳은 요한나 공원(Johannapark)이라는 곳이었다. 아주 부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려 위키피디아에도 이력이 나오는 인물) 라이프치히의 한 개인 은행가였던 빌헬름 자이 파스(Wilhelm Seyfferth)라는 사람이 1881년에 생을 마감하면서 도시에 기증한 공원이라고 한다. 지도상 옆에 근접해 있는 더 넓은 공원에 비하면 작은 공원이었지만 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즐기다 가기 좋은 아주 넉넉한 공간이었다. 함부르크 공원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잔디밭이었는데 잔디의 길이가 꽤 짧고 다른 풀들은 거의 없이 잔디만 자라 있는 함부르크 공원에 비해 이 곳은 잔디의 길이가 내 발목까지 올라오고 잔디 외에도 이런저런 풀들이 함께 뒤섞여 자라고 있는, 그러니까 조금 더 자연에 더 가까운 공원이었다. 그렇게 잔디밭에 빼앗긴 시선을 들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을 때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목까지 무성하게 자란 잔디밭에 여기저기 드러누운 사람들과 멀리 보이는 연못, 그리고 그 공간을 잇는 작은 다리, 그리고 그 앞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까르르 웃고 있는 사람들, 그 위로 드리우는 햇살이 마치 파스텔톤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도심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어느 숲 속 잔디밭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미 상당한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나도 잔디밭에 앉아 쉬고 싶었지만 언제 비가 올지 몰라 공원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작은 다리가 놓인 연못으로 다가갔다. 삐약거리는 아기 오리와 이름 모를 다른 아기 새들이 엄마를 따라 헤엄을 치고 또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다. 이 풍경, 저 풍경에 푹 빠져 연신 영상을 찍던 나는 순간 배터리가 1%밖에 남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가지고 온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하려고 찾았더니 아뿔싸, 보조배터리는 있는데 보조배터리와 스마트폰을 잇는 선이 없었다. 혹시나 길을 잃기 전에 기억을 더듬어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느끼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잔디밭에 한 번 누워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늘 공원에 갈 때 챙겨 다니던 돗자리를 들고 오지 않아서 잔디밭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드러누워야 한다는 것이 조금 많이 망설여졌다. 비를 맞기 전에 산성비를 걱정하던 것만큼, 쯔쯔가무시 때문에 잔디에 직접 닿는 것을 오랫동안 두려워하고 피해왔던 한국에서의 오랜 습관이 나를 겁먹게 했다. 독일에서는 아무것도 깔지 않고 잔디에 눕는 사람이 많아서 알아봤더니 쯔쯔가무시는 유럽에 없다고 한다. 그래도 저기에 개가 오줌을 싼 건 아닌지 작은 벌레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건 아닐지, 걱정쟁이답게 온갖 걱정이 들기 시작했지만, 그 걱정보다 그냥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이 더 컸던 모양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잔디밭에 풀썩 주저앉아 두 팔을 대자로 벌리고 잔디밭에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푹신한 풀들이 나를 감쌌다. 함부르크 공원은 잔디들이 짧아서 돗자리를 깔아도 바닥이 늘 딱딱했는데 이 공원은 아주 편안하게 내 몸을 감싸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가방을 끌고 와 베개 삼아 베고 다시 드러누워서 하늘을 봤다. 조금 아쉬운 건, 공원을 마저 돌아보는 사이에 파란 하늘이 사라지고 잿빛 구름이 가득한 하늘로 바뀌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조금만 더 누워있다가 가야지.’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바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내 주위로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늘어서 있던 나무들이 심하게 출렁거렸고 사람들이 갑자기 잔디밭에서 일어나 공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키니 앞에는 뿌연 모래 바람이 일 정도로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눈에 모래가 들어갈까 봐 가려야 할 정도로 강력했다. 일기 예보가 말하던 그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오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속에서 폭발하는 듯한 아드레날린을 느꼈다.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이런 생소한 풍경,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강렬한 바람과 그 바람에 출렁이는 잔디밭의 파도. 파스텔풍의 동화 같던 분위기를 뽐내던 공원이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들판으로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이 순간. 잠시 고민하던 나는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잔디밭에 드러눕는 것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잔디밭을 떠나던 사람들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이렇게 자연 한가운데서 비바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나에게 많지 않으니까. 구름 너머로 천둥소리가 우르릉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꽤 굵어서 조금 아플 정도였지만, 오랜만에 맨 살에 비를 맞고 있자니 다시 15살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가방에 있던 우산을 꺼내서 신발과 가방이 젖지 않도록 우산을 덮어둔 뒤 나는 맨발로 잔디밭에 드러누워 그대로 내리는 비를 맞았다. 시원하고 자유롭고 또 자유로웠다. 누워서 비를 맞는 것은 나도 처음이라 재밌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빗물이 눈으로 튀고, 콧구멍 속으로 튀어 들어왔다.













행복했다. 비를 맞는 것이 행복한 일이 될 수 있구나. 그때의 나에겐 한 달 내내 고통받던 내일의 시험에 대한 걱정도 불투명한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추억을 얻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평생토록 되새기며 기운을 얻으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라이프치히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도시가 되어 기억의 한 켠에 기록되었다.



매일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나는 또 현실로 돌아가야겠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순간들이 조금 더 많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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