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04. 2020

독일 사람들, 마스크 잘 쓰고 다녀?

함부르크 일상 속 소소한 관찰 기록




새롭게 생겨난 삶의 규칙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요즘. 습관이 되지 않은 탓에 종종 마스크를 잊고 나가 다시 마스크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외출 전 마스크가 없으면 허전하다. 밖에 나가도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서 갈 곳 조차 없던 락다운 시기가 끝난 것만으로도,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던 독일이 드디어 마스크를 쓰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다시 조금씩 예전의 활력을 되찾아가는 함부르크. 그곳에서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소한 일상을 살고 있다.



밖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의 놀란 눈빛을 받던 게 무려 5개월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실내에서 마스크를 안 쓰고 지나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게 된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한 주위 환경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에도 크고 작은 파도가 오르락내리락했고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겐 그러한 것 같다. 지난 토요일, 같은 날 함부르크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안전 수칙을 칼같이 지키는 시위가 있었던 반면, 베를린에서는 코로나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거리로 나섰다.



밖이지만 마스크를 쓰고 안전거리를 지키며 육식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렇지만 함부르크라고 모두가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홍대나 강남처럼 주말이면 젊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클럽과 술집이 즐비한 ‘샨체(Schanze)’, ‘상파울리(St.Pauli)’, ‘알토나(Altona)’ 거리는 마치 그곳만 코로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모두가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돌아다닌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코로나 규제가 점점 완화되면서 클럽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여전히 ‘춤’은 허용되지 않았고, 클럽들은 먹고살기 위해 스테이지에 의자와 테이블을 들여놓고 술만 팔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춤만 추지 않을 뿐 마스크 따위 벗어던지고 명동 거리처럼 북적북적한 길 위의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을 잊고 그들만의 세계에서 즐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독일의 핫플레이스에 모여 주말을 불태우는 사람들 (출처: NDR)





당연히 그곳이라고 예외일리는 없다. 다만 코로나 규제 초반에 경찰이 그 거리의 상황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은 탓에 사람들은 더더욱 느슨해졌다. 엊그제만 해도 길거리에서 DJ를 불러놓고 300여 명이 모여 춤을 추고 놀다가 11시쯤 경찰에게 들켜서 해산되었다. 하지만 초반 대응이 허술했던 탓에 이제 와서 다시 강력하게 감시를 해서 벌금을 물리겠다고 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 그래서 시에서는 부랴부랴 그 거리에 있는 가게들이 저녁 8시 이후에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챘겠지만 이 정책은 허점이 많았다. 8시 전에 술을 미리 사두거나 아니면 다른 동네에서 미리 술을 잔뜩 사 와서 마시는 건 전혀 제재할 수 없는 조금 웃픈 정책이 나와버린 것. 앞으로 함부르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지난 토요일에는 매년 아주 성대하게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있었다. 독일의 대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벤트형 퍼레이드인데 당연히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이벤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행사가 가능한 규모는 점점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대규모 행사는 금지된 상태) 알고 보니 이번에는 모두 자전거를 타고 마스크를 쓰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고 했다. 너무 화려하고 신나는 퍼레이드라서 여태 몰랐는데 알고보니 이 퍼레이드의 본질은 행사가 아닌 ‘시위’라서 허락된 부분도 있는 듯했다. 지인들의 목격담과 미디어에 나오는 모습으로는 퍼레이드 자체는 굉장히 안전하고 평화롭게 진행된 것 같았지만, 문제는 그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나온 구경꾼들. 공교롭게 그날 오후의 약속 장소가 퍼레이드 장소 부근이라 퍼레이드가 끝난 후에 그 주변을 걷게 되었는데 퍼레이드의 흥이 식지 않은 건지 아니면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코로나 이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나의 몫...)




여기서는 바깥에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의무가 없다. 물론 서로의 안전거리는 지키라고 하지만, 사람이 북적이고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도심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 그래도 그 속에서 혼잡한 거리를 지날 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현지인들도 아주 가끔 볼 수 있지만 99%는 밖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무엇을 근거로 이게 허용되는지는 개인적으로 아직 납득할 수 없지만, 그냥 나는 혼자서 알아서 사람들과 지나칠만한 곳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만 벗고 있다. 휴.
이렇게 참 규칙이 지켜진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자주 일어나서 나는 종종 엄청난 혼란을 느끼고는 한다.




그래도 실내에서만이라도 잘 지켜지는 게 어디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종종 내 생각보다도 훨씬 잘 지켜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가게 앞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볼 때다. ZARA, H&M, Foot Locker, Adidas 등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의 가게 앞에는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동시 입장 인원수에 제한을 두는 조건이 있다) 함부르크에서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을 보는 건 진짜 유명한 맛집이나 클럽 피크 타임 정도였는데 옷가게에 들어가기 위해 더운 날씨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가장 신기했고, 몇 번을 다시 봐도 신기하다.



그런데 오늘은 더 신기한 걸 봤다. 역시나 함부르크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애플 스토어 앞을 지날 때였다. 애플 스토어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옆을 지나가는데 ‘삑’, ‘삑’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 싶어 옆을 돌아보니 애플 직원들이 스토어에 입장하는 손님들의 이마에 체온 측정기를 대면서 열을 재고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공항이 아닌 곳에서(공항도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아직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이 정도까지 체크를 하는 곳은 처음이라 한참을 구경을 했다. 사람들은 어색해하면서도 선뜻 자신의 이마를 내어주었다. ‘삑’, ‘삑’. 입장. 그 소리가 마트에서 바코드를 찍는 소리와 똑같아서 마치 애플이 사람들 몸속에 내장된 바코드를 읽는 것 같았다. 몇 달 전, 동생 아이폰을 온라인 예약 후 찾으러 갔을 때에 줄을 서서 꽤 오래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났다. 미래에는 내 몸속에 있는 칩에 달린 바코드만 읽으면, 내 개인 정보와 예약 내역을 확인해서 안에 있는 직원이 바로 내 물건을 찾아다 주게 될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난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나도 모르는 기관들에 내 정보를 다 흘리고 다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손님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는 애플 스토어 직원들





아직도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적으려고 한다.

오늘 기록한 이 모습들이 당연한 일상이 되지 않고, 진짜 당연한 일상의 순간들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 NDR 기사 이미지 및 서론 부분 인용 출처: https://www.ndr.de/nachrichten/hamburg/coronavirus/Schanze-und-Kiez-Massen-feiern-trotz-Corona,schanze402.html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와 함께 하는 독일에서의 하루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