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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21. 2021

친절에 목숨 거는 한국 사람들

친절이 귀한 독일 사람들



독일 함부르크는 벌써 제법 을씨년스러운 겨울이 찾아왔다. 하늘은 하루 종일 회색 빛깔이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댄다. 그 속에서도 하루는 간다. 나름 집중해서 들어보는 독일어 수업,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독일어 수업을 지나 틈틈이 알바 자리를 찾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헬스장에 가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에 먹을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이곳 마트들은 밤 10시면 문을 닫아서, 헬스장에 가면 시간이 맞지 않아 장을 볼 수 없었다.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건 더 중요하니까 헬스장을 포기하고 장보기를 선택했다.


제대로 장 보려고 각오하고 나온 건 아니라 이미 노트북이며, 헬스장 용품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기에 장은 최대한 가볍게 보았다. 당근 하나, 노란 파프리카 하나, 감자 하나, 두유 하나, 두부 하나, 하나하나 하나... 많이 사봐야 남는다. 하나씩 필요한 것만 조곤조곤 담아서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내 앞에 한 남자분도 이것저것 과일과 야채를 샀는데, 뭔가 빠진 게 있는 모양이었다. 독일은 마트마다 포장이 안된 야채나 과일을 계산하는 법이 다르다. 어떤 곳은 그냥 들고 가기만 해도 계산대에서 알아서 무게 재고 가격이 나오지만, 어떤 곳은 손님이 직접 저울에 올려서 가격 스티커를 뽑아서 붙여야 한다. 내가 간 마트는 후자였고, 앞에 서있는 남자는 이 마트가 처음이라 가격 스티커를 안 뽑아 온 것이었다. 종종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계산대랑 약간 떨어진 저울에 가서 또 직접 뽑아와야 한다. 


한국에서도 앞사람 때문에 기다림이 길어지면 짜증을 내듯 독일 계산대에서의 1분 1초도 그냥 1분 1초가 아니다. 사람이 많은 마트에서는 지갑도 미리미리 꺼내고 빠르게 움직여서 자신의 계산을 마쳐주는 것이 예의다. (종종 예외는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가격표를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를 떼러 갔으니... 게다가 이 마트에 처음 온 사람이면 모니터에서 야채 이름, 과일 이름을 찾느라 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날 그 시간 내 기분은 꽤 잔잔한 호수 같은 상태였다. 딱히 서두를 것도 힘들 것도 없어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캐셔 직원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앞 분 계산이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요 ^^;"



미안하다고 했는지 이해해달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친절한 눈빛과 말투였다. 가볍게 괜찮다고 대답을 했고 정말 괜찮았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앞 손님은 시간이 좀 걸렸고, 그 사이에 직원은 내게 몇 마디를 더 던졌다. (편의를 위해 한국어로)



"어디서 오셨어요?"

"아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아... 안뉴엉...? 이게 한국어로 헬로라는 거죠?"

"하하, 네. 맞아요. 한국어 어디서 배웠어요?"

"요즘에 넷플릭스에 한국 드라마 진짜 많아요. 드라마 보면서 들은 거예요 ㅎㅎ"

"오 듣는 귀가 좋으시네요 ㅎㅎ"




짧은 대화였지만 무한히 뻗어나가는 K드라마의 힘을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대화를 나누면서 기다림의 시간은 어느새 새로운 대화의 장이 되어있었다. 나는 괜스레 독일에서 한류의 힘을 느껴 기분이 좋았고, 그 캐셔 직원분도 자기가 배운 걸 써먹어 볼 수 있었던 데다 나름 칭찬도 들었으니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는 대화였다. 



내 경험상 평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독일 직원들은 굳이 먼저 나서서 지연되는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물론 손님이 물어보면 알려주겠지만 먼저 나서지 않는 편) 게다가 안면이 있는 사이가 아니면 딱히 스몰 토크를 꺼내지도 않는다. 직원은 그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지친 성대를 쉬거나 다른 일을 하고 뒤에 서서 기다리는 손님도 스마트폰을 보거나 그냥 기다린다. 그래서 흔한 일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적어도 나의 세계 안에서는). 내가 그 직원분에게 더 고맙게 느껴졌던 건,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쑥스러움 때문이었다. 원래 이런 스몰 토크를 잘하는 사람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본인도 약간의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말을 건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큰 목적 없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라, 그 마음이 더 공감이 가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냥 '장을 본 저녁'으로 내 다이어리 속 단순한 기록으로 남을 뻔했던 것이 별 거 아니지만 마음에 잔잔히 남은 훈훈한 기억이 되어 브런치에까지 끄적이게 되었다. 아마도 이 직원분은 내가 손에 꼽을 수 있는 '함부르크에서 친절한 캐셔 직원 TOP5' 안에 들 것이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한국에서 살 때의 나는 제법 깐깐한 고객이었다. 그 대신 내가 서비스직에서 일을 할 때도 내 모든 것을 갈아 넣는 친절한 직원으로 일했었다. 그런 배경은 아마도 첫 알바부터 새로 오픈되는 CGV 지점에서 일하게 되어 전 알바생이 서비스 교육을 제법 철저히 받았었고, 그 뒤에도 힐튼 호텔 라운지에서 일하며 '친절한 서비스'의 기준이 점점 올라갔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어딜 가든 대부분 기본 레벨의 '친절'은 갖추고 있기도 하니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살면서 영향을 받은 것도 없지 않겠다. 심지어 은행 직원, 공무원 등 모두가 친절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이니까.



그런 환경에서 살던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차갑기로 유명한' 북독일에 와서 느끼는 고객 서비스의 체감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한국에서 고객 서비스가 불친절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북독일을 추천하라.) 함부르크에서의 시간은 '서비스'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정말 정말 많이 바꿔놓았다. 독일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 하나가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이다. 어마어마하게 내려갔다. 그저 내가 필요한 일처리를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만' 해준다면 오케이다. 그래서 이제 작은 친절에 오히려 더 감동하게 되었다. 불친절 속에 피어나는 친절에는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대치가 낮아진 이유가 또 있긴 하다. 따질 것은 분명히 따지던 내가 독일에서는 말도 잘 안 통하니 따지던 것조차 안 따지게 되었다. 말하고 싶은데 못하고 그저 꾹 참으면 마음의 병이 되니, 따지고 싶은 마음조차 그냥 버려버렸다. 내게 정말 큰 피해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으로 흘려보낸다. 내가 이런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거니와 이렇게 변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또 이렇게 물리적으로 한국에서 떨어져서 지켜보다 보면,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친절에 목숨 걸게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설마 부모님에게 받지 못해 충족되지 못한 관심과 애정과 존중을 서비스직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엄한 사람들에게 풀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백 명 중 한 명만 친절한 것보다, 백 명 중 구십 명이 친절한 게 더 낫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한발짝 떨여져 지켜보면, 내 눈에는 조금 과하다. 나도 한 때는 친절에 목숨 걸던 사람이었고, 그 때는 내가 요구하고 또 반대로 제공하는 모든 친절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마트든, 동사무소든, 병원이든, 편의점이든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직업을 갖기 이전에 나와 같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잊고 산다. 세상에 당연한게 없다는 사실도 잊고 산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에는 더 그러하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니 남도 존중하지 못한다. 아마 이 글을 읽어도 잠시 잠깐일 뿐, 또 잊고 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또 잊게 되지 않기 위해서 한 번쯤은 우리나라의 친절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점점 과한 친절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에는 사실 안으로 부터 채워야 하는 개인의 공허한 마음을 바깥에서 채우려고 하는 발버둥은 아닌지 말이다. 아니면 잊혀져 가는 진짜 '한국인의 정'을 형식적으로라도 유지하고 싶은 몸부림은 아닐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인의 정'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래에는 곧 서비스직을 위해 일해주던 사람들이 그리워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물건을 살 때 기계나 로봇이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대이니까. 신기술의 적용이 조금은 느린 편인 독일에도, 얼마 전 함부르크의 어느 바에 서빙용 로봇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독일 답지 않게(?) 제법 귀여운 로봇을 데리고 와서 큰 눈을 끔뻑거리기도 하고, 손님이 주문한 술을 가져가면 인사하는 표정까지 짓는다고 한다. (물론 타이밍은 좀 안 맞지만...) 지금은 그것이 마냥 신기하고 재밌지만, 앞으로 점점 로봇이 우리의 일상 속에 대중화된다는 건 그나마도 얼마 없는 타인과의 접촉의 범위가 아주아주 많이 줄어든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예전에는 그저 그곳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만 느껴졌던 가게의 직원들이 요즘 들어 부쩍 다르게 보이는 건 이 때문일까. 이미 일정 수준의 서비스 레벨이 고착화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임을 안다. 그래도 최소한 나라는 한 사람의 인식 변화가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수 많은 서비스직 사람들이 받던 부당한 대우의 비율을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아, 물론 독일은 친절한 비율이 더 늘어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흠흠) 










글: 노이

사진: Photo by Icons8 Tea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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