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Dec 01. 2021

도서관에서도 시원하게 코 푸는 독일 사람들

+ 집순이가 외출을 하는 과정


천성이 집순이라 밖에 잘 안나가기에 한 번 나갈 때 미루던 여러 일들을 한 번에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습성은 사는 나라가 바뀌었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는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가면 한 번에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할 때가 종종 있고 오늘이 그랬다. 그럴 때면 또 최적의 경로와 시간을 맞춰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독일은 집순이에게 조금 더 까다롭다. (독일은 예상치 못하게 문을 빨리 닫거나 하는 곳이 자주 있으므로 더더욱) 그런데 그 이동 루트를 계획하려다보면 집에 밍기적거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루트를 짜다가 다른 것에 한 눈이 팔려 삼십분, 한시간이 순삭될 때가 있다.


그러면 이미 또 그 시점에서 이동 루트를 다시 계획해야 한다. (처음 계획을 짤 때는 바로 나간다는 전제조건으로 짰기 때문에) 그래서 일단 대충의 루트만 머릿속에 집어넣고 스스로 궁둥이를 뻥 차서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안그러고 밍기적대다가 해까지 져버리면 의욕이 마이너스 200% 떨어져버려서 아예 나가지 않게 되버린다. 게다가 요즘은 해도 빨리 져서 오후 네시반만 되도 해가 지고 다섯시가 넘어가면 밤 8시처럼 깜깜하다.


오늘은 일단 성공적으로 몸을 집밖으로 내보내는데에는 성공했다. 이제 지하철 안에서 머리를 (나름) 엄청 굴린다. 오늘 밖에서 할 일은 다섯 가지. '도시 관찰 과제 수행, 헬스장 결제 및 계약 기간 연장 확인, 만약 연장되었다면 운동하기, 도서관 가서 저녁 수업 하나 듣고 내일 수업 준비 하기, 저녁 먹기(!)'. 사실 밥은 왠만하면 먹고 나오는게 좋은데 궁둥이를 빨리 걷어차느라 밥먹는 걸 까먹고 나와버린 걸 지하철 타고나서야 깨달은 나. 일단은 목적지로 이동한다. 변수는 헬스장이었다. 내 생체 리듬 상 운동은 하루의 가장 마지막에 하는 게 좋은데, 문제는 결제와 계약 기간 문제 등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결제와 계약 등의 서류 처리를 할 수 있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이 나눠져 있고 내 문제를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직원이 몇 시에 거기있는지는 알 수 없다. (1:1 상담하려면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함) 하지만 보통 낮시간에 있고 너무 늦은 시간에는 없다. 문의는 어제 해두었기에 결과만 들으면 되는 것이긴 하지만, 독일 특성 상 아직 처리가 안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등등... 다 적기에는 너무 긴 여러가지 변수들이 있었다. 어찌저찌 나름 만족스러운 일처리를 마치고 저녁 온라인 수업을 듣기 위해 저녁은 간단히 미니 피자로 떼우고 근처 대학 도서관으로 갔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해도 괜찮거나 아니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독일의 매너 중에는 당연히 우리나라와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 중 아직까지도 내 눈에 신기한 것이 있다. 한동안 사람을 별로 만나지 않아 잊고 살았는데 오늘 일로 아직도 내가 그들의 '이 습관'에 익숙해져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아슬아슬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줌을 켜고 앉아있었다. 모두 각자의 공부에 집중하며 조용한 분위기인 곳이라 이어폰 볼륨도 적당히 줄였다. 그런데 옆자리 사람이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로 "패애애애애앵"하고 코를 풀었다.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나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깜짝깜짝 잘 놀라는 편이라 만약 그 때 에어팟을 귀에 꽂고 있지 않았다면 데시벨이 더 올라가서 진짜 온 몸으로 놀랐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코푸는게 괜찮은 줄은 알았지만, 도서관에서도 이렇게 당당할 줄이야! 1분만 걸어가면 화장실이 코앞에 있는 입구와 가까운 자리였음에도 그것은 그들에게 그냥 습관이다.



반대로 내가 독일 사람은 아니지만 외국인 친구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원에 다닐 때 였고, 첫 수업이라 선생님도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도 모두 초면인 상황이었다. 그 때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이라 다른 사람들과 옆자리에 붙어서 앉았었다. 집중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오른손의 손가락들을 엄지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뚝', '뚝' 하는 뼈소리를 냈다. 근데 하필 팔꿈치를 책상 위로 올리고 있어서 손의 위치가 옆자리 사람의 왼쪽 귀 바로 옆이었다. 그 학생은 너무나 깜짝 놀라며 무섭다고 하지말아달라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에 그 사람을 놀래켜버려 미안한 마음에 급히 사과를 했지만, 그 친구는 얼마나 놀랐을까?




문화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사람사는 인생사 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별 거 아니지만 나라마다 참 달라서 이해가 안가는 일도 많다. 어떤 것들은 익숙해지지만 어떤 것들은 그럴 수 없다. 코는 제발 나가서 풀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친절에 목숨 거는 한국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