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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Dec 28. 2021

독일 겨울 나기의 필수품

히터도 고장나고 세탁기도 고장난 날



시작은 어젯밤이었다. 어쩐 일인지 방에 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이쭝(독일의 난방 시스템, 히터형이다)을 만져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다른 하이쭝도 그런지 체크를 해본다. 이런, 망했다. 난방이 되지 않는다. 모든 히터가 다 멈춰버린 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12월 치고는 유난히 추운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일까? (그래봐야 한국보다는 덜 춥지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새 무슨 실수를 한 건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일단 이웃들과 먼저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옆집의 문을 두드리니 그들도 추운 듯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나와서는 자기집도 히터가 고장이라고 했다. 연락을 해서 고치고 있으니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조금 안심했다. 나 혼자만 고장난 것 보다야 전체가 문제면 더 빨리 고쳐줄 것 같아서 였다. 그런데 결국 그 날 밤 잘 시간이 되도록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정말 몸이 안좋을 때만 켜는 전기장판을 꺼내 들었다. 전기장판 덕에 몸은 따뜻하긴 했지만, 코끝이 시리고 자다가도 기침이 나왔다. 다음 날인 오늘이 되어서도 방안은 서늘했다. 집안인데 실내 온도가 12도까지 내려가고 우풍이 계속 양쪽 어깨를 감쌌다.


애초에 독일은 오래된 건물이 많아 단열이 그렇게 좋지 않은 곳이 많은데다 난방 시스템 자체가 한국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겨울 대비가 더 중요하다. 좋은 이불과 내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모든 건 다 구비해 두는게 심신 건강에 좋다고나 할까. (더 자세한 건 아래에...) 뜨끈하게 바닥을 데우는 한국의 난방 방식과 달리 독일은 벽에 설치된 히터에서 열을 내뿜어서 방을 데운다. 따뜻해지긴 하지만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 뭔가 2% 부족하다. 겨울이 되면 한국이 유독 그리운 이유 중 하나다. 



반짝반짝 별무늬 전기장판





그런데 룸메가 빨래를 하러 갔다가 갑자기 SOS 요청을 해왔다. 공용 세탁기에서 빨래를 돌리려고 빨랫감을 넣고 문을 닫은 뒤 세탁기의 전원을 켰는데, 경보음이 울리고 에러 메시지가 뜨더니 문이 안 열린다는 거였다. 밀레 세탁기가 고장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공용 세탁기는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지라 가끔 고장이 난다. 그래서 일단은 세탁기의 문은 가장 마지막에 닫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부동산에 전화를 했더니 이웃 중 한 명이 열 줄 알거라고 해서 찾아갔다. 그런데 이 분 자다가 일어난 모양. 벌써 죄송한 마음 가득. 그런데 부동산 분이 착각을 한 모양인지 내가 찾아간 사람은 세탁기 문을 열 줄 모른다고 했다. 만약 수리기사를 부른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뻔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 선에서 끝내고 싶었다. 이리저리 세탁기를 둘러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글에서 검색을 해봤다. 세탁기 브랜드명인 밀레와 에러 메시지를 검색하니 이런 저런 가이드가 나왔다. 내 경우에는 Waterproof라는 에러 메시지가 떴는데 아마 배수와 관련해서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검색 결과에 나온 여러가지 팁 중 가장 바로 해볼 수 있는 하나는 세탁기를 앞으로 45도 정도 숙이는 것이었다. 혼자 했더니 세탁기가 진짜 무거워서 둘이 힘을 합쳐 세탁기를 앞으로 숙였다. 그랬더니 아래 쪽에서 물이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물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세탁기를 원래대로 놨더니 에러 메시지가 멈추고 문을 열 수 있었다! 와우.  둘이서 마치 강스파이크를 때리고 역전 스코어를 만든 김연경 선수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ㅋㅋㅋ) 이 큰 기기를 임시로라도 스스로 고쳤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 몇 초가 지나자 세탁기는 또 다른 에러 메시지와 함께 또 경보음을 울려댔다. 문 열고 빨랫감 찾았으니 됐다. 나머진 수리기사님께 맡기도록 하자...



결국 카페로 도망




세탁기와의 씨름 때문인지 몸에 잠시 열이 났지만 차가운 집 공기 때문에 금방 식어버렸다. 결국 카페로 도망가서 저녁까지 외식을 하고 들어왔다. 다행히 히터는 수리가 되어있었다. 정말 오늘 밤도 냉방에서 자야했으면 골병 들었을 것 같다. 앞으로 누군가 독일 생활의 팁을 물어본다면,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집에는 꼭 핫팩이나 전기장판 아니면 침낭을 구비해둘 것을 강력 추천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구글 검색은 언제나 옳다!)


독일 핫팩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뜨거운 물을 넣어쓰는 독일 파쉬 핫팩이 많이 알려져 있고, 실제로 독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괜히 한두푼 아낀다고 망설이지 말고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두 개 정도 넉넉히 사서 겨울에 잘 때 하나는 품에 안고 하나는 발 끄트머리 즈음 놓아두면 따뜻하고 좋다. 오늘처럼 난방이 고장나는 날에는 더없이 든든하다. 또 독일 가정에서는 '체리씨 쿠션(Kirschkernkissen)'이라고 해서 안에 체리 씨앗이 든 베개 같이 생긴 핫팩도 사용한다. 이건 물을 넣을 필요없이 전자렌지에 1분 정도 돌리면 끝이라 더 간편하다. 나는 가정집 에어비앤비에 묵을 때 감기에 걸렸어서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줘서 처음 써봤는데 꽤 따뜻함이 오래 갔었다. 시중에서는 잘 본 적이 없는데 보통 체리씨앗만 넣으면 되기 때문에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쓰거나 온라인 스토어에서 찾을 수 있다. (오프라인에도 있긴 하겠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보통 아이들용으로 많이 쓰는 것 같다.




FancylittlethingsDE에서 판매하는 아이용 체리씨 보온 쿠션. 너무 귀엽다.




전기장판은 독일에서도 판매를 한다. 독일어로는 Heizdecke라고 검색하면 많이 볼 수 있다. 독일에서도 구매는 할 수 있지만 가격대를 생각하면 한국에서 사오는 것이 더 저렴하고 성능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 나는 독일에 올 때 동생이 하나 챙겨줘서 들고왔는데 정말 잘 가져온 것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전기세가 걱정되어 자주 쓰진 않지만 아프거나 이런 위기 상황에 매우 유용하다. 


침낭은 캠핑을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쯤 가지고 있겠지만 캠핑러가 아닌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물건이다. (심지어 이 위기 상황에서도 내게 침낭이 있다는 걸 잊고 안썼을 정도다) 예전에 어떤 분이 반강제로 나에게 주셔서 얼떨결에 들고와서 한 번도 안썼는데 다음에 또 히터가 고장나면 (아니길 바라지만) 꼭 침낭을 같이 써 볼 생각이다. (사실 지금은 히터가 고쳐졌는데도 써보려고 침대 위에 깔아놨다)




요즘은 독일에도 한국처럼 바닥을 데우는 난방 방식인 곳도 종종 눈에 띈다. 주로 새로 지은 건물들 중에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런 건물은 좀 더 비싸겠지만... 만약 난방이 너무도 중요한 사람이라면 아예 독일 정착 시 집을 고를 때 바닥 난방 방식을 찾아보시는 것도 염두에 두시길! (물론 많지는 않을 것 같지만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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