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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22. 2017

좋아하는/잘하는 일을 찾는 법

+ 노오오오력에 대한 자기 성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습관은 도무지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 최소 5분에서 길면 한 두시간까지도 슝 날아가버리게 만드는, 그래서 가끔은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는.


'아, 내가 이러려고 스마트폰을 샀나...'


그 습관이 조금이라도 내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도록 양념을 추가했다.

그것은 바로 자기계발 콘텐츠를 알람으로 받는 것.

가장 손이 많이 가게 되는 것은 습관앱으로 이용하고 있는 '페달'이라는 앱에서 보내주는 자기계발 관련 글이다.

물론 이것도 내성이 생겨서 매일 매일 경각심을 가지고 일어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열에 다섯 정도는 가슴에 와서 꽂히는 기분이랄까.



오늘 받은 알람 중 하나는 제목부터가 지금의 나에게 시속 200km로 날아와 박히는 말이었다.






문제는 내 안의 두려움이다





'문제는 내 안의 두려움이다' 글 보러가기: http://steadypedal.com/?p=4234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일을 추진시켜야 하는 나에게 지금 엄청난 스트레스가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주저앉기 바빴다.

위 글을 읽고, 두려움에 관해 생각하다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세상은 나에게 성공하려면 '노오오오력'을 해야한다 하고,

나는 지금 '노오오오력'을 하고있지 않다는 건 확실하고,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실패'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인한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오오오력이 무엇인지 짧게 성찰을 한다는 것이 그만 Feel을 받아서 브런치에 긴 글까지 끄적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노오오오력을 하고 싶어하는 대상인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고.






하기 싫은 일을 하든, 하고 싶은 일을 하든, 어쨌든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어차피 내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들이겠다고 결심하고 정들었던 회사를 떠났다.

그러면서 최근에 하고 싶은 일을 몇 가지 정했는데, 도무지 제대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지를 않고, 불안감만 커져갔다.


무언가를 하기로 정했으면 노력을 해야 하고, '뭔가 하고 있긴 있으니 노력을 한다고는 할 수 있는데, 아니 이게 도대체 노력이 맞긴 맞나?' 뭐 그런 생각들이 드는 거다.




성공하려면 노오오오력해야 돼.




계속해서 머릿속에 마음속에 저 말이 울려대는 것 같았다.

이것조차도 대한민국 사회가 혹은 자본주의가 나에게 뼛속까지 심어준 거짓 철학 이리라. (언젠가는 저 말을 씹어먹고야 말겠다...)



그래서 이 단어의 출처, 부정적인 의미 여부를 떠나서 '노오오오력'에 대해 짧게 자기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대 한국 사회가 말하는 노오오오력의 정의는,

놀고 싶은 거 참고, 먹을 거 참고, 잘 거 참아가면서 한 가지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행위이다.


하지만 나는 밖에 나가서 안 놀고, 배고픔이 안 느껴져서 안 먹고,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줄인 적은 있어도 그것을 '참은' 적은 없다.




나는 굳이 본능을 참으면서 애쓴 적이 없었다.

공부하다가 졸리면 잤고, 배가 고프면 밤 열두시에도 라면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면서 '노오오오력'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는 패배주의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먹지도 않고 잠도 줄이면서 몰입하던 관심사는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말많고 탈많은 게임이었고, 패배주의 더하기 게임중독이라는 자책에 빠져 자존감도 현저히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막상 취업의 문턱에 섰을 때, 그 게임 덕분에  취직을 했고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남들이 봤을 때 나는 '노오오오력'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즐거운 모오오올입'으로 노력에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그 대상을 글쓰기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안의 두려움'이었다.

'내가 쓰는 글을 누가 봐주겠어', '내가 하는 얘길 누가 들어주겠어'라는 꽤 그럴싸하고 굉장히 똑똑해보이는 변명으로 포장되어 있었을 뿐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두려움으로 온몸과 마음의 근육이 긴장하고 수축되어서 도무지 움직이질 못하고 자꾸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계속 반복해서.



그래도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남들이 말하는 노오오오력 좀 안 해봤겠냐고?

뭐 그런 건 했다.

시험 일주일 전에 벼락치기하고, 회사 다니면서 사장님 돈 벌어드리려고 하라는 대로 다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단 한번도 스스로가 원한 노력이 아니었다.

점점 내 건강을 위협하는 자학에 가까운 어리석은 인내였을 뿐이었다.



난 그 때까지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분명한 건 나는 불행하다는 것이었다.

즐거운 기분으로 일하고 싶었다. 내 삶의 1/3 이상을 쏟아붓는 '일'이라는 분야에서 나는 좀 더 행복해지고 싶었다. 아니면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게 느껴지는 일이었으면 했다. 낑낑대면서 힘든 것을 참아가면서, '아 죽겠네'라는 말을 뱉어가면서, 꾸역꾸역 내 인생을 구겨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노오오오력'은 사실상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대신 나는 즐거운 '모오오올입'을 선택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노오오오력'을 하든 '모오오올입'을 하든 '내'가 하게 될 일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경험한 만큼의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통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요구받고, 또 스스로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본인이 생각하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찾는 법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오늘 Feel받아서 일기치고는 좀 장황해졌다)






첫 번째, 내 마음이 편한 일 찾기



만약 아직 '직업'을 가지기 전 단계라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정확히는 '내 마음이 편안하게 느끼는 성향을 가진 일'을 찾는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나는 일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데 그걸 어떻게 찾아? 언제 그걸 다 해보고 언제 취직해서 언제 돈 버나?'라고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한두 번 만나본 사람에게 '좋아해요'라고 고백할 수 없듯이, 한 번도 해보지 않았거나 한 두 번 해본 일을 가지고 '나 이 일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때 굉장히 원초적인 관점으로 '내 마음이 편안하게 혹은 흥미롭게 느끼는 성향'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예를 들면, 내가 혼자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팀을 이뤄서 하는 활동을 좋아하는지 등. 이런 경험은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을 기반으로 또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그것을 옳고 그르다, 좋다 나쁘다로 보지 않고 나에게 '맞느냐 맞지 않느냐'로 저울질 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찾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 일단 시작해서 어디로든 걷되,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왜냐하면 스스로가 선택했든 타의에 의해 선택한 직업이든, 일정 기간 그 '직업'을 경험한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국에 진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일이었어도 나와 맞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원한 일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나와 맞을 수도 있다.

같은 회사, 비슷한 업무라도 본인이 원해서(일이든 성공이든) 즐겁게 일하는 이가 있고, 원하지 않지만 일은 맞는 편이라 그럭저럭 하는 이가 있고, 원하는데 잘 안돼서 속상한 사람이 있고, 원하지도 않고 맞지도 않아서 나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가장 마지막 예시에 해당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왔다. 그리고 이 고민을 한지 10년 만에 겨우 '아, 이 일이라면 계속해서 하고 싶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일을 찾았다. 그 일은 내가 거의 평생에 걸쳐 해온 일, 글쓰기다. 단지, 그동안은 그것을 남 앞에 내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혹은 그 능력으로 당장 돈을 벌 자신이 없어서 그것을 내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한 가지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계속 더 많은 일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내가 선택한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고 해서, 후회할 일도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경험일지라도 늘 소중한 배움과 사람들을 얻는다. 하물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경험에서 얻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두 번째, 잘하는 일 찾기



잘하는 일, 못하는 일을 구분하는 건 사실 굉장히 심플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건 절대적으로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상대평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 기준이 하릴없고 끝이 없다.

(상대평가를 하면 김연아 선수 외의 피겨 선수들은 모두 자괴감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어리석게도 나는 지금까지 나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 왔던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세상에 나와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계기가 어떻게 됐든 내 손에 쥐어져서 내가 하고 있고 이 일로 남들한테 별로 욕먹지 않고 살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잘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감독이 최고의 배우 하고만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일이고, 모든 회사의 영업팀이 세계 최고로 영업을 잘하는 사람을 다 공유할 수도 없는 일이고, 모든 회사의 재무팀이 국내 최고의 재무사나 회계사인 것은 아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큰 손해 없이
당신의 몫을 해내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잘하는 일이다.




(이 말을 회사 다니던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다...)



예를 들어, 나는 상사가 나에게 지금 '잘하고 있다'라고 칭찬을 해줘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었다. 분명 속으로는 '이 직원은 왜 더 잘하지 못하나...' 아니면 '그래 당신이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긴 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분위기상 '당근'을 먹여서 '채찍질'을 하려는 것으로 곡해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난 안되나 봐.




칭찬을 듣고도 좌절을 하다니, 참 까다로운 직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 일을 못하진 않았다. 아니 꽤 잘하는 편이었다. 회사에 엄청난 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내 몫은 충분히 다 해내었다. 결국 그 일은 내가 게임을 좋아해서 시작한 게임 관련일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겪은 결과, 결국 내가 좋아하거나 내 마음이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경력도, 안정적인 월급도 다 버리고 잘하는 일보다는 내 마음이 편안한 일을 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고.




애초에 못하는 일이라는 것은 없다. 해서 안되는 건 없다. 그저 남들보다 '그럭저럭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아 마음이 너무너무 내키지 않아서 그저 버티고만 있는 상황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본인이 가장 냉정해져야 한다. 물러나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된다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식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내가 '잘하는 일'이란 '내가 이 일을 했을 때 이 일이 큰 손해를 끼치지 않고 잘 마무리되면 잘하는 일'이다. 1등을 해야만 잘하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물론, 실수로 인해 종종 발생하는 예측할 수 없는 사고는 제외하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 그리고 이 일에서 '의식적인 노력'을 첨가해서 운이 따른다면 당신은 '더 잘하게 될 수 있고',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성장할 것이며, 아니면 그 상태에서 머물러도 된다. (이것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 정도는 당신에게 있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은 다르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답도 없다.
내 마음이 즐겁고 편한 쪽을 향해서 가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의 현재 상태를 뛰어넘어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한 '노오오오오오오력'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와서 깨닫는 거지만 그 대신 마음에서 우러나는 몰입을 했다. 가장 집중해서 몰입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은 대기업 공채 합격의 타이틀이었다. 결론적으로 나와 맞지 않다 판단하여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몰입한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면접을 준비하던 시기의 그 집중력과 몰입감의 느낌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예전에는 내가 노력하는 인간이 아니라 한심하다고 생각했고, 취직을 할 수 있었던 건 100% 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비하였다. 지금 나는 노오오오오오력 하지않고도 여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나에게 필요 없는 단어인 것 같다. 대신 '즐거운 몰입'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린 것 같기도 하고, 빨리 깨달은 것 같기도 하고.



결론,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노오오오력하지마. 즐겁게 몰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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