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09. 2017

굿바이 망원동


나는 망원동에 사는 평범한 월세 세입자다.

홍대부터 시작해서 땅 좁은 줄 모르고 뻗어나가는 상권의 세력에 망원동이 갑자기 유명세를 타더니 돈 많은 장사치들의 등살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대다수의 집주인들은 올라가는 임대료에 어깨춤을 추고, 그 대다수의 집주인들의 건물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도 등 떠밀리듯이 떠난다. 


 서울 바닥에 이런 일이 한두 번이냐고, 이사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망원동은 내가 살아왔던 서울의 다른 지역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그동안 12년 가까이 자취를 해오면서 학교따라, 회사따라 집을 옮겨 다니느라 여기저기서 꽤 살아왔었는데 서울 바닥에서 망원동처럼 '지역 커뮤니티'가 활발하고 끈끈한 곳이 없었다. (학부모 모임 같은 거 말고 지역 주민 차원에서)


 단순히 페이스북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바로 근처인 합정동 좋아요와 회원수 차이가 10배다. (망원동 좋아요 2만 명, 합정동 좋아요 2천 명) 회원만 많은 게 아니라, 활동도 활발하고, 그 카테고리도 다양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생기기 마련인 다툼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다양성마저도 어느 정도 품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내가 친하게 지낸 동네 이웃이 생긴 건 아닌데, 그래도 커뮤니티 자체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건 현대 사회에서 - 특히 서울에서 - 느끼기 어려운 '유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신 분들이 연구해서 보고서 쓰셔도 좋을 특이한 현상이라고 봄) 그래서 이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더 안타깝다. 그리고 나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제 곧 망원동을 떠나게 될 것이고, 이 커뮤니티도 안녕이겠구나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나는 어차피 해외로 곧 떠나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올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아쉬운 마음에 굿바이 편지를 망원동 좋아요 페이지에 끄적끄적 적고 돌아선다. 새벽 1시 30분쯤 올린 글에, 30분 만에 22명이 공감하고 6개의 댓글이 달리고 나의 마음은 적잖이 위로받는다. 


이거였구나.

망원동 좋아요가 좋았던 까닭이. 

그냥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는 순수한 위로.

페이스북의 다른 친구들은 공감할 수 없는 '내가 사는 곳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사람들'

어디 가서 이런 커뮤니티를 또 만나랴 싶다.


짐 정리를 하고, 중고 물품들을 나누거나 팔고 나면 완전히 끝이 나려나.




안녕, 망원동.



 망원동 좋아요에 남긴 편지 



  망원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의 빛과 그림자를 그동안 살면서 직접 겪고, 또 망원동 좋아요를 통해서 바라봐왔습니다. 코 앞에 예쁜 카페와 맛집이 하나씩 생길 때는 오가는 길 호기심에 가본 곳이 마음에 들면 단골이 되기도 하였습니다만, 급작스러운 번성으로 새로운 가게들이 동네 주민으로서도 따라잡기 벅찬 속도로 생겨나면서부터 더 이상 새로운 맛집 소식이 올라와도 가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 집도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날이 오늘이 되었네요.


집이 낡아 여기저기 생기는 잔고장을 수리해달라고 했더니 '이런 건 어쩔 수 없다', '불편해 보이지 않으니 못 고쳐주겠다'며 거절을 하더니 끝에는 슬며시 '계약 기간 까지만 살고 나가주었으면 좋겠다' 고 하시더군요.


저희가 정당하게 수리를 요구하는 태도를 트집 잡으며, 이것저것 핑계를 대더니 결국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시는 그 마지막 태도가 야속하고 얄미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차라리 월세를 올리고 싶다, 동네 집값도 오르고 해서 집을 내놓을 것 같으니 이해 좀 해달라,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더 좋을 텐데요.


'내가 서울에 자주 올라올 것 같아서...'
'멀리 사니까 월세 관리가 어려워서 전세로 돌리려고...'
'집을 팔까 싶기도 하고...'
라고 갖가지 이유를 대시는데...


왠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너무 속마음이 눈에 빤히 보이는...?


'미안한 얘기지만 결국 사회가 집주인이 갑이고, 세입자가 을이지 않냐...'는 말을 꺼내는 사람 앞에서 계약 후 2년이 넘은 저희는 더 이상 주장할 권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사를 준비할 기간은 충분히 주어졌고, 딱히 도움 요청드리는 건 아니지만, 

그냥 속상한 마음에 끄적이고 갑니다.


음, 아마도 결국엔 망원동은 떠나게 될 것 같고,
이래저래 정이 들었던 망원동 좋아요에 올 일도 줄어들겠지요. ^^


툭하면 여기저기 고장 나는 거 하며, 거실에 있을 때마다 옆집 사는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 허술한 방음도 참기 힘들었는데 잘 됐다 싶네요! (지금도 들려요... 드르렁드르렁 -_-)


마지막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관련된 이미지를 찾다가 망원동과 잘 어울리는 문구가 있어 올리고 갑니다.


'COMMUNITY NOT COMMODITY'
'(이 곳은) 상품이 아니라 커뮤니티(이다)'



특히나 다른 지역에 비해 커뮤니티가 끈끈했던 망원동 이기에,
나중에 이런 커뮤니티조차 변질될까 우려도 되네요.


모쪼록 비슷한 일을 겪게 되실 분들이 더 안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겪게 된다고 해도 최소한 서로 마음에 상처는 주지 않고 잘 '맺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