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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07. 2017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어떻게 살고 있나요?' 라는 말은 '어떻게 죽고 있나요?'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곧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며,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우리의 삶은 찰나와 같이 짧게 반짝 빛나는 돌이 되어 우주로 돌아갈 것 이다.


지금까지의 내 과거가 어떠했는지는 상관없다. 어제까지 내가 죽도록 불행했다고 하더라도,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하다면 나는 행복하게 살고 죽은 사람이다.



죽는 순간 찾아오는 육체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 고통은 무섭고 아플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더 깊은 무의식 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서가 아닐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발목을 잡고, 그 아쉬움은 모두에게 다른 무언가이겠지만 결국 그 끝은 '그의 행복', 혹은 '그가 행복하길 바라는 누군가의 행복' 일 것이다. 


 요즘 나를 참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별 것 아니지만 스스로는 너무 행복해서 이대로 내 명이 다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상하게 너무 행복하면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금 죽어버리면 더 행복하지 못할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이처럼 행복한 순간에 잠드는 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항상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하지, 라는 것이 막막해질 때면 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세네카의 '행복론'을 읽은 뒤로부터 생긴 버릇이다.

언제 끝이 다가올지 모를 인간의 인생에서, 당연히 내일을 살 것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10년 뒤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운명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 이라고.



그래서 누군가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잠들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면서 살거에요.
언제 죽어도 가장 아름다운 돌로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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