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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13. 2022

그 집을 사지 않고 독일에 온 것은
잘한 일일까?


종종 타지에서 만난 누군가가 2년 또는 3, 4년이나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올 때면 머리로는 또 입으로는 '어떡해. 너무 그립겠다...'라고 공감해주곤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당시에는 그 그리움을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해외에 나와있기는 해도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한국땅을 밟고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시국이 시작된 뒤로 함부르크에만 머물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2년 하고도 반이 지나버렸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땅을 밟지 않은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는 왠지 점점 시들해져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찾아온 올여름,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과 이곳에서의 휴가 기간이 마침 들어맞아 이번에야말로 한국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150만 원짜리 왕복 티켓을 끊었다. 한국에 갈 때는 경유가 1번이지만 경유만 12시간이라 하루정도 시간을 날리는 셈이었고, 독일로 올 때는 경유를 2번 해야 하는 상당히 도전적인 일정이었다. 바이러스와 전쟁으로 유럽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의 일정과 가격은 전과는 사뭇 달랐기에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과 버틸 수 있는 에너지 안에서 타협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는 항공사 측에서 귀국편을 취소하며 대체 항공편을 경유 1회로 마련해준 덕분에 투자한 돈에 비해 편하게 돌아오기는 했지만. 



4주의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가족과 가능한 많은 시간 보내기였다. 친구와 지인들은 최소한으로 만났다. 다들 바쁠 텐데도 시간을 쪼개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만나진 사람들은 너무나 반가웠고, 미처 연락이 닿지 않은 친구나 일정이 맞지 않거나 거리가 멀어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보지 못한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누지 못한 서로의 근황을 공유했다. 누군가의 결혼, 출산, 승진, 이사 등등 다들 어딘가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었다. 힘든 시간을 지나온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극복했거나 또는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성장해 나가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각자가 다들 자신의 위치에서 자리를 잘 잡아나가고 있는 듯 보여 다행이고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벌써 얼마씩 돈을 모았다는 나보다 어린 동생들의 이야기, 이제 한 부서의 부장,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신입시절 동기들의 소식, 집을 사는 사람, 차를 사는 사람들, 노후 준비를 마쳤다는 제일 부러웠던 소식까지. 




게다가 예전에 살았던 동네에 오랜만에 갔다가 내가 사려고 했던 윗집이 재개발지역에 들어간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한 빌라에서 살면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윗집 노부부가 시골로 내려가며 집을 내놓은 것을 오며가며 인사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여 가격을 물으니 대출을 받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값은 아니었다. 그 때 태어나 처음으로 진지하게 집을 사볼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다시 만나 집 매매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집값을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도 부동산 매매가 전문이 아니었던 사람들이라 내게 이야기하고 나서 돌아서서는 '사실 이 정도는 더 불러야 했던 게 아닐까?' 싶어 점점 더 올렸던 것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꾸 말을 바꾸는 그 분들에게 신뢰가 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대출을 받아 이 집을 사게 되면 평생 대한민국을 떠나지도 못하고 대출의 노예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본인은 재테크도 부동산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독일에 가고 싶어 매우 애가 타던 사람이었고, 그 집을 사려면 독일행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나는 생애 첫 주택 구매 대신 독일행을 선택했다. 부동산으로 노후 준비를 마친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그 때 그 집을 샀어야 했나 후회가 되었다. 물론 그 집은 아파트가 아닌 빌라 건물에 속한 집이었기 때문에 재개발구역으로 지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복잡할 수도 있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그래도 당시 그 지역이 꽤나 번창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익이 났으면 이익이 났지 손해는 없었을 것 같단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쉬이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어쩌면 인생을 뒤집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닐까?

'에이 이미 다 지난 일인데 뭐'라고 넘기기에는 좀 많이 아쉬울 것 같아서 나는 내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였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열매들은 비슷하다. 부, 명예, 건강, 사랑, 가정 그리고 자유 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보통 한 사람의 인생에 한 번에 다같이 손잡고 찾아오지 않는다. 흔히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는 시련, 질병, 고통, 각종 사건사고들을 겪는 동안 각자가 내려온 선택들에 따라 원하는 열매를 따게 된다. 나는 그 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자유라는 열매를 딸 것 같다. 그리고 부의 열매는 나중에 따도 늦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태양이 유럽과 한국을 동시에 밝게 비출 수 없는 것 처럼, 인생도 모두에게 늘 똑같이 밝을 수는 없는 거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열매를 따기 위한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 만약 모두가 똑같은 열매를 선택한다면 그것이 어찌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노란색 열매를 따서 인생을 채우고 누군가는 파란색 열매를 따서 인생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네 삶이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독일 친구 P는 이렇게도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네가 사는 법이 좀 이상해보일 수 있을 거야. 또 넌 분명 독일에 있는 내 주위 사람들 중에도 꽤 '이상한' 사람인건 맞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봐. 너는 한국을 떠나서 이미 독일에서 5-6년을 살았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야. 6년 전에 넌 이미 니가 속해있던 사회의 사람들과는 꽤 다른 선택을 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네 인생을 그 사람들의 인생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닐까?" 

그 말도 맞았다. 애초에 다른 이들의 인생과 내 인생을 비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내가 떠나온 사회의 대세와 내 인생을 비교한다는 것은 더욱 더 어불성설이다. 비교를 한다면 역시, 과거의 나와 비교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 나는 경제적 부는 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마음의 부를 얻었다는 점에서 내가 얻은 열매도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꽤 마음에 든다고나 할까. 앞으로 졸업까지 남은 2년. 또 그 이후. 어떤 열매를 따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때에도 똑같은 실수로 내 인생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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