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28. 2023

독일어로 서술형 시험
보고 왔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만큼 가장 가치 있었던 시험 기간

독일어로 서술형 시험 보고 온 인프피의 일기

'시험 기간'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머리를 끙끙 싸매고 어려운 내용을 암기하기 위해 책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시간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만한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그런데 만약 그 시험공부를 우리나라 말도 아닌 외국어로 한다면? 상상한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내가 지금 하고 있다.



오늘로써 독일 유학 6학기(한국의 3학년 2학기)를 거의 마쳤다.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독일은 겨울부터 새 학기를 시작하고 두 번째 학기가 여름에 마무리된다. 그래서 여름 학기를 마무리하는 날에 좀 더 후련한 기분이 든다. 우리 과에서의 6학기란, 누군가는 부지런히 학점을 따서 졸업 논문을 쓰고 있고, 누군가는 조금 여유 있게 걷고자 1년, 2년씩을 더 공부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는 그런 시기이다. 나는 그중 후자의 위치에 서있다.



오늘은 우리 학과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 중 하나인 '도시 경제학'의 시험이 끝났다. 주로, 학술적인 글을 읽고 토론하거나 에세이를 쓰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학과이기 때문에 '경제학'이라는 과목은 우리에게 좀 많이 낯설다. '경제'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도 무게감인 데다 시험의 방식도 가장 어렵기로 유명한 '서술형 주관식' 시험이었다. 예전에 '도시의 역사'라는 과목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시험을 본 적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과목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내게 부담이 덜 했다. 그런데 이 도시 경제학 수업은 강의 자료부터 수업, 시험까지 모든 게 독일어였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학생들도 재시험을 보기 일쑤라는 악명 높은(?) 과목이었기에 이 과목에 대한 나의 공포는 학기 시작 전부터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나에게도 주어진 시간은 비슷한데, 나는 외국인이라 모르는 단어가 더 많고, 한국어로 봐도 어려운 내용을 독일어로 이해해야 한다는 환경적인 부분이 심리적으로 나를 가장 많이 짓눌렀다. 게다가 나는 저 젊은 20대 친구들보다 체력도 더 저질이라 옛날처럼(?) 벼락치기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지난 학기 동안 몇 번 무리해 보았는데 몸의 한계를 느꼈다). 나이 조금 더 먹었다고 몸을 사리게 되는 나를 자주 본다. 지레 겁을 먹는 일이 더 늘었다. "도시 경제 너무 어렵다, 걱정이다"라고 말하는 독일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덜덜 떨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이 수업을 듣지 않고 다른 걸 하고 싶었다. 문제는 이 수업이 필수과목이라는 점이었다. 졸업을 위해서는 무조건 일정 수준 이상 점수를 내서 시험을 패스해야 했다. 시험을 안 보거나 최소 기준을 넘지 못할 경우, 졸업을 할 수 없다. 졸업 논문은 따로 있지만, 졸업 시험 같은 압박을 주는 시험이랄까. 어쩌면 정말로 내 유학 생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과목이었다. 불안은 날로 커져 갔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를 한 번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내가 한 번 보고, 두 번 보아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어떡하지?' 시험은 총 3번까지 볼 수 있지만, 내가 계획한 졸업 계획대로라면 난 두 번 안에 패스해야 한다. '그래, 두 번 해보고 정 안되면 학과장님과 교수님을 찾아가 대체안을 제시해 보자.' 내가 최선을 다해 보고도 안된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된다면, 내 상황을 고려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시리라고 믿었다. 일단 교수님께 문의해서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서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두었다. 다행히 이해해 주셨고, 사전도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 일단 해보자.




그래, 적어도 한 번은 부딪쳐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딱 재시험 안 봐도 될 만큼만 맞추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았다. 통과 최저 점수는 4점이었다. A, B, C, D, F 등으로 학점을 나누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1, 2, 3, 4, 5 이런 식으로 학점을 나눈다. A+, A- 같은 등급은 1.3, 1.7과 같은 식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나의 목표는 4점. 한국으로 치자면 D학점을 목표로 한 셈이다. 아무리 내 독일어가 엉망이어도 지금까지 4점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4점을 목표로 사활을 건 공부라니. 스스로도 웃음이 났지만, 그만큼 간절한 상황이었다. 



우선 시험 약 50일 전부터 공부 계획을 짰다. 글의 시작부터 인프피라고 밝혀놓고 계획을 언급했다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당연히(?)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전에는 50일이나 일찍 계획을 세운 적 없던 나였다.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셈이다. 거의 평생을 마감일에 닥쳐서 부랴부랴 해치우던 내가 독일 유학을 하면서는 해가 갈수록 과제나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왜냐면 현실적으로 강제되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마감일에 닥쳐서 해낼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외국어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더 빨리 준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계획대로 착착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미리 조금씩이라도 훑어본 것이 심리적 안정에는 도움이 되었다. 



갑자기 웬 심리적 안정이냐면, 나는 스트레스와 불안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둘에게 휘둘리기 시작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때도 왕왕 있다. 그런데 50일 일찍 공부를 시작하는 흉내라도 내었더니 이 불안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왜냐면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의 절반이 거품이었음을 생각보다 빨리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거품에 해당하는 불안은, 내가 불안의 대상을 잘 몰라서, 정말 순수하게 몰라서 무지로부터 만들어낸 허상 같은 것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즉 내가 공부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나니 '생각보다는 해볼 만하네?'하고 거품이 사그라든 것이다. 



물론 남은 절반의 불안은 시험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묵직하게 따라다녔다. 50일간의 시험 준비 기간 동안 나는 여전히 계획한 공부 내용을 자주 미루고, 시간당 나의 학습 능력을 과신했으며, 쉬이 인스타를 켜거나 유튜브를 열고, 정반대 스타일의 과제에 열정이 불타올라 잠시 경제 공부는 뒤로 젖혀두기도 했으며, 너무 졸리면 낮잠도 자고, 겨우 겨우 공부한 것을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시험을 보고 난 지금 짐작하건대, 나의 시험 패스 여부는 오롯이 교수님의 평가 기준의 엄격성에 달렸다. 아예 잘 본 것도, 그렇다고 아예 떨어질 만큼 망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 



그런데 사실 이번 준비 과정이 스스로 굉장히 만족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의 나였으면, 정말 엄청나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예전이라는 게 아주 먼 과거가 아니다. 1년 전, 2년 전의 나는 과제 기간이 되면 곧잘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렸다. 증상이 나타나는 곳은 아주 다양했다. 주로 소화 기관이나 장 등 강력한 스트레스의 압박으로 면역력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스트레스받아하던 과제들은 이번 시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도 가끔 몸이 아픈 적은 있었지만, 그때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시험 기간 중에도 내 생활 패턴을 지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다. 잠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되 7-8시간을 푹 잤다. 그날 공부를 못 끝냈어도 잘 시간이 되면 침대에 들어갔다.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공원 산책을 다녀왔다. 식사도 가능하면 라면보다는(평소 라면 마니아임) 요리를 해서 먹으려고 노력했고, 공부하는 중간중간 잘 쉬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채와 과일도 잘 챙겨 먹고, 영양제도 더 챙겨 먹었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은 건 아니었던지라 몸이 아픈 날이 있긴 했다. 예전엔 아파도 약 먹고 참고 공부를 했다면, 이번엔 아플 땐 그냥 쉬었다. 마음이 아픈 날도 있었다. 하필 또 이런 시기에 마음이 찢어지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래도 이틀 만에 잘 추스르고 일어섰다. 또 너무 어렵다고, 하기 싫다고 불평하며 공부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면서 얻는 배움의 기쁨에 집중했다. 어떤 날은 종종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난 아무래도 이번 시험 망할 것 같다'며 계속해서 불안을 표현했다.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불안이 높은 친구였다. 내가 보기엔 잘 할 것 같은데도 걱정을 멈추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같이 울상을 지으며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을 텐데, 이번에는 친구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주면서도 결국 우리는 해낼 거라는 희망찬(?) 마무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에 대한 불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잘 다스려냈다. 




이번 시험을 잘 패스한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고,
만약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모든 시험을 실패하고 교수님을 찾아가 면담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던 50일 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재시험을 봐야 한다는 상상을 할 때에도, 마음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 '다시 공부하게 된다면 이번엔 이렇게 공부해야지!' 하고 벌써 피드백을 반영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정도였다. 공부를 하면서 힘든 점보다 기쁜 점에 집중하며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애썼더니, 행여나 재시험을 보게 돼서 또 공부하게 된다고 생각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50일 안에 이 정도 해냈으면, 다음 시험은 진짜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시험 후 국룰: 모여서 서로 못 봤다고 좌절하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체력적으로, 마음적으로 지치기는 했다. 시험이 끝난 후 화장실에 다녀와 손을 씻는데 펜을 쥐고 있던 오른손 안쪽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긴장해서 시험 내내 펜을 쥔 손에 힘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듯했다. 시험은 생각보다도 어렵게 나와서 녹록지 않았고, 대놓고 잘못 쓴 답도 있고, 아예 답을 적지 못한 문제도 있었다. 사전으로 단어 뜻을 찾아도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고, 그냥 문제의 90%는 정말 내 마음대로 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시험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시험을 준비한 지난 50일이라는 시간은  나 자신의 새로운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지난 50일 동안 잘 한일

- 주어진 시간 동안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은 것
- 계획대로 안되었다고 남은 하루를 막살지 않고 다시 중심을 잘 잡은 것
- 시험 기간이면 잠도 덜 자고, 밥은 대충 때우던 낡은 습관을 버리고 평소보다 나를 '더' 잘 돌본 것
- 불안과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부딪히는 용기를 낸 것



'나를 챙기기, 규칙적인 생활하기,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하기,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말고 두려움에 마주하기,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기....'

늘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무너지기 십상이었던 다짐들이 드디어 이번에 빛을 보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할 줄 알았던 과목이 사실은 나를 가장 성장하게 해 줄 선물 같은 기회였구나, 50일이 지나고 난 오늘에야 깨닫는다.



이제 빼박 30대 중반인 인프피 유학생인 나.

오늘도 여전히 성장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