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의 온 신경이 곤두선 채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내달리듯 걸었다
S11.
플랫폼에 들어서자마자 도착하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애써 일찍 눈을 뜬 오늘 내 하루의 가성비를 책임지고 있는
아침의 마지막 지하철이었다
아직 일등칸에는 앉지 못해도
일등으로 철로를 달리는 칸에 앉았다
차창에 묻은 정체모를 얼룩을 궁금해하던 찰나
곧 숨을 방해받는다
이 네모난 칸을 채우고 있는 건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인간들 뿐만이 아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연신 자신의 진심을 쏟아내고 있는 저 여인뿐만이 아니다
이 칸에는 보이지 않는 주인이 있다
문득 마스크가 그리웠다
다시 플랫폼에 내려서고
길에 내려서자
햇빛이 내려앉았다
초록불을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차들을 이 나라 말로 세었다
Eins (1)
Zwei (2)
...
Vierzig (40)
갑자기 문득 받을 때마다 묘하게 삐걱거리던 질문이 떠올랐다
'타지에서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
그래 쉽지 않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아주 힘든 것만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친화력이 엄청나서 만났다 하면 모두와 친구가 돼버리는
그런 사람은 더더욱이 아니다
그 반대면 모를까
그런데도 어쩐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힘들다고 할 수도, 힘들지 않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늘 그 대답을 얼버무리곤 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그런데 오늘 아침 더러운 지하철을 타고 십여분을 달려 내린 건널목 앞에서
상쾌한 공기와 햇볕으로 몸을 소독하며
쌩쌩 내달리는 자동차들을 세다가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내가 왜 대답을 망설였는지를
이곳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다
그것이 나를 이곳에서 힘들게 하기도
또 계속 살게도 한다
나는 내 나라에서 살 때에도 이방인처럼 살았다
이제 진짜 이방인이 된다 한들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진짜 이방인이라서 더 편한 지도
어쩌면 나는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진정한 이방인이 되기 위해서
내 나라에서 이해받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이해받지 못하면 문화 차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어쨌든 나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 확률이 줄어든다
이 남의 나라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