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일어를 못해서 좋았다

by 노이의 유럽일기
ginger tea.JPG 에스프레소 하우스의 생강차와 치즈 케이크 (c) noi 2017



혼자 카페에 앉는다.

껍질 채 썬 생강이 가득 들어간 생강차와 치즈 케이크를 테이블 위에 놓고,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는다.

맥북을 열고, 메일을 확인하며 생강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린다.


옆테이블의 두 사람이 서로의 대화에 완전히 몰입한 듯 열을 올리고 있다.

분위기로 봐서는 꽤 재미난 이야기인 모양이다.

그들의 대화가 내 귀에 또렷하게 들리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의미 없는 그 소리들은 자연스럽게 배경음이 되어간다.


사람들과 적당히 섞여 지내면서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이 특수한 상황은,

한편으로는 나를 외롭게 만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고독의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독일어를 못하기 때문에 못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독일어를 못하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나라의 말을 할 줄을 모르니

귀는 열려 있었지만, 사실상 닫힌 것이나 다름없었고,

입도 열려 있었지만, 닫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세속의 모든 연을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세상에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독일어를 못 한다는 사실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노이의 유럽일기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독일에서 글을 씁니다.

2,74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