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 우리 아빠는 툭하면 “누구네집 딸내미는 참 애교가 많던데 우리 집 딸내미들은…” 하고 남의 집 딸자식과 나의 애교 능력(?)을 비교했다. 차라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하면 어떻게든 해봤겠다. 그런데 당최 내가 이런 기질로 태어난 걸 어찌하란 건지!
물론 나도 지지 않고 아빠와 남의 집 아빠를 비교하며 맞받아 쳤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되받아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들은 말은 기억해도 뱉은 말은 기억하지 못하다니. 혹시나 지나친 솔직함으로 아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은 아닌지. 하지만 지금 걱정해 봐야 너무 늦은 일이긴 하다.
공부가 아닌 애교로 자식들을 비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부모님은 내게 크게 성적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았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느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다.
부모님이 아니라도 학교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선생님의 잔소리와 성적표 만으로도 이 사회가 얼마나 나를 비교하고 있는지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느껴지는 압박에 나는 최선까지는 아니어도 최악은 아니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은 애를 썼다.
‘어차피 1등이 아니면 인정받기 힘든 거 아닌가?’
삐뚤어진 마음이었을까, 경쟁이 싫었던 걸까, 나는 애초에 1등이 되려는 꿈 자체를 꾸지 않았다. 막상 경쟁을 붙으면 승부욕은 강했지만, 가능하면 직접적인 경쟁을 피했다. 그러니까 아주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다. 졸리면 잤고, 놀고 싶으면 놀았다. 피해진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나름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아예 비교 선상에 서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비교’라는 프레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보다 더 예쁜 친구들, 나보다 더 똑똑한 동료들, 나보다 더 사교적인 사람들… 공부뿐만 아니라 우리가 비교할 대상은 다양하다.
굳이 SNS가 유행하기 이전부터도 대한민국 사회는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해 왔다. 최근에는 많이들 SNS의 등장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졌다고들 하지만, 결국은 SNS라는 것도 그런 밥상 위에 숟가락을 - 하지만 좀 큰 왕숟가락을 - 올린 것뿐이라는 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서 일단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가이드라인을 뛰쳐나온 후에도, 내 마음은 오래도록 불안했다. 동기들은 스톡옵션도 받고, 주식도 하고, 부동산도 하며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쌓아나가는데 나는 이 먼 나라에 와서 모아둔 돈을 다 쏟아부어가며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어서 단어나 더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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