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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29. 2017

독일에서 바다를 만나다

LET THE SEA SET YOU FREE



 한국보다는 조금 느리게, 함부르크에도 여름이 오고 있다. 동해, 남해, 서해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함부르크는 북쪽으로 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지내는 함부르크는 독일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두 개의 바다와 맞닿아 있다. 왼쪽으로는 북해가,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발틱해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지도만 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 '독일'을 떠올렸을 때 '바다'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럽 여행 중 바다를 보고 싶다면 보통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크로아티아, 프랑스 남부 등으로 떠난다. 그것은 독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동해로 남해로 서해로 놀러 가는 것처럼, 이들도 주말에는 가까운 바다를 찾아 내리쬐는 햇볕에 온 몸을 맡긴다. 오늘은 그 일상 속에 살포시 끼어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출발은_늘_그렇듯_갑작스럽게 



나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아름답고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지만, 바다에 들어간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의 일이 된다. 그늘이 없어 덥고, 소금물에 들어갔다 나온 찝찝함과, 온몸 가득 들러붙은 모래를 털어내는 일이 나에겐 너무나 성가신 일이다. 그런 내가, 그것도 독일에서, 바다에 가게 되었다. 


함부르크에 사는 친구들이 종종 바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었다. 내 상상 속의 독일 해변은 조금 삭막한 항구 같은 바다일 거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독일의 바다는 전혀 '가고 싶다'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면 주변인들의 소감이 다들 '엄청 예쁘진 않은데, 그래도 갈만해' 였으므로.



"노이, 이번 주말에 바다 갈래?"



여기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한국인 언니가 급제안을 했다. 27도를 알리는 날씨 예보가 언니와 함께 나를 설득하는 듯 했다. 기왕 함부르크에서 지내는 거 이것저것 기회가 닿는대로 다 해보자고 결심한 참이기도 했고, 특히 저런 곳은 처음엔 혼자서 가기 힘든 곳일 것 같아 아는 사람이 갈 때 따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물에는 들어갈 수 있으려나. 들어간다고 해도 소금물이 찝찝해서 귀찮겠지.'



딱히 여행을 목적으로 함부르크에 온 것은 아닌지라, 물놀이를 위한 대비 같은 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서울에 두고 온 수영복이 생각났다. 사놓고 한 번도 입지 못했던 내 수영복. 아쉽지만, 그냥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수영복 대신으로 챙겼다. 



함부르크 중앙역의 기차 플랫폼 모습




#함부르크 중앙역_1시간_20분 #티켓구매는_온라인에서



우리의 여정은 함부르크 중앙역(Hauptbahnhof, 하웁반호프)에서 출발하여 뤼벡-트라베뮌데 슈트란트(Lübeck-Travemünde Strand)라는 곳까지 1시간 2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는 짧은 여행이었다. (주말에는 직행을 운행하는 듯하고, 평일에는 한 번 환승을 해야 하는 듯 하다) 




도착역의 모습




 바닷가는 도착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면 가닿을 수 있어서 (정동진보다 조금 더 걷는 느낌이랄까) 따로 차를 가져가지 않아도 매우 편리했다. 티켓은 그룹 티켓이라는 것을 구매했는데, 그룹으로 묶어서 사면 더 저렴하지만 최대 5명까지 인원 제한이 있다. 4명이서 그룹 티켓을 사서 인당 8유로 (한화 만원 정도)씩 내고 왕복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그룹 티켓을 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이 기차역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다고 했다. (4유로씩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함부르크 중앙역에서 바다로 가는 길






#나들이갈때의_문화차이


 

독일 사람들은 바다에 놀러 간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서 가지 않는다. 아이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깔고 앉을 돗자리와 갈아입을 옷가지 정도만 간단히 챙겨서 간다. 대부분 바닷가 근처에 있는 슈퍼나 푸드트럭 같은 곳에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해결한다. 우리가 야구장에 가서 먹는 치킨에 맥주처럼, 해변가에 가서 그곳에서 파는 음식을 사 먹는 것이 하나의 낙인 것 같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 3명, 독일인 1명, 미국인이 2명이었다. 한국인 언니가 주먹밥을 싸온다기에, 요리 젬병인 나는 주섬주섬 과일과 디저트류를 사서 가방에 쟁여갔다. 기차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언니의 주먹밥 도시락을 열었다. 곤드레 주먹밥에 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을 적절히 믹스한 양념장은 이 날 하루 모두에게 최고의 음식이었다.







순간 식욕을 자극했던 훈제 연어의 숯불향과 비쥬얼







#독일은_역시_맥주지


가는 길에 작은 마트에 들러 맥주를 샀다. 불운하게도 알코올 분해효소가 너무나 부족한 몸뚱이로 맥주의 나라인 독일에서 지내는 나는 맥주 한 캔을 끝내는 일이 잘 없다. 그래도 늘 분위기는 내고 싶어서 맥주는 이것저것 마셔보는 편이다. Krombacher는 최근 먹었던 맥주 중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 마셔보았다. 사실 독일이라고 해도 캔맥주는 '우와'하는 맛은 잘 없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외국 맥주가 많이 들어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독일 맥주에 대해서 엄청 기대심을 가지고 왔다가 놀랄만한 맛을 찾지 못해 실망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독일은 지역별 맥주 종류가 엄청 엄청 많아서 개인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맛이 굉장히 다양해서 모든 이의 입맛에 꼭 맞는 맥주를 한 방에 찾기는 의외로 어려운 것 같다. (참고로 함부르크의 현지 친구들은 BECKS를 많이 마신다.) 







#해운대에_파라솔이_있다면_이곳엔


 해운대의 여름이 파라솔로 뒤덮여 있다면, 이 곳은 앙증맞은 지붕 달린 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등짝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누워있었던지라, 차마 사진을 찍지 못하고 구글 공개 사진에서 한 장을 담아왔다. 두 명이 앉기 딱 좋은 크기의 지붕 달린 의자는 해변가 입구에서 돈을 내고 빌릴 수 있다. 밖에서 바라보기엔 장관이었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조금 갑갑한 느낌이었다. 파라솔도, 이런 의자도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서 나는 별로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색적이긴 했다. 다행히 저 구역을 지나서 바다로 가까이 가면 모래사장만 펼쳐져 있어 바다의 풍경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Copyright @Qwesy





#모든_사람이_그만의_매력이_있듯이



 눈 앞에 마주한 독일 바다의 풍경은 기대 이상이었다. 생각보다 넓은 모래사장에, 모래는 밟을 때마다 기분 좋게 부드러운 그것이었다. 경험자의 말에 따르면 주로 한산하다는 이 곳은 이 날 만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 푸른 하늘과 바다와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상상했던 항구의 모습보다는 평화로운 여느 유럽 바닷가의 모습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만의 매력이 있듯이, 해변가 하나하나도 그만의 매력이 있는 듯하다. 이제 갓 따뜻해진 날씨인지라 바닷물은 발이 얼 것 같이 차가웠는데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차가운 걸 알아도 물속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꺅꺅 소리를 지르며 몸을 담가보는 꼬마 아가씨,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며 물속에서 일대일 수구를 하던 훈남들, 플라스틱 삽으로 모래를 파면서 노는 장난꾸러기 꼬마들. 우리네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풍경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더 자유로워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아, 어떤 아저씨가 당당하게 수영복을 팬티로 갈아입는 뒷모습을 다 함께 목격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어딘가에는 누드 비치도 있다지만, 여기는 그곳보다는 수줍고 한국보다는 좀 더 개방적인 것 같다. 타월로 몸을 가리고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당하게 엉덩이를 드러내고 옷을 갈아입는 아저씨도 계시는 걸 보니...(아 물론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사진은 찍지 않았다...) 딱히 서두르지도 않는 몸짓이었다. 오히려 젊은 남자면 부끄러워했으려나.








우두커니 서있는, 이 바다와 조금은 겉도는 듯한 저 빌딩은 호텔이라고 한다. 호텔 치고는 참 멋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저 안에서 보는 풍경만큼은 멋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 옆으로 보이는 관람차는, 쉼 없이 꾸준히 돌고 있었다. 그 아래로 길게 늘어진 하얀 천막들은 길거리 상점들이었다. 먹을 것도 팔지만, 액세서리나 독특한 상품들도 파는 작은 마켓 같은 느낌. 아직 물이 많이 차가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일광욕을 즐기면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쪽이 발틱해라서 그나마 물이 덜 차가운 것이고, 반대편에 위치한 북해는 물도 훨씬 차고 파도도 강해서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한 바다는 아니라고 현지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거친 바다를 보러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청개구리 노이.)







바다에 가만히 누워서 책을 보다가, 먹을 것을 주워 먹다가, 사람 구경을 하다 보니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조금 지나니 커다란 화물선 하나가 들어왔다. 모래사장에 누워 저런 큰 배를 구경하는 느낌도 뭔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평소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법한 거대한 배 하나가, 이 순간만큼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바다에 활기를 북돋는 주인공이 된다. 





#소금물인데_왜_계곡물_같지






차가운 바닷물과 딱 한 번의 인사를 하고 난 뒤, 아프게 시려오는 내 발을 위해서 나는 쭈욱 모래사장 위에 엎드린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뜨거웠던 모래사장이 물에 한 번 들어갔다 왔더니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닷가이지만 소금 냄새도 나지 않고, 후덥지근함도 없다. 어릴 때 남해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느껴졌던 바닷물의 찝찝함도 없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옷을 말리니 마치 계곡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개운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내가 딱 좋아하는 중간 어느 지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오후 6시가 넘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모래사장은 조금씩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바다 안쪽까지 걸어갈 수 있는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저 끝까지 걸어가보면 바다 한 가운데 들어온 느낌이 들어 설렘설렘하다. 저런 형태의 다리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지만 외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문화 차이인 것 같다. 미국에서 특히 저런 식의 다리를 해변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독일도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문화를 가져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_함부르크로







 다시 함부르크로 가기 위해 역으로 돌아왔다. 내렸을 때는 몰랐는데, 이 역은 종착역이라서 이렇게 철도가 끊겨 있었다. 반대편은 플랫폼을 지으려고는 했던 모양인 듯 철 구조물은 세워져 있었지만 수풀이 무성했다. 나는 풀이 한가득 자란 작은 역을 볼 때면 늘 설렌다. 모두들 지친 듯 의자에, 바닥에 앉아있는 동안 한참을 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오후 7시 15분. 우리는 오후 7시 34분 출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어지듯 여유롭던 바다의 품에서 떠나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 

우리의 짧은 여행이 끝을 보이려는 순간. 

우리가 그러든 말든 여전히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

하나뿐인 철로.

그래서 어느 플랫폼으로 가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단순한 종착역. 

등 뒤로 들려오는 까마귀인지 갈매기인지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

아직도 발바닥에 느껴지는 모래의 감각.

얼음물로 목을 축이다 이가 시리다며 인상을 쓰던 일행의 얼굴 표정.

즐거웠던 시간만큼 물에 젖은 휴지 같이 쳐진 사람들의 어깨.

하지만 싫지 않은 노곤함. 




독일에서 처음 바다를 만난 이 날은 그렇게 내 기억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채 끝났다. 

꼭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니더라도, 나를 달래기에 충분했던 바다. 

그를 한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얻는 선물.

'자유' 

그래서 나는, 혹은 우리는 그토록 바다를 사랑하는가 보다.






LET THE SEA SET YOU FREE
바다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Note to myself:

답답할 땐, 

지도를 펼치고,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갈 것.











글, 사진: 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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