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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08. 2017

전쟁 아닌 전쟁 속 함부르크

얼굴을 숨기고 군중 속에 숨어야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




함부르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명한 도시는 아닐지 모른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베를린의 독립문 같은 랜드마크도 없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고, 깨끗하고 치안이 좋은 도시라 살기가 참 좋다.

도시를 떠날 수 없으면서도 자연이 그리운 나에게 함부르크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어느새 정이 많이 들어버린 곳이다.






그런 함부르크에 각국 정상들이 모인다고 했을 때, 경찰의 경비가 매우 강화되고 시위가 있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위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평화로웠던 광화문 촛불 집회가 나의 마지막 경험이었기에,

건물 유리를 부수고, 길거리에 주차된 죄 없는 차에 불을 지르는 이 해괴망측한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극단적인 시위 때문에 G20의 행사 중 일부는 장소를 변경하기도 하고, 트럼프의 아내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숙소 밖으로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대치중인 경찰의 모습 (출처: Getty Images)






물론 모든 시위대가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의 시위가 항상 이런 것도 아니다.




알스터 호수위에 모여든 시위대들 (출처: dpa)




어떤 사람들은(혹은 단체는) 좀비 분장을 하고 거리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호수 위에 카누를 빌려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천명이 참석한 좀비 퍼포먼스 (출처: TheSUN)





하지만 그중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복면을 쓴 '검은 옷 시위대'가 유난히 폭력적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국제적 행사가 있을 때 행진을 빙자한 폭력을 일삼기로 유명한 시위대라고 한다. 




독일 좌파당, 녹색당, 평화 단체 등 170여 단체로 구성된 시위대는 난민에 대한 봉쇄, 기후변화, 세계 불평등에 G20의 책임이 있다며 ‘반(反) G20’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G20을 ‘전 세계 자본주의를 위한 수단’이라며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20개국에 부르주아 정부, 고문 국가 등이 다 모여있다고 비난했다. 

그 중 무정부주의자와 급진좌파로 구성된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welcome to hell)’ 시위대가 6일 밤부터 폭력 시위를 주도하면서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시위대는 화염병과 돌을 던졌으며 도시 곳곳에 화재가 발생했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살수차로 물대포를 발사하고 최루가스를 뿌리는 등 강경하게 진압했다. 공중에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독일 정부는 1만 5000명 이상의 경찰을 투입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고 밝혔다. 일부 시위자들을 연행됐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양측이 충돌하며 자동차가 불타고 부상자 속출하는 등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 헤럴드 경제 '‘G20 웰컴 투 헬’ 격렬 시위…지옥으로 변한 함부르크' 7/7 기사 중 발췌 -




그들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모든 행동이 이번엔 도를 넘어섰다는 건 분명하다.

위협적으로 몰려다니면서 아무 관련 없는 가게 건물의 유리창을 부수고, 길가에 주차된 차 유리를 부수고 그 안에 불을 지르고 유유히 떠나는 영상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검은 복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행진하는 '검은 옷 시위대' (출처:  POST Online media)





잠시 잊으려 해봐도 집에 있어도 하늘에 떠있는 헬기 소리는 계속 들리고, 

30분 간격으로 어김없이 들려오는 앰뷸런스 소리가 다시 마음을 흠칫하게 한다.



내가 사는 곳은 동쪽이라 평화로운 편이지만, 

서쪽은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같다며 많은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 시위대가 저지르고 있는 일들이 독일을 또는 함부르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한 독일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군중 속에 숨어야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약한 사람들일 뿐이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이 공격적으로 분노를 표출할수록 스스로가 나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개개인 한 명 한 명의 인격적인 성장, 건강하고 굳건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이면 G20 행사가 끝나고 좀 잠잠해질 것 같다.

내일 정오쯤에는 함부르크 시민들이 모여서 시위대로 인해 파손된 거리를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행사도 있을 예정이다. 

이 모습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함부르크 사람들의 모습 이리라.









Ps.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5번의 앰뷸런스가 지나갔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단면 그대로만 믿을 순 없기에 마음 같아선 찾아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일단 자제를 하고 구글에서 정말 많은 사진과 영상을 찾아봤다.


경찰은 물대포와 후추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때로는 몸싸움을 벌이면서 시위대를 제압했다.

검은 복면을 쓴 시위대 중에도 더럽혀진 길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긴 했다. 

본인들이 저지른 일이니 본인들이 치우고 가야 할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쨌든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경찰의 무력 동반은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이번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위를 할 권리는 있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사는 곳과 그들의 소유물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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