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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pr 22. 2017

거주하는 집에서 소비하는 집으로

이케아가 도심 속으로 파고든다면 어떻게 될까?



  이케아는 이제 세계적으로 친숙한 글로벌 브랜드이다. 그리고 보통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케아가 사당에 있다면? 합정에 있다면? 아니 잠실에 있다면?

오늘은 함부르크의 번화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함부르크 알토나’ 매장 방문 후 느낀 점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함부르크에는 이케아 매장이 총 3군데에 위치하고 있다. 시티 센터인 주요 주거지를 중심으로 북서쪽에 위치한,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하나, 그리고 남동쪽 교외 지역에 하나. 그리고 꽤 도시의 중심지역에 가까운 알토나 라는 곳에 하나.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케아는 매장의 규모때문에 주로 교외에 세워진다.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이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고객의 ‘접근성’ 일 것이다. 고객풀을 확장하려면 이케아를 그다지 열렬히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이고, 어느 나라에서든 도심에서 교외 이케아 매장까지 가는 일은 하나의 큰 ‘일’이 되어 진입장벽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케아는 세계 주요 도시의 교외로부터 도심 속으로 파고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뉴욕 브루클린에 입점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쉽지는 않아 보였지만.) 고객 혹은 거주자의 입장에서 이케아 같은 대형 브랜드 매장이 도심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접근성이 편리해지는 만큼, 내 생활 속으로 더 깊숙이 침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보통 이케아 매장=차로 1시간 이상 소요
이케아 알토나 매장=지하철 약 20분 소요




 처음 함부르크에 와서 지인의 집들이에 초대되어 알토나 지역에 갔다가 우연히 익숙한 이케아 간판을 보고는 친숙하면서도 위화감이 들었다. 아는 브랜드이니 눈에는 들어오고 인지는 되는데, 도심 속에 있다는 사실이 무의식적으로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샤워기 헤드를 사고 싶어서 이케아에 들리기로 했고, 당연히 가까운 알토나에 위치한 이케아로 갔다. 만약 1시간 이상 걸리는 매장이었다면, 나는 가기 전에 또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왕 가는거 필요한 거 있으면 한 번에 사야지
또 필요한거 없나? 
근데 이건 이케아에서 사는게 맞나?
다른 곳이 더 싼가?
등등등



이케아 알토나 매장에서 판매중이던 액자




 하지만 이 곳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 살게 있으면 다시 올 수 있으니 한 번에 필요한 걸 다 사야한다는 심적인 부담이 덜 했다. 지금 내가 지내는 곳에서 이케아 알토나 매장까지는 차가 없어도 지하철을 타고 걷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20분-30분이면 도착한다. 광명 이케아에 차 없이 갔던 때를 생각하면 그냥 홍대 놀러 가는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경쾌한 발걸음으로 이케아 입구로 들어선 나는... 엄청난 싸움과 이겨내야 했다. 누가 싸움을 걸었냐고? 아니, 그곳은 그럴 만큼 아시아 여자를 위협적으로 보진 않는다. 내가 싸워야 했던 것은 신이었다. 

당신도 잘 아는 그 ‘지.름.신.’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광명 이케아를 갔을 때는 개인적인 물건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회사 가구를 구매하러 간 것이라서, 이케아를 돌아다니는 건 재밌었지만 일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대표와 같이 갔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서 그때는 이 분이 나를 잠시 지나쳐가 주셨다. 그리고 나는 작년 중순쯤부터 조금씩 미니멀리즘을 생활에 베이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그래서 개인적인 물건을 많이 정리했고, 아직도 하고 있고, 그래서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는 데 굉장히 신중한 자세로 바뀌었다. 1년간 함부르크에 거주하게 되면서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게 내 목표였고, 그래서 앞으로 사야 할 비품이나 가구는 정말로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리라고 다짐을 하고 왔던 차였다. 그러던 중 꼭 필요한 ‘샤워기 헤드’를 구매하러 왔다가... 이케아 특유의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인테리어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함부르크의 이케아 알토나 매장 내부




  평소에 주위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자본주의의 마케팅에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마인드 컨트롤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화장품, 옷, 신발, 가방, 음식 등 웬만한 보스 몹들은 클리어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새 제품을 보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잘 참을 수 있도록 단련을 해왔다. 애초에 함부르크에 1년을 지내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미니멀리즘 하게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케아 매장을 방문하니 이케아를 처음 방문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리액션이 나왔던 것이다. 정작 애초의 목표였던 ‘샤워기 헤드’는 찾지 못했고, 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소소한 제품들을 사지 않기 위해 싸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해야했다.





아, 미니멀리즘이고 뭐고
내 집 사서 얘네들로 집 꾸미면서 살고 싶다





 왜 같은 브랜드 매장을 같은 사람이 방문했는데 다른 생각이 든걸까? 함부르크 알토나 매장이 LA나 광명보다 더 유별나게 좋았던 걸까? 그것은 아니다. 그건 바로 '집'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본격적으로 이케아 가구를 구입했던 때가 바로 2012년 즈음 LA에서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 때는 무조건 가볍고, 싼 제품만을 골랐다. 딱히 내 집을 꾸민다는 설레임 같은 건 없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봐도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내 공간'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었기에, 처음으로 내가 살 곳에 스스로 가구를 사서 채워넣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었고, 묘한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인테리어 이쁘면 좋겠지만 바빠서 꾸밀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언제 또 이사할지도 모르는데
 




 이것이 그 동안 내가 집을 꾸미는 일을 소홀하게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핑계였다. 그랬던 내가, 뭔가, 진심으로, 이런 욕구를 느낀 건 처음이었다. 5년전의 나에게 집이란 '잠을 자는 공간'이었다. 손님을 초대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 접대를 위한 부수적인 것들도 구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집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나의 하루가 시작하고 끝나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공간
일주일에 한 두번쯤은 초를 밝혀 마음의 안정을 얻는 공간
피곤한 세상과 차단되어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휴식의 공간
나에게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충동구매할 뻔 했던 양초와 초받침대




 이렇게 바뀌다 보니 같은 브랜드의 매장을 방문했다고 하더라도, 내 공간을 의미있게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들이 보이면 구매욕구가 시속 200킬로미터의 속도로 저 아래에서부터 뇌까지 올라오는 것이었다.

 위에서 나열한 저런 만족감들은 내가 단순히 집을 소유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 공간을 내가 어떤 애정을 가지고 어떻게 소비하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약 1년 정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 중에 제일 시설이 좋고 넓은 집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다. 집 값도 제일 비쌌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집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그 집은 늘 썰렁하고 휑한 분위기였다. 집에 들어가도 안락함을 얻지 못했고, 안락함은 커녕 가끔 야근이 늦어져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는 날이면 맨정신에 집에 들어가는게 무서워서 졸려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차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잠을 자러 들어갈 정도였다. 반면,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서울의 아주 높은 고지대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 고층 빌딩이 아닌 고지대에 살고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아실거다. 역세권도 아니라 오가기도 불편하고, 건물이 낡아서 자연재해가 올 때마다 어려운 고충을 이겨내야 하는 집이다. 그런데도 그 선배는 집을 아주 정성스럽게 꾸몄다. 모두 스스로 가꾸어낸 공간이었다. 본인 소유의 집도 아닌데도 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창고로 쓰이던 옥상의 한 구조물을 주인 허락을 받고 개조해서 더 예쁜 옥탑방과 바베큐 공간까지 만들어냈다. 그렇게 나는 집은 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내 경험과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직접 배웠다.




이케아 알토나 매장에서 쇼핑 중인 한 가족




 이제 나에게 집이란 점점 '소유'의 개념에서 '임대'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집세' 마련은 여전히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긴 하지만, 집을 소유하는 것을 포기했을 때 나는 더 큰 자유를 얻었다. 동시에 집은 이제 단순한 '거주'의 개념에서 '소비'의 개념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오로지 '내 기호'에 맞춰서 집을 세팅하고 꾸미고, 그렇게 완성된 공간에서 나의 시간과 일상을 즐기면서 소비한다. 내 옷장이 매년 새로운 다른 옷들로 넘쳐나는 것처럼, 집도 기분 전환을 위해 혹은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크고 작은 물건들이 집에 머물렀다가 떠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 물건들에 잠식당하기 전에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서 지금 내가 사는 집을 채워나가는 기준을 제대로 잡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그 일은 꽃 한 송이를 사다가 유리컵에 꽂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내게 가장 안락한 느낌을 주는 포근한 담요를 구매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바닷가에서 주워온 돌멩이 옆에 새하얀 촛대를 놓고 불을 피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내 집이든, 누군가의 집을 빌린 공간이든, 한 달을 지내든, 1년을 지내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내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공간’으로 만들어냈을 때 그 공간은 진짜 ‘나의 공간’이 된다. 앞으로는 지금 내가 어떤 집에 사는지 보다 이 집을 ‘어떻게 소비하고’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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