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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08. 2017

유럽 최대 항구의 불꽃놀이

차가운 도시의 뜨거운 생일 축하 파티



차가운 도시의 따뜻한 남자, 따뜻한 여자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1년에 몇 번씩 동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중 하나가 불꽃놀이가 아닐까 한다.

평소에는 별 생각이 들지 않다가도, 막상 불꽃놀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거나, 혹은 주위에서 무언가 뻥뻥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 마치 학창 시절 좋아하던 연예인이 동네에 온 것 마냥 가슴이 뛴다.


나는 세계 Top 10에 든다는 불꽃놀이 같은 걸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살면서 인상 깊었던 불꽃놀이는 있었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불꽃놀이 행사가 있었던 나의 고향.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몰려들고 교통은 마비되지만, 그 혼잡함 속에서도 다 같이 모여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게 마냥 좋았다. 


2008년 여름, 일본 아타미 해변에서 바다 위로 쏘아 올려지던 아름다웠던 불빛들. 그리고 폭죽 소리를 가릴 만큼 높고 가늘었던 일본 여자들의 외마디 탄성들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녀들의 리액션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2012년 12월 24일, LA의 디즈니 랜드에 가서 디즈니 성을 배경으로 펼쳐진 불꽃들. 정말 이뻤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어떤 한국 사람 옆을 우연히 지나가게 됐는데, 그분은 늦게 와서 제대로 못 봤는지 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고는, '에이, 에버랜드랑 별로 다를 것도 없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분을 붙잡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디즈니 성 앞에 가서 꼭 다시 보세요"라고. 하하.


2013년 7월 4일, July 4th.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 곳곳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데 이 날은 일을 하느라 제대로 된 곳에 가질 못했다. 야근을 하기 위해 저녁을 먹고 동료 언니랑 늘 가던 스타벅스에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그곳에서도 불꽃놀이가 보이는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이렇게라도 볼 수 있는 건가!' 기대를 하면서 폭죽이 터지길 기다렸는데 이게 왠 걸, 오히려 이 날이 제일 재밌었다. 폭죽 소리가 너무 크고 그 진동이 커서 스타벅스 주차장에 주차돼있는 차들이 일제히 경보음을 울려댔다.(ㅋㅋㅋ) 불꽃놀이의 화려함보다 요란한 자동차 경보음이 더 기억에 남았던 그때. 


하. 지. 만... 10년 넘게 서울에 살면서 난 한 번도 서울에서는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불꽃놀이 현장의 그 '혼잡함'의 의미가 한층 다르게 다가왔다. 다른 도시의 혼잡함과 서울의 혼잡함은 좀 다르다. 물론 서울보다 더한 곳도 있겠지만, 그런 나라는 웬만해선 가질 않는다(...) 그래서 나에겐 서울이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사람이 미어터지는 곳에 가는 게 싫어지더니 (예를 들면 새해 종각 행사 같은 곳은 절대 안 간다) 결국은 그 좋아하던 불꽃놀이를 서울에서 만큼은 보지 않았다. 


그래서 요 근래엔 불꽃놀이를 별로 보지 못했는데,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불꽃놀이를 전혀 기대도 안 했던 함부르크에서 몰아서 보고 있다. 





오늘은 그 중 인상깊었던 불꽃놀이 중 하나인 '함부르크 항구의 불꽃놀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유럽 최대의 항구,
'함부르크 항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 축제


함부르크에서는 감튀를 Pommes라고 한다. (지역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그나저나 XXL 사이즈 감튀라니...




말 그대로 함부르크 하버가 탄생한 날을 축하하며 상당히 큰 규모로 축제가 열린다. 이 날은 불꽃놀이뿐만 아니라 함부르크 항구 근처에 커다란 야시장 같은 것이 열리는데, 이름만 Market인 조그마한 이벤트가 아니라 규모가 꽤 크다. 과연 함부르크 항구의 탄생을 축하하는 생일 축하 축제라고 부를만 했다. 




독일 스트리트 마켓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진풍경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너무나 맛있어 보였던, 하지만 배가 불러 먹지 못했던 빵, 다음에 또 만나 우리



일반 마켓은 먹거리와 마실거리 위주라면 이 곳은 함부르크만의 매력을 담은 기념품도 많이 팔고 각종 게임도 할 수 있는 등 규모가 꽤 크다. 지하철에 사람이 꽉꽉 차서 못 탈 정도로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 



바다를, 또 항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심쿵할 잇템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Baumwall 역에서 내리면 가까운 엘프필하모니 공연장, 함부르크시가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걸작이다.





사람 많은 건 별로인 나지만, 마침 이 날은 남동생이 한국에서 놀러 와 있던 중이라 큰 망설임 없이 항구로 향했다. 함부르크 항구의 메인과 가까운 역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Baumwall, 다른 하나는 Landungsbrücken이라는 역이다. 초대형 크루즈가 정박하는 쪽은 란둥스르뷔켄 쪽이지만 마켓이 Baumwall역부터 열리고 있기 때문에 Baumwall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다. 




너무 예쁘지만 항상 사진만 찍는 하트 모양 쿠키와 꽤 맛있는 견과류 과자들 (달달한 건 맛난다)





일단 신기하니 구경은 하는 경상도 머스마. 하지만 역시나 귀여운 것에는 별로 반응이 없다.




불꽃놀이를 볼 생각만 했었지 이렇게 큰 마켓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촉박해서 마켓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마켓과는 조금 다르지만 독일의 스트리트 마켓을 동생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 쏴 본 활, 너무 재밌었다(!)




게다가 실제와 꽤 흡사한 활을 쏠 수 있는 기회도 있어서 뜻밖의 기쁨과 추억을 얻기도 했다. (나름 점수를 얻긴 얻어서 미니 장난감 총을 받았는데 아직 뜯지도 않고 있다.) 



함부르크도 규모가 있는 축제엔 인형뽑기를 한다. 우리는 매일 하고(ㅎㅎ)



오랜만에 사람이 꽤 많아서 정신이 없었지만, 역시 이런 건 사람이 너무 없어도 분위기가 죽는다. 사람이 없어 휑한 것 보다야 많은 게 훨씬 좋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가 평소보다 더 많은 기분이었다. 빨간 배는 늘 정착해 있는 바 겸 카페 겸 호텔을 운영하는 곳.




그렇게 걷다 보니 마켓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무리지은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불꽃놀이가 시작한다는 밤 10시가 되었는데 아직도 하늘이 깜깜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름에는 해가 아주 길어져서 밤 10시에도 어둡지가 않다.) 




이 때가 이미 밤 10시. 아직도 하늘이 파랗다. 사람은 바글바글.


Baumwall 쪽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괜찮은 자리를 잡기가 힘들 것 같았다. 여기가 이 정도면 반대쪽은 이미 꽉 차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란둥스브뤼켄역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러는 동안 멀리서 정박해있던 초대형 크루즈 하나가 서서히 란둥스브뤼켄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하는 거 아냐?
시작하는 거 아냐?



매 년 이 축제와 함께하고 있다는 AIDA 크루즈선, 언제 타볼 수 있을까 (초호화 여행도 가능한 함부르크! 하지만 내 현실은...)



배가 움직이자 괜히 마음이 다급해진 우리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국인 특유의 조바심(8282) + 경상도 남매의 급한 성격 때문에 거의 달리다시피 배를 향해 돌진! 사람이 많긴 했지만, 우리가 우려했던 것만큼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꽤나 크루즈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불꽃놀이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란둥스브뤼켄역 근처의 어떤 건물 안에서부터 사회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면 불꽃놀이만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자의 진행이 있는 모양이었다. 함부르크 지역의 꽤 큰 행사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방송국에서 촬영도 나온 것 같았다. 독일어로 쩌렁쩌렁 울려대는 사회자의 말은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불꽃놀이가 시작한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우리도 하늘을 향해 핸드폰과 DSLR을 들이대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꽃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자들의 대담이 너무 길어서 팔을 올렸다 내리기를 수 차례. 결국 초반부터 지쳐버렸다.




그래도 달이 너무나 예쁘게 떠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잘 흘러갔다.




그렇게 한참을 분위기를 조성하는 음악을 틀어놓다가 우리의 인내력이 끝을 볼 때 쯤,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초대형 크루즈 바로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폭죽들 



폭죽이 터지는 쪽으로 달이 떠 있어서 보는 내내 더 황홀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색 불꽃. 다양한 색깔을 개발하기 전에는 노란색 불꽃만 터뜨렸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도착한 란둥스브뤼켄 쪽이 아까 Baumwall에서 본 것보다 사람이 적었는데, 배가 너무 커서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게 더 현명한 판단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배와 가까이 있어서 좋았던 장점은 이렇게 큰 배를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과 플래시로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우리는 배를 바라보고, 배 안의 사람들은 새까맣게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진풍경을 감상하는 재밌는 상황이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배 위에서도, 항구에서도 사람들이 하나 둘 사람들이 플래시를 켜고,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음악에 맞추어 손을 흔들었다. 물론 나도 촬영을 멈추고 한동안 플래시를 켜고 손을 열심히 흔들어줬다. (이런 거 좋아하는 1인...)



본인의 촬영 장비와 실력이 미흡하여 함부르크 공식 홈페이지에서 업어온 제대로 된 불꽃놀이 사진 (장비탓...?)



30분 정도 되는 불꽃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불꽃놀이 행사가 끝나자 아이다 크루즈가 크게 경적을 울렸고 잇따라 주위에 정착해 있던 항구의 다른 배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무슨 일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더니, 해군 출신의 동생이 이런 건 배를 타는 사람들끼리의 하나의 문화 같은 거라고 했다. 큰 배가 경적을 울리면, 작은 배들이 경적을 울려 답하는 형식. 말로 표현하기 좀 어려운데, 그때의 내가 느낀 기분으로 이해한 건 마치 라이언킹에서 원숭이 할아버지가 심바를 벼랑 끝에서 들쳐 올리자 아래에 있던 동물들이 일제히 엎드려 인사를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초대형 크루즈의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1분 넘게 울리는 배 경적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천천히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함부르크에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온 것이 처음이라서 지하철역이 얼마나 붐빌지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곳 사람들의 질서의식은 과연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걸어가는 동안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모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하지만 지하철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다다르자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계단 입구 아래 양쪽에 경찰이 2명 서 있고 사람들은 계단을 올라가지 못하고 계단 앞에서 경찰의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 역이 중앙역처럼 큰 역도 아닌 데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을 경우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몇몇 사람들은 경찰과 타협(?)을 보려는 것도 같았고, 경찰이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허가했을 때 계단 난간을 넘어서 새치기를 하는 혈기 넘치는 남학생들이 몇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경찰의 지시를 잘 따르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경찰의 존재가 한국에 비해서 더 무서운(?) 존재라고 듣긴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조금 신기했던 경험. 



지하철역 계단 앞에서 경찰의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아무도 밀거나 당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굉장히 차분한 분위기였다.




많은 인원도 아니고 정말 조금씩 들여보내 주는데 (기분 탓이겠지...) 기다리기가 힘들긴 했지만, 막상 계단을 통과해서 지하철역에 들어갔을 때는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줄이야.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고 무사히 끝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돌아와서 기사를 검색해보니 함부르크 항구의 생일은 올해로 828번째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고, 올해에는 백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문했다고 했다. 한화 세계 불꽃축제에도 매년 백만 명 이상이 몰리고 있다니 비슷한 수였는데도 전혀 불쾌지수가 없이 쾌적하게 관람하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있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이는 일은 없었고, 모두 질서 정연한 편이었으며, 지하철도 평소보다 사람이 많긴 했지만 한국처럼 지하철을 타는 내내 옆 사람과 밀착할 정도로 사람들이 밀고 타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덜 붐비고 오갔던 것 같다. 







늘 가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

커다란 배들이 줄지어 정박한 유럽의 대표적인 항구에 서서

다른 공기,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 섞여서

달이 높이 뜬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을 바라보는 느낌.

그 기억은 나와 남동생이 태어나 처음으로 단둘이 함께한 여행을 더 아름답게 밝혀줬다.




진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던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그렇게 5월의 추억으로 11월에 미소 짓고 있다.










글/사진: 노이

커버 사진: 함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Hambur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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