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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29. 2017

독일 클럽에서 쫓겨난 남자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끌고와서 쫓아내버렸다.


초등학생 때 오락실에 가는 걸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면 단짝 친구랑 짤랑거리는 동전 몇 개를 들고 게임을 하러 달려가곤 했다.

자주 가던 오락실 주인아저씨는 나이가 많고 안경을 쓴, 사실 지금 기억해보면 능글맞은 인상의 아저씨였는데,

어느 날은 내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뒤로 다가와서 내 등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좌로 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뭔가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그땐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그냥 넘어갔는데, 이상하긴 했는지 그 기억이 뇌리에 남아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말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오락실 사장은 바뀐 뒤였다.



중학생 때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건너는 횡단보도 맞은편 건물 현관 으슥한 곳에 랜덤 하게 출몰하는 변태가 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한 번도 그 형태(?)는 보지 못했지만, 그저 내 시야에 그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기에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여학교 주변에 출몰하는 변태는 너무나 당연시된 이야기거리 같지만, 다시 한 번 꺼내보면 당시의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역겨웠다. (격렬하게 반응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들리는 이야기에 항상 그 변태들은 신고해서 체포되도 금방 풀려나서 같은 짓을 또 반복한다고 했다. 아마 이 때부터 이 사회의 무능력함을 몸소 느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때였다. 야자를 마치고 늦게 막차를 타고 돌아가던 날.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나를 매일 데리러 오실 수는 없었기에 가끔 친구와 버스를 타고 돌아가곤 했다. 환승을 하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자전거를 옆에 세워둔 채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있었다. 자전거가 있는데 왜 버스를 기다리나 하는 궁금증은 '아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라고 단순하게 넘겨져 버렸다.

그때 버스가 왔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다가오는 버스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남자가 순식간에 성추행을 하고 달아났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서도 분해서 눈물이 나는 걸 꾸역꾸역 참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차마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대신 나는 한동안 다음 날부터 교복 치마 주머니에 커터칼을 넣고 다녔다. (커터칼이라니...)

그리고 오락실에 가서 펀치로 주먹을 단련했다. (응...? 그렇다. 어렸다.)



대학생이 되었다. 

친구를 데리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집 앞까지 변태가 쫓아와서 당당하게 서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때도 다행히도 그분의 물건은 보지 못했다. 휴.)

용기 넘치는 친구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에 신고라는 걸 했던 날이었다. 

신고 후에 순찰이 강화됐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취직해서 이사를 했다.

어느 날 여자 자취방에 침입해 성폭행을 한 남자가 붙잡혔다는 기사가 났다.

CCTV에 찍힌 범인의 사진과 기사 내용이 영락없이 내가 그 일을 겪었던 그 사람과 너무 유사해 보였다. 

'가해 남성은 평소에도 성도착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라는 기사 끝 문장에 소름이 돋았다.









쓰다 보니 길어졌다.

이게 지금 내가 생각나는 나의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성추행과 관련된 경험담들이다. 

적다 보니 왠지 학창 시절의 큰 단락 단락마다 꽤 인상적인 일들이 있어서 시즌별로 소개를 해보았다.

조금 민감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내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무렇지 않아서 이다. 

더 심각한 일이었다면, 이렇게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왜 아무렇지 않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은데 왜 말하냐면, 사실은 아무렇지 않다는 건 나에게 하는 거짓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뇌리에 남는 기억이라는 건 그 인생에 있어서 꽤 의미가 있었거나 영향을 받은 기억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생각해 봤자 기분만 더러운 기억인데 왜 기억의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할까 라고 생각하면 분하다. 

원해서 얻은 기억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지워지지도 않는다니. 

하지만 아마도 내가 이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건 본능적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동일한 사건을 다시 겪게 될 경우에 경계하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

아까는 운이 좋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눈 앞에 변태가 나타나서 해괴망측한 짓을 해도 본능적으로 절대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그게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고 자라서 내가 스스로 체득한 자기 방어 기술 중 하나인 것 같다. 

(이것도 기술이긴 한 걸까...)




하지만 내가 그 일들을 겪었다고 해서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갈 때마다 너무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다녔던 건 아니다. 

나는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리고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하지만 뭔가가 찝찝했다. 뭔가가.  

이게 뭘까? 

왜 잊고서 잘 지내는 것 같은데, 그게 나에게 하는 거짓말 같이 느껴지는 걸까?

사실은 괜찮지 않은 걸까?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과 같이 함부르크의 한 클럽에 갔다가 집에 가기 위해 나오는 길이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야 했는데 기다리기가 귀찮았던 우리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듯한 건장한 남성 직원이 앉아있었다. 꽤 높은 건물이라서 계단으로 나가도 되는지 물어보려던 찰나, 어떤 여자가 남자 둘을 끌고 오더니 그 직원에게 무언가를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두 남자는 계단 밖으로 내보내 졌다. 두 남자의 친구로 보이는 다른 남성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그 여자를 쫓아가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때 나와 같이 있던 남자 사람 친구 한 명이 그 남자를 저지하며 뭔가 열변을 토했다. 모든 것이 독일어로 진행되어 상황 파악이 안 됐던 나는 어리둥절하게 서있었다. 




나: 대체 무슨 일이야?
친구: 쫓겨난 두 남자가 아까 그 여자한테 동의 없이 과한 스킨십을 했나 봐. 그래서 쫓아낸 거래.




그 여자는 혼자서 당당하게 두 남자를 끌고 가 클럽 직원에게 내쫓아 달라고 했으며, 그 클럽 직원은 잠시 무전을 하더니 두말없이 근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내쫓았다. 일단 이 상황만으로도 나에겐 문화 충격이었고.





나: 넌 아까 다른 사람한테 뭐라고 한 건데?
친구: 자기들은 다른 나라에서 왔는데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말하더라고. 그래서 뭐가 됐든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저 여자한테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실례니까 하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친구들한테 그런 행동은 절대 하지 말라고,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든 절대 그러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했어. 




그리고 이 친구의 행동도 두 번째 문화 충격이었다. (이 친구는 다른 나라 출신이지만 독일에 오래 살았다.)

이 친구는 그 여자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고, 우리처럼 그저 옆에 있다가 상황을 목격한 것 뿐이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일이지만 친구의 설교는 꽤 카리스마 있었고 하지만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그 소동에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고, 엘리베이터에는 차마 친구들과 같이 계단으로 쫓겨나지 않은 (설교를 당한)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과 합류하려고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뻘줌해서 나는 머쓱해하고 있는데, 일행 중 또 다른 남자 사람 친구가 그 사람을 향해 괜찮다는 듯 인사를 해주었다. 그들도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고, 좋은 교훈을 얻고 가는 걸까라는 그런 훈훈멜랑꼴리(?)한 마무리.








이 상황에서 한 여성에게 모욕감과 불쾌감을 준 것도 남자, 그 여성을 도와서 상황을 해결해준 것도 남자였다.

그때서야 내 마음속에 형체를 알 수 없이 남아있던 찝찝했던 그 무언가가 고개를 살짝 내밀고 올라온 것 같았다.




어느 나라를 가든 상대적 약자를 대상으로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다만, 내가 느꼈던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피해자의 대처 방식과 주위 사람들의 협력이었다.

내가 위에 언급한 일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일들을 합쳐서 겪은 경험 이후로 나는 '남자친구'가 없다면 유사한 일이 생겨도 보호받거나 도움받기 어렵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그래도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등의 제도가 생기는 등 한국 사회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무엇이 폭력이고 무엇이 피해자 코스프레인지 구별하고
적절하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의 안목,
그리고 망설임 없는 행동력.





피해자라고 해서 숨거나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고,

무엇이 관심이고 무엇이 폭력인지 구분할 줄 아는 그런 동네.


세상 어딜가든 평화롭게만 살 수는 없음을 알고 있지만, 

함께 이겨낼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가진 그런 동네.



그런 동네가 나의 고향이었으면,

그런 동네에서 내가 살아갔으면,

그런 동네에서 미래의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내용 추가


이 글에서 가드 남성분은 포인트가 아닙니다. 


갑자기 이 글이 메인에 올라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보셨고, 그 중 다른 의도로 오해하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 것 같아 몇 마디 추가합니다. (이견을 주시는 건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는 특별히 '가드'분을 강조하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당시 일어난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다보니 가드분이 등장한 것입니다. 여성분이 피해입는 상황에서 가드분이 먼저 나섰다면야 가드분이 주목받겠지만, 그게 아니라 가드 분은 그냥 본인이 하실 일을 하신 것 뿐이었습니다. 저에게 좀 더 문화 충격이었던 부분은 남자 둘을 혼자서 끌고와서 가드에게 내쫓아달라고 요청한 여성분의 태도였습니다.

여성분을 도와준 가드분이나 제 친구가 직업상, 혹은 우연히 '남성'이었지만, 도움을 주는데 있어서 성별의 구분이 필요할리는 없겠죠. 


제가 '이 상황에서 한 여성에게 모욕감과 불쾌감을 준 것도 남자, 그 여성을 도와서 상황을 해결해준 것도 남자였다.' 라고 묘사한 것은 폭력과 피해의 상황에서 성별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폭력의 주체도 피해의 주체도 남성이 될 수도 있고 여성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신체적인 특징 혹은 문화적인 관습상 여성이 더 많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의 사례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구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하고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유럽 국가 대비 대한민국이 더 강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데 안하는게 아니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채 자랐다',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을 한 것이 스스로 충격이었다는 경험을 공유한 글임을 밝힙니다.







*참고: 독일 클럽에서는 여성의 손이나 어깨 정도는 남자가 먼저 '터치'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여성이 원하지 않는데 한국처럼 민감한 분위에 마구마구 부비부비를 시전 하다가는 여자에게 뺨을 맞거나 혹은 경찰서 신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서로가 합의한다면 그 이후는 자유로울 것이겠지만. 한국은 클럽에서의 성추행은 더더욱 공공연히 묵인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글을 남긴다. 









글: 노이

커버 사진: Photo by Matty Adam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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