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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06. 2018

잊어버리고 있던 마음

365개의 선물, 그 다섯번째 주머니



아주아주 오랜만에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하나를 봤다. 

제목은 'Little Witch Academia'.

마녀가 되기 위한 마녀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였다. 

쭈글쭈글 주름지고 왕코에 흉측한 소리를 내는 마녀 말고 샤방샤방하게 생겨서 요술봉을 휘두르는 마녀 캐릭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취향이 남아 있는지, 마녀라는 소재에 이끌려 별 생각없이 보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코'. 

당차고 정의롭지만 허당이라 주위에 자주 민폐를 끼치는 마녀 학교 신입생이다.

하지만 민폐를 끼치긴 해도, 그 마음이 나오는 원천이 순수하고 주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 사랑받는 캐릭터.

그 '아코'의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다 보고 나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사실 요즘은 영화든, 드라마든, 애니메이션이든 관계없이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에 묘한 감정이 들던 차였다. 그 지나치다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비슷한 컨셉의 이야기가 소재와 디테일만 바껴서 반복되고 있다는 걸 뻔히 알게 되버려서일까.

나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계산적이기보다는 아주 단순하고 이상주의적인 타입이라, 이런 이야기에 곧잘 감동하고는 했는데 그런 내가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애니메이션 중간중간마다 몸은 소름이 돋고 감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머리로는 애써 침착하려는 이중적인 반응을 보이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유치한 걸 보면서 감동할 나이는 지났지.
근데 왜 몸에 소름이 돋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의지만으로 해도 뭐든지 어떻게든 좋은 이야기가 되는 전형적인 일본 만화 이야기의 컨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런 건 현실과는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내 몸은 왜 반응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나는 어릴 때 시작해보지도 않고 이미 끝났다고 포기하는 걸 정말 정말 싫어했다.
얼마 전에도 팀 게임을 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린 졌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화가 났다.
왜일까.
자기 나름대로 분석해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자유다.
포기하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다.

그런데 왜 그렇게나 화가 났던 걸까?



그런데 회사에서는 말하지 못했다.

똑똑한 척 결과를 예측해서는 이런 건 안될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직장 상사나 동료 앞에서 나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포기해도 나는 속으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설득할 만큼 간절하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아니 못했다. 자신이 없었다.

끝까지 해보기 전에는 결과는 알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믿는 나였으면서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갑자기 그렇게 '화'가 나던 내가 그리워졌다.

그 화는 어떤 특별한 에너지 같은 느낌이었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열정적으로 만드는.



'이대로 끝나게 내버려 둘까 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다!'


20대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였는데, 이제는 'Easy going' 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나의 동심을, 나의 초심을 잃었던 건 아닐까.
한때는 이런 내 모습에 대해 회사탓을 하기도 했지만,
포기하고 체념하면서 핑계를 찾는데 동의했던 건 결국 나다.
그런데, 그러니까 이걸 뒤집을 수 있는 것도 결국 나다.



사실 나는 그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던 걸지도 모른다.

포기하는 주위 사람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말자고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던 걸지도 모른다.


이건 마치 자동차에 올라타서 목표에 맞춰 내비게이션도 찍고, 길도 다 찾아놨는데, 연료가 바닥나서 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랄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는데, 도저히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던 건,

내가 잊어버렸던 마음, 그 연료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 유치해도 좋으니까.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어떻게 나를 믿는지,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잊어버리고 살아온 내 앞에 우연히 나타나 날 일깨워준 아코.

어쩌면 당신의 잊어버린 마음도 되찾아줄지도 모른다.






信じる心があなたの魔法よ!
믿어, 그게 네 마법이야!











- 우연히 본 애니메이션에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2018년 1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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