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열받고 힘든지
우리나라에 다혈질, 고혈압, 욕쟁이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은 운전할 때 도로 위이거나 스포츠 경기장이다.
경기장이 아니라도 집에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는 팬들도 가끔은 헐크, 감독으로 빙의된다. 평소에는 감정 컨트롤을 잘되더라도 운전대를 잡거나 스포츠 티브이 리모컨을 잡으면 육두문자는 자동으로 탑재된다.
여기서 기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이 경기는 분명 저 사람들의 인생인데 왜 내가 울고불고 있는 걸까. '내가 열을 내면 저 선수가 더 잘하게 될까?' '아니다.' 그럼 반대로 '내가 응원하면 저 선수가 잘하게 되나?' 당연히 '아니다.' 그냥 나의 응원과는 상관없이 선수는 자신의 기량대로 경기를 한다. 그럼 왜 우리는 야구를 보면서 울고 웃고, 화내고 하는가.
'열내고 있는 나'의 심리학적 이유
객관적으로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정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통제감’때문이다. 인간의 사고과정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다룬 개리 마커스의 베스트셀러 ‘클루지’에 따르면, 한 실험에서 불규칙한 소음을 들어야 한다는 조건 아래서 한 그룹은 소음을 멈추기 위해 단추를 누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고, 한 그룹은 소음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일러 주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이 뭔가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그룹이 스트레스를 덜 받았고, 더 행복하게 느꼈다. 내가 상황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고 마음에 안정을 준다.
게임도 통제감의 좋은 예이다. 게임은 연출된 경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실력이나 선택에 의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일정하게 높아지는 난이도와 보상은 '내 힘으로 이겨냈다.'는 통제감과 희열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게임 캐릭터가 지거나 이긴다면 우리는 게임을 떠날 것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그들만의 경기에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지만, 좋아하는 경기를 응원할 수 있고, 선수에 대한 평가를 할 수도 있고, 또 내 맘대로 경기를 욕할 수도 있다. 그것이 경기에 영향이 있든 아니든 내 기준에서 경기에 개입한다는 안정감과 행복함을 찾으려는 심리적 기제이다.
스포츠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승부라는 제어할 수 없는 조건에서 자신만의 통제감을 가지려는 행동을 한다. 바로 ‘징크스’가 그것이다. 징크스는 아무런 객관적 상관관계가 없는 일을 연결시켜 그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행동기제이다. JTBC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최강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은 '징크스 마니아'의 모습을 보인다. 앉는 자리조차도 함부로 선택하지 않고, 꼭 이겼던 날의 자리에 앉고, 지는 경기에서 신었던 신발은 다음 경기에서는 반드시 바꿔 신는다. 프로야구에서 1000승 이상을 달성한 김성근 감독이 승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내적인 통제력을 부여하여 사소한 행동까지 좋은 결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마음이자 안정감을 찾고자 하는 심리이다.
'욕하고 있는 나'의 심리학적 이유
통제감이 '내가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경기를 볼 때 우리는 선수를 칭찬을 하면서 안정감을 찾는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욕을 하면서 통제감을 찾는 경우가 많은 걸까? 심리학자 리처드 스티븐스는 욕설이 고통을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을 마주하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심박수, 혈압, 호흡 수, 혈당 등이 증가하면서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게다가 아드레날린은 진통효과도 있다. 욕설을 많이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아드레날린이 더 많이 방출돼 진통 효과가 커진다. 외부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내 안에서 더 강력한 자극 만들어 분출하면서 긴장 상황을 이겨내는 것이다.
이런 자극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두 가지 문제를 유발한다. 자극으로 분출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 해소에 점점 더 강력한 자극이 필요해진다. 욕설로 자극에 역치를 높이면 웬만한 분출로는 스트레스 해소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나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자극적인 태도는 듣는 이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 좋자고 하는 행동이 남한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돈 받고 일하는 직업이라도 야구 티켓에 '욕값'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팬이라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야구를 보며 헐크로 돌변하지만 방망이 나가다가 멈추고 볼판정을 받듯이 '아이! 야!! 엑!!!' 정도에서 그치고 C달린 단어, 발달린 단어를 뱉어서 헛스윙하기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