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사랑한 왕자

내가 더 먼저 그녀를 알아봤어

by 민보우

하데크 왕국의 왕자 프레드릭


" 왕자님, 오늘은 왕실 존칭 예법 두 번째 시간입니다."

"하암... 네."

"황제의 동생의 부인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


지루한 수업이 세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어요..

프레드릭 왕자는 오래 앉아있어 다리가 저렸지만 꾹 참는 중이었어요.

'야호!'

오늘의 수업시간이 모두 끝나자 몰려오던 잠 구름이 달아나며 머리가 산뜻해졌어요.

'오늘이 그날이지?'

프레드릭은 달력에 한 달째 빗살을 그어가며 오늘 만을 기다렸어요.

" 보크~~! 어서 준비해."

왕자는 바로 자신의 심복인 보크에게 서두르라고 말했어요.



"내가 먼저 그녀를 알아봤어."


바다는 어느 때보다 고요했어요.

"오늘 같이 좋은 날씨는 없겠지? 분명히 볼 수 있을 거야"

왕자는 한껏 들떠 보크에게 확신에 찬 듯이 말을 했어요.


편평하지만 동그란 바위들이 모여있는 이곳.

어느덧 하늘색이 핑크 빛을 띄자 어디 선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은 부서지는 노을빛을 그대로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인어들이었어요.

"언니, 그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아."

"정말이라니까. 산호초 동굴을 넘어가면 무시무시한 마녀가 사는 곳이 있어."

" 지난번에는 마녀가 고래를 새우로 만들기도 했다니까."

언니들은 막내 인어공주를 놀리느라 여념이 없었어요.

"무서워 힝힝"

막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언니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인어들의 눈부신 등장에 왕자 일행은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었어요.

"막내야, 언니들이 장난친 거야. 그만 울고 우리 오늘 배운 노래를 연습해보자."

인어들의 노래가 시작되자 별빛을 숨겨놓은 듯한 목소리가 바다와 하늘을 수놓았어요.



왕자는 한 달에 한 번 인어들이 동그란 바위에 모여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어요.

답답한 왕궁을 벗어나 탁 트인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듣는 인어들의 노래는

왕자의 힘든 마음을 달래주는 기분이었어요.

특히 그중에서도 매일 언니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울기 일쑤인 막내 에리얼에게 가장 마음이 갔지요.

왕자는 이따금 에리얼에게 말을 거는 상상을 하며, 혼자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어요.


사랑은 어느 순간에라도 찾아오지.


" 근데, 미카엘. 인어는 어디에 살아?"

지루한 예법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왕자가 선생에게 질문을 했어요.

" 왕자님, 왕실의 법도를 익히는 시간에 어디서 인어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엄하기로 유명한 왕실의 노선생에겐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지요.

왕자도 노선생의 친절한 대답을 기대하고 하는 말이 아니었어요.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어요.

프레드릭은 학문이나 무예, 예체능까지 다재다능한 청년이었지만 항상 상상을 즐기는 엉뚱한 청년이기도 했어요.

특히 신비로운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인어가 부른 노랫가락을 피아노로 연주해보기도 했어요.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프레드릭은 점점 더 믿음직한 모습으로 성장했고,

매달 인어들이 커나가는 모습도 빠짐없이 지켜보았어요.


점점 아름다워지는 막내 에리얼의 모습에 프레드릭은 자신의 모든 마음을 빼앗겼어요.

'오늘은 꼭 인어공주님을 만나 고백을 해야겠어.'

20살이 되는 왕자의 생일이었어요. 마침 인어들이 동그란 바위로 나오는 날이기도 했지요.

"보크~!! 나갈 준비를 하자."

"왕자님, 오늘 바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나가지 않으심이...."

"오늘은 꼭 나가야 해."

저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프레드릭의 단단한 결심을 막을 수 없었어요.

'인사를 먼저 할까? 놀라면 어떡하지?'

'아 아름다운 여인이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이렇게 물을까? 아.. 너무 느끼한데..'

왕자는 가슴이 쿵쾅거려 갑판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요.

신하들은 왕자의 스무 번째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고요.

'코지 쿵'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을 때 천둥이 먼저 도착하더니 파도가 심하게 일렁이기 시작했어요.

"왕자님, 안 쪽으로 피하세요.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보크가 다급하게 말했어요. 왕자도 오늘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배를 돌려라."

'우지끈'

성난 파도에 배가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졌고, 왕자는 아득히 정신을 잃었어요.



널 볼 수 없게 된다면


왕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떤 여인의 얼굴을 희미하게 보았어요.

"괜찮으세요? 왕자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몸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어요.

"왕자님, 큰일 날 뻔하셨어요. 제가 왕자님을 구했어요."

어떤 여인이 말이 들리긴 했지만 왕자는 고맙다는 말을 하기 전에 다시 정신을 잃었어요.

다시 눈을 떴을 때, 왕자는 침대에서 진찰을 받고 있었어요.

"왕자님, 정신이 드셨습니까?"

의사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왕자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왕이 화가 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왔어요.

"프레드릭,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지금까지 항해술을 익히러 간 게 아니고 인어를 보러 간 것이라고?

한 번만 더 내 귀에 '인어'얘기가 들리면 일체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할 테니 그리 알거라."

왕은 바다에서 들은 천둥소리처럼 말을 우르르 쿵쿵 내뱉은 다음 대답은 듣지도 않고 나가버렸어요.

"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시네."

왕자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어요.

사고로 얻은 두통과 타박상 등으로 잠시 수업을 쉴 수 있는 것이 어찌 보면 행운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바다로 나갈 수 없다는 생각 하니 자신이 불행하게 느껴졌지요.



왕자는 신선한 공기를 쐴 겸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어요.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서 가보니 담요를 몸에 두른 아가씨가 모래사장에 앉아 있었어요.

"이 아가씨가 글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모래사장에 앉아있지 뭡니까? 게다가 말을 할 수 없나 봐요."

보크가 당황해하며 말했어요.

왕자가 다가가서 얼굴을 보자 에리얼과 비슷하게 생긴 아가씨였어요.

프레드릭은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고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어요.

"일단 왕궁으로 모셔라."

왕자는 엄숙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떨려서 이상한 목소리를 내버린 것이 신경이 쓰였어요.

'항상 멀리서만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의 인어공주님과 너무 닮았어'

'하지만 인어공주님은 아닐 거야. 저 아가씨에겐 다리가 있잖아.

그럼 인어공주의 먼 친척인가? 아무튼 인어공주님을 아는지 물어봐야겠다.'

식사시간이 되어 왕자는 그 아가씨를 만나고 싶었으나 왕과 식사 약속이 먼저 잡혀 있었어요.

식사 장소에 들어가자 왕이 앉아있었고 맞은편에는 고개 숙인 여인이 앉아있었어요.

프레드릭이 자리에 앉자 왕은 목에 무거운 추를 매단 것처럼 무섭고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저 아이는 바로 프랑크왕국의 공주 이사벨라다. 너도 이름은 많이 들어봤겠지?"

"폐하, 저희 벌써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 도착하던 날 풍랑에 떠내려온 왕자님을 제가 구해드렸습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여인이 웃으며 말했어요.

프레드릭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정말 바닷가에서 만났던 여인이 웃고 있었어요.

"하하하. 벌써 우리가 그런 신세를 졌단 말이냐. 아무튼 너희는 정혼한 사이니 이제 결혼 준비를 서두르도록 해라.

왕자의 몸이 낫는 대로 결혼식을 치를 수 있도록 내가 프랑크왕국에 기별하겠다. 네 어머니가 없으니 네 결혼식에 내가 바쁘구나"

왕은 아주 흡족한 듯이 껄껄 웃었어요.

"하지만 아버지..."

프레드릭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으나 아버지 귀에는 들리지 않았어요.



거부할 수없이 사랑스런 그녀


'안돼. 안돼.'

방으로 돌아온 프레드릭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어요.

'인어공주님을 어서 만나야 해. 아까 낮에 만난 그 아가씨에게 인어공주가 사는 곳을 물어봐야겠어.'

프레드릭은 식물이 우거진 테이블에서 그 아가씨를 만났어요.

제대로 된 옷으로 차려입은 그녀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지요.

다리가 아픈지 삐걱대며 걸어오는 그녀에게 왕자가 먼저 말을 걸었어요.

" 피곤할 텐데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요. 앉아요."

왕자는 선 채로 아가씨에게 먼저 앉을 것을 권했어요.

아가씨는 갑자기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을 피해 걸어가더니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왕자는 당황했지만 다리가 아픈가 하고 그쪽으로 걸어가 아가씨가 있는 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어요.

"저는 이 나라의 왕자 프레드릭이라고 해요. 당신은 이름이 뭔가요? "

아가씨는 말을 하지 않고 동글동글한 두 눈만 깜박거렸어요.

아까 보크의 말처럼 말을 못 하는 아가씨 인 듯했어요.

"그럼 혹시 글을 쓸 줄 알아요?"

왕자는 서 보크에게 메모지와 펜을 가져오라고 해서 아가씨에게 내밀었어요.

아가씨는 또 멀뚱하게 쳐다볼 뿐이었어요.

"이렇게 잡고, 이렇게 쓰면 돼요."

왕자가 볼펜을 잡아서 글씨를 써보였어요.

아가씨는 볼펜을 받아 들더니 지렁이 같은 선만 몇 개 그릴 뿐이었지요.

"아....."

왕자는 난감했어요.


"혹시 저 바다에 살고 있는 인어들을 아시나요?"

왕자는 급한 마음에 인어에 대해 물었어요.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와 잘 됐네요.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우리가 어떻게 대화를 나눌지 방법을 찾아봅시다."

왕자는 아가씨가 인어를 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글도 말도 모르는 아가씨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지 막막했어요.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가씨를 불렀어요.

결혼 준비 같은 건 안중에 없었지요.

"아가씨, 그럼 제가 묻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저어서 표시해주세요."

왕자는 고개를 끄덕여보고 또 저어 보였어요.

그러자 공주도 똑같이 따라 했어요.

왕자는 종이에 바다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자 여기가 바다예요. 여기는 모래사장이고요. 배를 타고 이렇게 가고 있어요. 여기는 사자바위고요.

저는 인어가 살고 있는 곳을 찾고 있어요. 사자바위에서 이 쪽으로 가면 되나요?"

아가씨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맑고 청량한 눈망울에 티 없는 미소를 보자 왕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어공주와 꼭 닮은 이 아가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이야기를 이어 갈수록 많은걸 가르쳐 주고 싶고 또 같이하고 싶어 졌어요.

"물은 이렇게 마시는 거예요. 컵에 다가 입을 대고 꿀꺽"

아가씨는 곧 잘 따라 했어요.

하지만 디저트가 나오자 접시에 입을 대고 꿀꺽하다가 켁켁거렸어요.

왕자는 웃음이 절로 나왔지요.

"인어를 아는 것 보니 먼 나라에서 오신 것 같진 않은데 참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왕자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두문불출하며 그 아가씨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밥도 같이 먹고 산책도 같이 하고 노래도 같이 들었어요.

대화는 잘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 먼저 가서 닿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왕자님, 결혼 준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공주님이 곧 다시 오신다고 하니 그 아가씨는 이제 안 만나시는 게.."

보크는 왕자의 행복한 표정이 마냥 기쁘지는 않았어요.

왕이 불호령을 내리실게 뻔하기 때문이었지요.

"보크, 나 폐하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려야겠어. 인어공주님께 고백을 하고 싶다고."

"왕자님.. 그건 안돼요."

"나도 안 되겠어 보크. 그동안은 폐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말을 다 들어드렸지만 나도 내 마음을 언제까지 속일 수는 없어."

보크의 만류에도 왕자는 왕에게 달려갔어요.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


"무슨 일이냐."

여전히 근엄한 왕의 목소리에 위축되었지만 처음으로 왕자 안에서 용기 낸 목소리를 꺼내 보였어요.

"아버지, 저 이 결혼 안 해요. 저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그랬느냐. 그건 네가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

"아버지 저도 이제 어른이고 제가 결정할 수 있어요."

왕자는 다부진 목소리로 말을 했어요.

하지만 왕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이 가득 묻은 말을 뱉었어요.

" 네 어미가 프랑크 왕국에 왜 가있는지 아느냐. 네가 어릴 때라 너에게 말할 순 없었지만 네 어미는 너 대신 프랑크 왕국에 볼모로 잡혀 간 것이다. "

"뭐라고요?"

왕자는 처음 듣는 사실이었어요.

왕은 말을 이어갔어요.

" 알다시피 프랑크왕국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될 만큼 큰 나라다.

프랑크 왕국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조건으로 어린 네가 장성해서 프랑크 왕국에 사위가 될 때까지 네 에미를 대신 잡아간 것이란 말이다. 아직도 어찌 그리 철이 없어."

프레드릭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어릴 때부터 그리웠던 어머니의 부재가 자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었어요.

그저 어머니가 프랑크 왕국과 외교문제로 오래가 계신 거라고만 알고 있었지요.

이런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그동안 항상 초조해하고 윽박지르던 아버지의 모습이 무엇에 사로잡혔기 때문인지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런 아버지의 고민 속에 프레드릭의 인어 공주 타령 따위는 그저 어린아이의 동화처럼 들렸던 거예요.

프레드릭은 온몸에 힘이 빠졌어요.

'모든 게 나 때문이었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는 못난이는 사랑이라는 공상 속에 빠질 자격이 없어.'

프레드릭은 인어 공주의 미소도 목소리도 모두 마음 깊은 곳에 가둬두고 다신 열어보지 않기로 했어요.

언젠가 인어공주를 생각해도 가슴이 저리지 않은 날 추억으로 꺼내보기로 자신과 약속했지요.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인어공주를 아는 아가씨를 만나지 않고 결혼식 준비에 매진했어요.

이사벨라 공주는 선상 호화 결혼식을 하고 싶어 했으며, 왕자는 바다와 배만은 다시 쳐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찬성했어요.

혹시나 멀리서 인어공주의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만 유일한 위안이 되었지요.

결혼 식 날, 왕자는 자신이 모든 생각을 멈추고 몸이 그저 시간에 따라 움직여 주길 바랐어요.

왕자에게는 구름 같은 하객들은 물론 왕자비가 될 공주의 얼굴까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흥겨운 음악 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오직 실수 없이 걸어갔다가 표정을 들키지 않고 식을 끝내고 오는 것이 목표였어요.

하지만 15년 만에 돌아온 어머니를 보자 왕자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으로만 보던 어머니를 실제로 보니 많이 야위었고 흰머리도 피어있었어요.

어머니는 프레드릭은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어요.




밝혀지는 비밀


몇 시간이 지났을까.

구름 같은 하객들은 각자의 피로연 장소로 옮겨가고 왕자는 결혼식장에서 피로연 복으로 환복을 하고 있었어요.

우연히 눈길이 멈춘 선상 창문으로 알록달록한 물보라가 이는 것을 보고 왕자는 그쪽으로 걸어갔어요.

바다에서는 물거품이 하늘로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때 어디선가 '인어'라는 단어가 들려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어요.

"수고했어요. 오늘."

"다 공주님이 도와주신 덕이지요. 오늘 저의 마법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해 선상에서 결혼식을 잡아주셨군요."

"오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확실히 사라졌겠죠?"

그곳에는 아사벨라 공주가 검은 망토를 쓴 하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공주님이 시키신 대로 왕자님이 인어를 만나러 가는 날 풍랑을 일으켜 공주님이 왕자를 구한 걸로 만들고,

인어공주에게 다리를 주는 대신 사람이 되게 하여 목소리를 빼앗았어요. 그리고 이자벨라 공주님의 결혼식을 앞당겨 물거품으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인어공주가 나타나서 공주님을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왕자는 모든 걸 알게 되었어요. 이 모든 슬픈 일들이 다 이사벨라 공주가 꾸며낸 일이란 것을.

그리고 왕자는 밖을 바라보았어요.

처음에는 알록달록하다가 이제는 보랏빛이 된 물거품이 하늘로 하늘로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어요.


슬픔의 눈물이 나 비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줄만 알았는데
바다 위에 슬픔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이었구나.


왕자는 가슴이 미어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어요.

당장이라도 이사벨라를 잡아서 추궁을 하려고 했으나 둘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어요.

"다음 계획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뭐죠?"

"다음은 왕을 없애고 이 히데크왕국을 차지하는 일입죠. 저는 바다마녀라 육지에서는 힘을 잘 쓰지 못합니다. 왕자비님의 활약이 더 기대됩니다. 호호호."

마녀는 기분 나쁘게 웃었어요.

"감히 인어공주를 이렇게 만들다니."

다음 계획까지 알게 된 왕자는 더 이상 참지 않고 하객으로 변신한 바다마녀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어요.

바다마녀는 하객에서 다시 문어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미끄러지듯 도망쳤어요.

"거기서 이 마녀야! "

마녀는 미끌거리는 점액을 뿌려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왕

자는 마녀를 배에서 육지로 연결된 통로로 유인해서 육지로 도망치게 했어요.

육지에서는 힘이 약해지는 마녀는 비틀거리며 속도가 약해졌어요.

그 틈을 이용하여 왕자는 마녀의 심장에 칼을 꽂았어요.

"으악!." 마녀의 주술이 만들어지는 곳을 정통으로 공격받은 마녀는 더 이상 힘들 쓰지 못하고 회오리가 되어 사라졌어요.

마녀를 물리치고 선상으로 돌아와 보니 이웃나라 왕과 왕비는 공주가 피해를 입을까 봐 서둘러 일행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어요.

히데크 왕은 프랑크 왕에게 말했어요.

"이번 일은 정말 유감이요. 그동안 우리가 약소국이라고 생각하여 당신들의 협상에 순순히 응했지만 이번엔 다를 거요. 전쟁을 선포하겠소.

하지만 난 당신들처럼 가족을 볼모로 잡는 치졸한 행동은 하지 않소. 어서 돌아가시오. 가서 공주의 잘못에 대한 대가로 우리의 공격을 받으시오."

왕의 근엄한 목소리가 비장하게 울려 퍼졌어요.

그리고 왕은 프레드릭에게로 다가왔어요.

"프레드릭, 그동안 내가 너희 엄마를 힘들게 하고 너를 힘들게 하였구나. 가족을 희생시키는 게 하데크 왕국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 나라를 지키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더구나. 나는 내 나라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 모인 많은 백성들이 이미 나에게 화답해주었다. 우리는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

"아버지,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래. 장하구나 우리 아들. 그전에 너도 지킬 것이 있지?"

아버지는 손으로 왕자의 뒤를 가리켰어요.

왕자가 뒤돌아보자 바다 위 물보라 속에서 환한 빛이 퍼지는 것이 보였어요.

왕자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어요. 물보라들은 서서히 모이더니 에리얼의 모습으로 변했어요.


"아, 공주!"

왕자는 빛을 따라 천천히 바다로 내려오는 인어공주를 알현하였어요.

"참으로 어리석은 그대, 이렇게 험한 길로 돌아오게 하여 미안해요. "

"왕자님!"

에리얼은 진주 눈물을 또르르 흘렸어요.

"그리고 나를 만나기 위해 그렇게까지 용기를 내줘서 고마워요. 나보다 더 낫군요."

프레드릭은 에리얼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사랑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바보가 되는 마법인가 봐요."

공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바다와 육지에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앞으로의 모든 순간까지도, 그대를 사랑하오.

그리고 지금부터는 마법이란 말은 쓰지 말도록 합시다. 겁이 나니."

" 저도 이젠 다리 따위 바라지 않고 물고기로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요."

먼 길을 돌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한 사람과 한 인어는 행복한 키스로 서로를 확인했어요.

바다의 여신 메티스와 같은 지혜를 가진 공주로 성장한 에리얼과

메티스의 남편이자 신중의 신, 제우스와 같은 용기를 가진 프레드릭은

앞으로 닥쳐올 전쟁의 포염 속에서도 현명하게 서로를 지켜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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