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눈이 안오는 이유

카이와 게르다는 눈의 궁전에서 나가지 못하는데

by 민보우


절대로 뿌려주지 않을거야.


눈 모양의 퍼즐 조각을 맞춘 카이와 게르다는 얼음 궁전을 빠져나가려고 했어요.

그 때 얼음 궁전의 곳곳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어요.

"눈의 여왕님을 만나야해."

카이가 말했어요.

"이 궁전에서 지낼 때, 몇 번 이렇게 궁전 곳곳이 녹은 적이 있었어.

내가 여왕님의 모습을 본건 궁전이 물로 가득찼을 때였어.

눈의 여왕님은 울고 있었어.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내가 들어가서 여왕님을 보았을 때,

여왕님은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했어."


"여왕님이?"

게르다는 카이의 말이 믿기질 않았어요.

"내가 여왕님의 손을 잡아주니 눈물을 그쳤어.

그 뒤로도 몇번 궁전이 녹을 때면 내가 가서 손을 잡아주었어."

카이의 말에 게르다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어요.

"그땐 너가 차가워졌을 때 였잖아.

지금 여왕님을 만나면 눈의 여왕은 너를 또 조종할지 몰라."

"걱정마, 게르다. 여왕님은 처음부터 나를 해칠 생각이 없었어."


둘은 서둘러 눈의 여왕의 방으로 찾아갔어요.

눈의 여왕은 뒤를 돌아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어요.

"여왕님.."

아이들은 여왕님의 곁으로 다가가려 했어요.

"너희들도 어서 떠나. 난 신경쓰지말고.

날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

내가 온 세상을 하얗게 밝혀줄 때도 춥다, 걷기 힘들다, 먹이감을 찾기 힘들다, 녹으면 더러워진다.

동물들은 내 불평만 했어."

"그렇지 않아요, 여왕님. 우리는 눈이 오면 신이난다구요. 눈싸움도 하고요. "

"너희도 똑같아. 옷 버릴까. 눈을 보러 나오지도 않아.

요즘 눈이 더럽다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지. 그런 쓸모 없는 걸 왜 뿌려."

그러고 보니, 눈이 안오기 시작한지 여러해 였어요.

생각해보니 몇 해 전부터 펑펑 눈은 아예 내리지 않았고 싸락눈도 스쳐지나가듯 내리고 그쳤어요.

카이가 잡혀오고 나서부터는 마을에서 눈을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어요.


"절대로 눈을 뿌려주지 않을거야."

눈의 여왕은 눈물을 그치고 결심한 듯이 말했어요.

다행히 얼음 궁전이 녹는 것은 멈췄어요.

"어쩌지..."

카이와 게르다는 난처한 표정으로 눈의 여왕을 방문을 열고나왔어요.


찾아온 손님


그 때 궁전 안으로 눈부신 빛이 들어와 아이들은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화려한 빛으로 온몸을 휘감고 들어오는 것은 바로 태양의 여왕이었어요.

그 뒤를 따라 구름과 함께 등장한 투명한 빛의 여신은 비의 여왕이었어요.

두 여왕은 눈의 여왕 방문을 열고 말을 했어요.


"얘, 막내야.

너 이렇게 일을 안하면 우리가 남은 날씨를 채우느라 고생한다구 .

지금 내가 며칠째 쨍쨍거리고 있는지 아니. 지금 겨울이라고.

내가 쉬어야되는 시기란 말야."

태양의 여왕이 투덜거렸어요.


"너가 눈을 안내려줘서 대지에 부족한 물을 채우느라 너무 힘들어.

이제 힘조절이 안되서 어제는 3일째 폭우를 내렸지 뭐니.

집이랑 동물들이 떠내려가는데 얼마나 미안하던지."

비의 여왕도 뒤이어 하소연을 했어요.


"벌써 몇 년째야.

네 응석도 이젠 안 통해.

날씨를 관장하시는 아버지한테 가서 눈의 여왕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시켜달라고 하는 수밖에."

두 여왕은 입을 모아 말했어요.


"여왕님들. 이번엔 다를 거예요."

뒤에서 듣고 있던 게르다가 외쳤어요.

"눈의 여왕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카이도 같은 마음으로 말했어요.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더니 맹랑한 아이들이구나.

암튼 너 이번에도 제대로 안하면 우리가 가만히 안 있을테니 두고봐."

태양의 여왕과 비의 여왕은 홀연히 사라졌어요.





악동일 줄이야


카이와 게르다는 목에 힘을 주어 말했어요.

"우리는 해드릴 수 있는건 없지만 여왕님의 곁을 떠나지 않아요."

여왕은 카이와 게르다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왠지 든든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하루 뿐이었죠.

다음날 아침,

카이는 방문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어요.

"여왕님, 이것보세요. 박쥐자세예요."

카이는 책장이고 창문이고 되는대로 매달리는 건 물론이고

방문마다 고드름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어요.


한편 게르다는 말도안되는 얘기를 쉴새없이 조잘조잘거렸어요.

"여왕님, 근데 이거 먹어보셨어요? 누가 똥 맛이라고 하는데 저는 방귀 맛 같아요. 우히히히"

"아 오늘은 몸이 메랑메랑해요. 근데 좀 누워서 쉴 줄알았죠? 으하하하"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한 눈의 여왕은 망둥이 처럼 뛰어다니는 둘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잠시만 한 눈 팔아도 상들리에를 부수거나 얼음 장식들을 깨기 일쑤였죠.

눈의 여왕은 혼이 쏙빠지게 힘들었지만 좋은 점은 한가지 있었어요.

슬픈 생각을 떠올릴 틈이 없었거든요.


"이거 한번만 불러주세요. 네?"

카이와 게르다는 노래 악보를 가져와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고 있었어요.

눈의 여왕은 한사코 안된다고 했지만 안불러주고는 오늘밤 잠을 재워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한 소절 읊조렸어요.

"우와 눈의 여왕님 목소리가 정말 좋아요."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러주었어요.

눈의 여왕도 조용히 울려퍼지는 노랫소리에 자기 마음도 차분해 지는 것 같았어요.

자기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보니

문득 내가 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희에게


어제 늦게 잠이든 탓인지 눈의 여왕은 아침 늦도록 단잠을 꾸고 있었어요.

"여왕님"

아기새들이 지저귀듯이 아침부터 붕붕 거리며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는 아이들이 여왕님을 흔들어 깨웠어요.

"여왕님!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잖아요! 저희가 선물을 준비했어요."

여왕이 눈을 뜨고 쳐다본 곳에는 배겟 속 솜을 뭉쳐서 만든 눈사람이었어요.

단추를 붙여 만든 눈은 삐뚤빼뚤했고 하얀 솜 머리 위엔 여왕의 머리핀을 꽂고 있었어요.



"예쁘구나."

눈의 여왕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어요.

"여왕님이 눈을 뿌리실 때 있잖아요. 차가워 보이긴 했지만요. 좀 멋졌어요. "

"저희를 위해 눈을 내려주시지 않을래요? 더 예쁜 여왕님 눈사람도 만들어 드릴께요. 네?"

아이들은 발을 동동구르며 두손을 모으고 초롱초롱한 눈 빛으로 눈의 여왕을 쳐다보았어요.


눈의 여왕은 카이와 게르다를 위해서 자신이 가진 재주를 쓰고 싶어졌어요.

"그럼 한번 나가 볼까? "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타고 나간 눈의 여왕은 오랜만에 온 세상을 하얀 눈으로 수놓았어요.

거리를 거닐 던 사람들도 갑작스런 눈 소식에 모두 기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눈의 여왕도 오랜만에 뿌듯한 마음이 되어 반짝이는 보석같은 눈을 선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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