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민 경제 교육을 실시하라(1)

2025.06.10.

by 이이름


소속이 없어지는 순간 제일 먼저 무섭게 육박해 오는 부담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일 줄은 몰랐다. 그나마 국민연금은 납부 유예 제도가 있어 불안정한 기간을 넘길 수 있는데, 건강보험은 얄짤없다. 나라에서는 나를 가진 게 많은 사람으로 본다는 말이기도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월 몇 십만 원의 건강보험료는 계획에 없던 고정 지출로 꽤 부담스럽다. 그야말로 당황스러운 상황.


사회보장제도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지, 암. 당연히 내야지. 그런데 그 세부 규칙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소득이 없을 때 어떻게 될지를 미리 계획하지 못했던 것이다. 모르는 주제에 당당할 수는 없다. 공공장소에서 “몰랐는데 어쩌라는 거야!” 하고 소리치는 사람을 만나면 싫고 무섭잖은가. 인형 뽑기 할 때 쓰는 고리 같은 걸로 집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 버리고 싶잖은가. 배우고자 하지 않는 ‘무지’는 죄다.


그럼 나는 퇴사하면 건강보험료가 육박하리라는 걸 왜 몰랐을까? 사회의 작동 원리를 정말로 깊고 신중하게, 진지하게 사유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을 주워듣고 떠들고 다닌다거나, 노동 3권을 보장하지 않는 정부나 기업을 욕하는 건 쉬웠다. 나에게는 언제든 자유롭게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만 생각했다. 반면 ‘노동’이 왜 국민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 벌로 노동의 의무를 저버리는 순간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이 어깨동무를 해 온다. “사회 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잊지 마.” 학교에서 배울 때는 전혀 와닿지 않던 지식이 돈 몇십만 원과 함께 절절하게 몸으로 체험된다.


책임과 의무 아닌 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를 보호하라고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네이버부터 켜고 찾아봐야 한다. 정부 부처의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헤맨 끝에 어찌어찌 해결은 하는데 명쾌하지가 않다.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까마득한 일이겠나 싶다.


그러니 몰라서 창피한 것도 사실이지만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억울하기도 하다. 연말정산, 4대 보험, 퇴직금 계산식, 세무신고 같은 경제 개념은 물론, 대출이나 보증 같은 금융 생활의 기초 개념도 모른 채 성인이 된다. 국민의 4대 의무를 수행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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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No Money, No Future)(2016)>는 파인드 더 스팟, 스컴레이드라는 펑크(Punk) 밴드가 일본 하드코어 펑크 페스티벌에 초청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다. 이들의 공연 장면, 준비 과정, 뒷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아직도 이런 ‘펑크’들이 있었군, 하고 흥미롭게 보다가도 머지않아 사그라들 불꽃을 보는 것처럼 쓸쓸한 기분이다. 물론 머지않아 사그라들기에 더 아름답다.


반체제적 정신이 담기지 않은 펑크는 그냥 신나는 댄스 음악이다. 세상을 뒤집자는 청년 펑크들의 외침은 진짜 무정부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고민하자는 권유고 바꾸라는 경고다. 청년이 아니게 되고 보니 알겠다. 펑크 정신을 표방하는 DIY니 아나키즘이니 Oi니, 전부 제스처라는 걸.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각자의 철학이고 방법론이라는 걸.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노후 대책을 걱정해야 하는 답 없는 각자도생 사회에서 노후 대책 따위 없다고 소리치는 펑크 밴드가 있다는 것 자체로 소중하다. 이 외침은 신랄한 비판이고 통렬한 문제제기다. 이를 통해 체제 순응적인 태도를 조소함과 동시에 청년층의 절망을 대변하는 아이러니가 만들어진다. 한편으로는 자조적이어서 슬픈 울부짖음이기도 하다. 속뜻은, 우리에게도 노후를 달라는 얘기다.


이 미래가 없어 보이는 청년들에게도 노후를 맞이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