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1.
<아버지의 해방 일지>는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장례식 3일간을 다룬 소설이다. 서술자인 딸은 장례식에 찾아온 아버지의 지인들을 통해 몰랐던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역사가 아버지에게 남긴 상처와 고통을 조금씩 이해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무장한 따뜻한 사람들이 등장해 아버지와의 추억을 들려주는 옴니버스 구성이다. ‘사회주의자’, ‘빨치산’ 딱지에 가려졌던 아버지의 진짜 얼굴이 조금씩 드러난다. 고통받는 민중을 가엽게 여겨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바보스러울 만큼 따뜻한 휴머니스트의 얼굴이.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부모님이 대화하는 장면들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방물장수를 재우기 싫어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이라고 지청구를 놓고, 그러면 어머니는 즉시 입을 다문다. 딸의 흡연을 부정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넘의 딸이 담배 피우먼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먼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이네! 소시민성 한나 극복 못헌 사램이 무신 헥명을 하겠다는 것이여!” 하고 일갈한다. 역시 어머니는 입을 다문다.
혁명이나 사회주의가 ‘죄악’인 한국에서 이런 대화는 이해되지 않는 블랙코미디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코미디가 아니다. 그들을 빨치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그때 품었던 마음으로 되돌려 놓는 마법 같은 말이다. 이데올로기는 ‘삶의 가치관’이다. 이기적이게 되고 생활의 편리를 좇을 때마다, 내 안으로 시선이 돌아갈 때마다, 바깥으로, 약자에게로 고개를 돌리게 하는, 인생의 나침반. 그 거대한 나침반을 가슴에 심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인 것이다. 부모님에게 ‘사회주의’와 ‘혁명’이란 인간을 향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소설 속 부모님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빨치산이 된 건 10대 때의 일이다. 가장 뜨겁고 젊을 때 내린 판단이 삶 전체를 끌고 왔다. 이들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시대의 가혹한 물음에도 흔들림 없이 옳다고 믿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까닭은 그 판단이 사회의 구조와 원리에 대한 깊고 진지한 사유에서 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젊은 시절의 판단과 선택이 삶을 좌우하는 건 여전한 것 같다. 그러니 그렇게들 일찍부터 목을 매는 거 아니겠나.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뭔가 부족한 상태로 성인이 되는 것 같다. 진짜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란 적이 없다. 살면서 계속 헷갈린다. 원해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어떤 사상을 선택하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아직도 남아있는 레드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다. 사상이 뭐든, 적어도 내가 어떤 것을 추구하고 어떤 세상을 살고 싶은지 충분히 숙고한 후에 세상에 나오면 덜 혼란스러울텐데 말이다. 사회주의니 혁명가니 그런 건 딱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딱지를 가슴에 붙이는 순간 우리 안에 거대한 나침반이 들어선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소설 속 부모님처럼 살 수 있다면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는 거 아닐까?
건강보험료라는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고 나서야 시민 교육의 필요성을 생각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기본적인 시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 안에는 반드시 ‘경제’ 교육이 포함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선택한 경제 체제의 본질을 깊고 진지하게 사유할 기회를 줘야 한다. 경제 교육은 우리 사회의 체제, 제도, 법, 윤리의 테두리 내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지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연말정산, 연금저축, 연금보험, 주식, 세금, 4대 보험 같은 실질적인 지식을 주변 사람한테 알음알음 배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그런 정보의 격차부터 해소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노후 대책을 마련해 주는 사회가 된다면 물론 좋겠지만 지금 그걸 바라는 게 아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부자 되는 법을 알려 달라는 게 아니다. 냉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진짜 필요한 시민 경제 교육을 해달라는 거다. 살면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주식 투자자가 될지 펑크 밴드가 될지 스스로 선택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
그리하여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 결과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붙인 이름표로 자신을 정의하는 세상. 그 이름표가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각자의 철학이고 방법론임을 인정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하루빨리 시민 경제 교육을 실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