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 나름 진지한 대화 중

2025.06.12.

by 이이름


어제 잔디밭에서 아내와 나눈 대화를 녹음해서 그중 일부를 글로 옮겨봤다. 내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웃고 있다고 표시하지 않았다면 더욱 싸이코처럼 보였을 것 같다. 비언어적 표현을 놓치거나 외면하면 오해와 불신만 남을 것 같다. 말이 생각보다 불확실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하려고 했던 말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지 못했다. 맥락을 어떤 방식으로 좇고 있는가도 사람마다 다르다. 글로 옮길 때 더 신중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겠다.


(2년 후에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뭐 그런 얘기 중)

아내 : 너무 그냥 그냥 이대로 일상을 즐기는 게 좋아 뭘 남겨놓고 싶다, 이런 게 없으니까.

남편 : 응...또?

아내 : 또?

남편 : 그냥 이렇게 앉아가지고 책 읽을 수 있겠어?

아내 : 어...아닌가?

남편 : 사람들을 만나려고 그럴까?

아내 : 응.

남편 : 더 자주?

아내 : 더 자주? 라기보다는.

남편 : 2년이 남았잖아.

아내 : 그러면 지금은 안 만날 거야.

남편 : (웃음) 너무 일러? 만나기에?

아내 : 그러게, 그냥 계속 여행 다닐 것 같은데. 국내, 국내 다니고, 해외 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안 먹어본 거 먹고, 안 해본 거 해보고.

(공백)

아내 : 그러면...한 60년 더 살아야 돼. 이제 60년이 남았어.

남편 : 보통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언제 죽을지 생각 안 하고 사니까. 그렇잖아? 그러니까 노후 대비하고 뭐 힘든 거잖아?

아내 : 60년 남았어. 뭐 하고 싶어?

남편 : 실제 60년 정도 남았다고 봐야지. 100살까지 산다 치면.

아내 : 그치.

남편 : 뭐 하고 싶냐고? 그렇게 되면은, 뭘, 뭘, 뭔가가 됐으면 좋겠다, 뭘 했으면 좋겠다도 있겠지만, 그렇게 안 됐으면 좋겠다 하는 게 더 있지 않을까? 폐지를 줍고 싶지 않다든가, 병 들어서 병원에 있고 싶지 않다든가.

아내 : 60년이 남았으면 나는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았어.

남편 : 그렇지, 우리가 산 것보다 더 사는데,

아내 : 그래서 직업을 한 3개 정도 그럼 더 가질 수 있어.

남편 : 그렇지 3~4개 할 수 있지, 그럼.

아내 : 그래서, 그게 좀 재밌어...저 정지아 작가도 그랬잖아. 마지막에 마무리하는데. 작가의 말? 작가의 말에서 그랬잖아. 앞으로 나아가려고 성공하려고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던 것보다...오빠도 읽었잖아. 왜, 왜 모르냐고, 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 마. 오빠도 읽었잖아.(웃음)

남편 : (웃음) 말 꺼내으면 끝까지 하라고. 꺼내질 말든가. 뭐라 그랬는데, 정지아가? 나 작가의 말 안 읽었어.

아내 : 왜 안 읽었어?

남편 : 소설만 딱 읽었어. 그러니까, 그러면 그 말을 꺼내기 전으로 돌아가서 말을 이어가야지.

아내 : 그 전이 뭔데?

남편 : 정지아 얘기 꺼내기 전으로 돌아가야지. 60년을 더 살면 직업을 3개를 갖고...

아내 : 이렇게 하나밖에 몰라 하나밖에(웃음)

남편 : 뭐가? (웃음)

아내 : 그 말이 연결돼 있는 거를 왜 이해를 못 하니?

남편 : 모르겠는데.

아내 : 그렇다면 내가 보여주지. (책을 가지고 온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옆에 참새가 날아와 앉는다) 너 그때 걔지? 쟤가 날 알아보고 계속 온다니까?

남편 : (웃음) 말도 안 돼.

아내 : (진지) 광나루에서도.

남편 : 세상에 참새가 몇 마리가 있는데.

아내 : 여보 몇 시에 갈래? 나 해 지면 갈게. 배도 부르고...오빠는 걸어가 아침에 안 걸었잖아. 그치?

남편 : 집까지 걸어가?

아내 : 오빠만.

남편 : 그래.

아내 : 오빠 몇 보 걸었어?

남편 : 이천보.

아내 : (놀라며) 힉!

남편 : 너무 안 걸었지.

아내 : 응.

남편 : 그럼 우리는 2년 후에 죽는다 생각하고 살아야 돼, 60년 후에 죽는다 생각하고 살아야 돼?

아내 : 60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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