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간 운송의 역사

2025.06.16.

by 이이름



최근 보도된 기사들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장거리 노선에 투입되는 B777-300ER 기종 11대의 이코노미 좌석 배열을 기존 '3-3-3'에서 '3-4-3'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변화는 항공기 1대당 최대 37석까지 좌석 수를 늘릴 수 있지만, 좌석의 좌우 간격이 약 1인치(2.6cm) 가량 줄어들어 승객들의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고객 편의 증대 및 서비스 향상을 위해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도입 등 전체 좌석 개편을 종합적으로 준비 중이며, 좌석 배열 등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저런 검토를 진지하게 했다는 건 하겠다는 얘기이므로, 불매에 버금가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떤 시점에는 어떤 형태로든 실행될 게 자명하다. 인간을 값싸게 최대한 많이 운송하는 게 중요한 건 알겠는데, 저 줄어든 간격만큼 그 좌석에 앉는 인간의 살과 근육, 뼈, 그리고 ‘정신’에 가해질 고통이 증가하는 것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으니, 정작 이 운송 계획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항공사와 이코노미 승객은 일반적인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가 아니다. 서비스 제공자가 소비자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소비자는 대체재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이용할 수밖에. 기간산업이 사기업들의 독과점 무대가 되면 이런 꼴을 낳는다. 대한항공은 국적기로써 공익을 좀 신경 써야 되는 거 아닌가? 저런 검토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이코노미’들은 “싼 값에 태워주는 걸 감사하라”는 말을 면전에 들은 것처럼 불쾌하다.


미국의 그래픽디자이너 스티븐 헬러(Steven Heller)라는 사람이 이코노미클래스 좌석과 역사상 가장 비참한 18세기 노예선의 레이아웃이 똑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기묘한 유사성(Curious Similarity)이라 평했다. “나는 아프리카 노예선의 비인도적이고 공포스러운 열락한 환경에 대해 새삼 논하지 않는. 그러나 최근 삼등석 (이코노미석)에 타고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을 보면서, 나는 오늘날 항공기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기내환경과 노예선간에 기묘한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항공기 좌석배치를 보면, 노예선의 효율적인 설계와 많이 닮았다. 혹시 항공기 디자이너들이 무의식 중에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인간 운송의 역사를 AI들과 함께 공부해 보았다. 이 뒤는 AI들이 사실 중심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준 내용이다. AI들이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내용을 정리해 주는 바람에 감정을 배제하라고 수차례 명령해야 했다. AI들은 감정은 없을지라도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는 말이라도 할 줄 안다. 인간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고통에는 공감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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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효율적인 인간 운송을 위해 고안된 이코노미석에 앉아 웃고 있는 관계자들


1. 대서양 노예무역 (약 1500년대~1800년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열강(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은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흑인들을 납치하거나 구매하여, 아메리카 대륙(카리브해, 브라질, 북미 등)으로 이송하였다. 이들은 플랜테이션 노동력으로 사용되었으며, 주요 생산 작물은 설탕, 목화, 담배 등이었다.

노예선은 최대한 많은 인원을 태우기 위해 인간을 바닥에 포개듯 눕혀 배치하였고, 쇠사슬에 묶인 채 운송되었다. 일반적인 공간은 성인 남성 기준 가로 약 40~50cm, 세로 약 140~160cm 정도였으며, 높이는 사람이 앉기 어려운 정도였다. 선내에는 환기, 위생, 배변 처리 시설이 없었고, 질병이 창궐하여 평균 사망률은 10~20%에 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1781년 Zong호 사건이 있다. 이 선박의 선원들은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약 130명의 아프리카 노예를 바다에 던져 익사시켰다. 또 다른 사례인 '브루크스호(Brookes)'는 당시 노예선의 구조를 보여주는 도해로 유명하다. 공식적으로는 454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광고했으나, 실제로는 600명 이상을 탑승시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국은 1807년 노예무역을 금지했으며, 이후 다른 국가들도 점차 이를 따랐다. 그러나 불법적인 노예 운송은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미국은 1865년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를 공식 폐지하였다.


2. 노예제 폐지 이후 – 이민선과 강제 동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수백만 명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이들은 주로 이민선의 최하 등급인 '스티어리지(steerage)' 또는 3등석에 탑승했는데, 이곳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스티어리지 구역은 독립된 객실이나 좌석이 없었고, 수십에서 수백 명의 승객이 개방된 공간에서 침상을 공유했다. 환기 시설은 극히 부족했고, 승객들은 제한된 수의 공용 화장실과 세면 시설만을 이용해야 했다. 이로 인해 오물과 쓰레기가 넘치고 악취가 진동하는 비위생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밀집된 공간과 불결한 위생은 장티푸스, 콜레라, 결핵, 홍역 등 치명적인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하는 온상이 되었다. 항해 중 사망하는 승객들이 속출했으며, 특히 어린이들의 사망률이 높았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이민선에서는 '관선(coffin ships)'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민선에 탑승한 승객들은 종종 2~3주에 걸친 대서양 횡단 기간 동안 이러한 비참한 환경에 갇혀 지냈다.


3. 항공 대중화

1900년대 초, 초기 항공 여객기는 작고 비행시간이 짧아 좌석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주로 군용·특수 목적 중심이었고 좌석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1930~40년대에는 대형 수송기와 함께 고급 항공 서비스가 시작되며 좌석 간격은 1m 이상이었고, 식사·음료 등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1940~50년대 초기 상업 항공은 고소득층 대상이었으며, 좌석 간격은 약 86~100cm였다.

1950~60년대, 보잉 707 등 제트 여객기의 등장으로 항공 대중화가 시작되며 이코노미 클래스가 도입되었다. 이 시기 좌석 간격은 약 80~90cm였다.

1978년, 미국에서 항공자유화법이 제정되며 항공사 간 경쟁이 심화되었고, 좌석 간격과 서비스 수준이 점차 축소되었다. 1980~90년대에는 저가 항공사 확대로 71~76cm(28~30인치) 좌석이 일반화되었고, 수하물·식사는 별도 요금제로 전환되며 좌석 클래스 간 격차가 커졌다. 1980년대 이후,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 간격은 평균 약 79cm 이하로 줄었으며, 저가항공사는 약 71cm(28인치)까지 축소되었다. 좌석 너비는 평균 43~45cm였다.

2000년대에는 초저가항공(LCC) 성장으로 좌석 간격이 최소화되었고, 기본 운임 외 대부분 서비스가 유료화되었다. 2010년대 이후, 좌석 밀도는 더 높아졌고 ‘스탠딩 시트’ 등 실험적 좌석 논의가 진행되었다. 개인화된 좌석 옵션과 연료 효율 중심 구조 개선이 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