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미친 사람들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 먼 북소리
[기행] 조금 미친 사람들. 카렐 차페크.
[기행]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빌 브라이슨.
[기행]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긴 여행을 앞두고 여행기를 찾아 읽는 건 본능적인 행위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빠르게 인생을 훑어 살 방법을 찾는 주마등 효과처럼 무의식이 손을 뻗어 긴 여행을 대비할 방도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고 글 좀 쓴다는 작가들이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걸 기록하는 방식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식적 행위이기도 하다. 여행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들이 여행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짧게는 20여 년 전 길게는 100여 년 전이다.(카렐 차페크의 스페인 여행 1920년대 후반, 빌 브라이슨 영국 여행 1994년~1995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 이탈리아 여행 1986년~1989년) 현재 영국의 도버 해협이 빌 브라이슨이 불평한 그 해협과 같다고 보기 어렵다. 정보가 필요했다면 여행 가이드북과 여행 유튜버를 참고했으리라. 그렇다고 '동방견문록'이나 '열하일기' 수준의 엄청난 발견과 통찰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가벼운 여행기를 찾아 읽기 시작한 건 내 안에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20년 전 류시화가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를 읽고 인도로 떠났을 때는 어떤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류시화가 기록한 인도는 이십 대 청년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는데,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인도 사회와 세속적이고 사기를 밥먹듯이 치며 때로는 악랄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도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삶과 세상의 모순을 소화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곳에서 진정한 '세계'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떠났다. 기대를 품고. 하지만 당연하게도 고작 두 달의 인도 여행에서 신비한 경험이나 엄청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짧고 너무 더웠다. 단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삶에 새기고 온 게 성과라면 성과다. 기차에서 뛰어내려 손목이 부러졌고 뭄바이의 한 병원에서 깁스를 한 채 남은 여행을 했다는 얘기를 해주면 누구나 즐거워했으니까.
그 후로도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때는 휴양으로, 때로는 회사 일로 세미나 참석 차 갔다가 남는 시간에 여행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 뚜렷한 목적이랄 건 없었고 그저 낯선 곳에 가서 얼마간 머무르는 게 다였다. 인도에 갔을 때처럼 신비나 판타지를 품을 일은 없었다. 안락한 숙소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그 지역에서 맛있다는 음식을 찾아 먹고 꼭 봐야 한다는 풍경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간의 피로를 안고 집에 돌아오면 현실이 육박해 오고, 지난 며칠은 아득한 과거가 되었다. 여행은 얼마간 의무적이고 시시한 것이 되었다. 재미없었다.
나와 달리 이 여행기의 저자들은 여행의 목적이 있다. 아니, 여행에는 목적이 없었을지 몰라도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책을 쓴다.
카렐 차페크는 1929년 스페인 정부의 공식적인 초청으로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펜(PEN) 클럽 대회'에 참석하였고,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 전역을 여행했다. 여행하면서 남긴 인상과 느낌을 가벼운 에세이로 기록하고 신문에도 연재하는데, 그 글을 묶은 게 바로 이 책 '조금 미친 사람들'이다. 당시 차페크는 체코뿐 아니라 유럽 내에서 슈퍼스타급 작가였다. 노벨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고 정치적 영향력도 상당했다. 특히 차페크의 가장 큰 업적(?)은 '로봇(robot)'이라는 말을 인류에게 남겼다는 점이다. 로봇(robot)은 1921년 차페크의 희곡 'R.U.R(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말은 체코어의 노동을 의미하는 단어 ‘로보타(robota)’에서 왔고, 형의 제안으로 차페크는 이 단어를 R.U.R에서 사용한다. 그런 거물 작가가 남긴 여행기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작가가 직접 펜으로 그린 그림도 재미있고 당시 스페인의 풍토와 사람들을 상상해 보는 맛이 있다. 하지만 글이 대체로 가벼운 스케치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작가가 이 여행을 통해 진짜로 뭘 느끼고 생각했는지 알기 어렵다. 솔직하지 않다고 할까, 알맹이가 없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마도 계속해서 읽힐 것이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은 미국인이면서 영국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저자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영국 전역을 마지막으로 여행하며 쓴 책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마지막 일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가의 시니컬한 유머 감각은 대단해서, 이 사람의 책을 읽다가 몇 번씩 웃음을 터트릴 정도다. 하지만 '발칙한 영국 산책'은 비아냥과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읽는 이에 따라서는(아니 상당히 높은 비율로, 대부분의 사람이) 이 글에서 영국을 향한 작가의 '애정'까지도 읽은 듯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애정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불평쟁이와 내내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영국을 여행하고 있다기보다는 영국의 호텔과 식당, 행정 시스템에 대한 투정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책을 덮을 뻔했다. 여행이 거창한 의미를 담을 이유야 없지만 여행지를 욕하는 게 주된 이유라면 차라리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마도 계속해서 읽힐 것이다.
'먼 북소리'는 하루키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약 3년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기록한 체류형 여행 에세이다. 삼십 대 후반, 작가로서 자리를 잡았지만 일본 사회의 번잡함 등 여러 가지에 싫증을 느낀 하루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먼 북소리'를 듣고 유럽으로 향한다. 그 3년 동안 하루키는 무려 2편의 장편, 무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와 '댄스 댄스 댄스'를 쓴다. 전성기를 맞아 창작욕에 불타는 소설가의 여행지에서의 일상은 상당히 단조롭다. 여행의 느낌이나 감상 역시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하루키는 자신이 보고 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풍경, 별 것 아닌 경험을 맛깔난 글로 바꿔낸다. 이탈리아의 엉터리 우편 시스템에 얽힌 경험담을 읽으며 이탈리아라는 나라와 그 나라의 사람들을 피부로 느낀다. 여행은 곤경에 처할 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 역시 분명히 알게 된다. 물론, 자신이 곤경에 처한다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겠지만. 살아가는 것이 곧 여행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혹은 그것을 알게 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마도 계속해서 읽힐 것이다.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삶의 어떤 순간은 떠올렸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 어느 골목이었다. 날은 흐렸고 4월이었는데 쌀쌀해서 몸에 냉기가 스며들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옆을 스쳐가거나 앞 뒤에서 걷고 있었다. 문득, 갑자기 엄청난 고독에 휩싸였다.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 '가다 보면 뭐가 나오지?' '나는 왜 살지?' '나는 뭐지?' 이런 존재의 물음 앞에 놓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냥 걷고 있었을 뿐인데. 거기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나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몸에 한기가 돋았는데 그 한기를 느끼고 있는 '몸'의 존재가 징그럽고 지겨웠다. 그러면서 이 몸을 떠날 수 없는 '나'라는 의식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뉴욕의 거대한 빌딩숲 안에서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공포에 가까운 고독으로 느껴졌던 것. 그 여행에서 나는 살아가는 게 곧 여행이라는, 너무도 뻔하고 진부한 문장 하나를 삶에 새겼다.
여행은 이런 순간을 갑자기 선사한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공간과 시간의 좌표 안에 놓아두고 멀찍이서 보게 한다. 그것만으로 여행을 할 이유는 충분하다. 특별한 목적은 없어도 상관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여행이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던 이유는 내가 여행에서 목적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역설을. 목적이 없는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대하면 실망하고, 실망하면 다음에는 더 기대하게 되는 법이다. 패키지여행일지라도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게 있다. 최악일지라도 몸소 체험하면 그건 내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찾아 헤매 다니지 않던가. 어딘가를 헤매 다닌 끝에 얻은 내 이야기만큼 값진 게 없다. 이 너무도 뻔하고 진부한 문장 하나를 새기기 위해 나는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도 날 초청한 적 없고, 이번 여행이 마지막도 아니고, 먼 북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내가 쓰는 여행기는 아마도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