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My Arms

2026.01.14.

by 이이름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사원들이 그저 그런 돌들의 무덤처럼 보일 때쯤 위험을 무릅쓰고 사원의 높은 곳으로 오른다. 오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르는 중에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경사가 무척 심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몰랐던 공포가 몸을 얼어붙게 한다. 바닥이 잡아끄는 것처럼 아찔하다. 내려올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절반 이상 올라온 이상 끝까지 오른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 붙잡을 것은 하나도 없다. 불안한 몸은 뒤로 젖혀지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개를 들면 눈앞에 푸른 숲과 희부연 들판이 펼쳐져 있고 거대한 돌로 지은 사원의 지붕이 보인다.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아도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낯설지만 이 풍경을 언젠가 봤던 것도 같다. 꼭 지금의 생이 아닐지라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Billy Joel의 <And So It Goes>를 튼다. 주변에서 들리던 외국어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피아노의 화음이 탑처럼 쌓이기 시작한다. 나는 거기 놓인 계단을 밟고 마음속 방으로 조용히 돌아간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혼자뿐이었고 세상은 시끌벅적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악이 절정으로 향할수록 처량한 기분이 된다. ‘So I will share this room with you 그러니 내 마음속의 이 방을 당신과 공유할게요 And you can have this heart to break 내 마음을 가져가서 무너뜨려도 좋아요’ 사실 이런 마음이었던 걸 이곳에서는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데 아래가 까마득해서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누군가 붙잡아 주었으면, 싶다.



고요히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덮이는 날에 연인과 함께 공원으로 간다. 그런 날에는 연인과 어딜 가든 좋지만 나무가 많고 평지가 넓게 펼쳐진 공원이면 더 좋다. 잔디밭 위에는 고양이의 발자국이 남아 있고, 까치는 나뭇가지를 잎에 물고 눈 내리는 하늘을 가로지른다. 모두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나리는 눈을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모자를 쓰지 않으면 머리가 금세 젖는다. 목도리로 연인의 목을 단단히 감싸준 뒤 팔짱을 끼고 걷는다. 언 호수 위로 눈이 쌓인다. 어딘가에 있는 비밀의 문을 열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는 이 눈이 그치기 전에 슬쩍 그 문을 통해 우리가 온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연인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가진 게 없다. 좋은 시를 선물하고 싶지만 시집을 두고 왔다. 외울 줄 아는 시가 없는 나는 갑자기 무척 가난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연인의 곱은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숨을 불어넣는다. 줄 수 있는 건 이 온기뿐이지 않은가. 나는 노래를 만들 줄도 모른다. 하지만 노래를 틀 수는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어폰을 한쪽씩 귀에 끼우고 Nick Cave & The Bad Seeds의 <Into my arms>를 튼다. 세상의 낭만적인 노래들이 내 연인의 마음을 빼앗으려 들려오지만, 나는 이 노래를 틀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And if He felt He had to direct you, 만약 신께서 당신을 어디론가 인도해야만 한다면 Then direct you into my arms, 그저 내 품 안으로 인도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Into my arms, O Lord 오 주여’ 노래를 부르는 이와 마찬가지로 무신론자인 나는, 믿지 않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듣는다. 어깨에 소복이 쌓이는 하얀 눈이 왠지 누군가의 대답인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꽉 쥔 채 비밀의 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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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오름에 오르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함께 간 사람이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혼자가 되는 것도 좋다.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평소에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제주도의 오름이면 마침맞다. 제주도의 어느 오름이든 좋다. 날이 조금 흐리면 더 좋다.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구름 사이로 한라산이 보인다. 안개의 냄새가 코를 채우고 습기가 폐에 가득 찬다.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여기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술을 마시기에는 너무 밝다. 사람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시선을 멀리 둔다. Antony and the Johnsons의 <Hope there’s someone>을 튼다. 새의 지저귐이나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가 피아노 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탁 트인 곳에 그/그녀의 목소리와 피아노로 둘러싸인 벽이 생긴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광대하고 나는 한없이 작다는 것을 불현듯 알아챈다. 이상하게도 그토록 넓은 곳에 갇혀버린 것 같은 느낌. 삶과 죽음의 얇은 경계에 서서. 세상에 완전히 혼자가 된 듯한 고독함이 육박한다. ‘Hope there's someone 누군가 있기를 바라요 Who'll take care of me 나를 돌봐줄 누군가가 When I die, will I go? 내가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울부짖는 목소리에 영혼까지 떨리는 기분. 세상은 잠시 멈춰있는 것 같다. 이어폰을 뺀다. 구름은 흐르고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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