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1.
하루는 거리를 걷다가 어떤 건물 앞에서 젊은 남자 두 명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많게 봐도 이십 대 중반 정도, 적게 보면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음직한 앳된 얼굴이었는데, 요즘이 어디 얼굴만 보고 나이를 알 수 있는 시대인가? 때문에 함부로 그들의 나이를 짐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대도 정말 앳되어 보이긴 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젊은 남자들이야 부지기수인데 그 두 사람을 본 순간이 특별히 기억에 남은 건 그들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온갖 고민을 몽땅 짊어진 얼굴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길게 뱉어내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모습만 놓고 보면 고민은 고래만큼 클 것 같았고 그 수는 냇가의 조약돌만큼 많은 게 확실했다. 그런데 그 고민의 무게감과는 별개로 그것들을 얼마간 초월하고 있는 듯한 염세적이랄까, 허무주의적이랄까 싶은, 반항기 어린 표정이 얼핏 그들의 입가에 떠올라 있는 것을 나는 발견했던 것이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일 리는 없었다. 그 이목구비와 생김새는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러나 곧장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들의 생김새가 아니고 얼굴에 떠올라 있는 젊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젊음의 표정은 아주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그 젊은이들은 다름 아닌 스무 살의 나였다.
내 표정을 내가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들의 수심 가득하면서도 패배자를 닮은 허탈한 얼굴이 내 젊은 날의 얼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 건 순전히 그 당시 내가 보던 내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선명한 불안함과 알 수 없는 조급함을 지닌 채로, 그것들을 불편하게 안고서도 시간만은 남아돌도록 충분했던 그때. 담배 연기를 하늘로 길게 뱉곤 하던 우리의 스무 살 시절.
‘저 친구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어떤 고민을 저렇게 깊게, 심각하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얼굴 측면에 구름 모양으로 생각의 키워드를 써넣은 장난스러운 뇌 구조 그림이 떠올랐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키워드는 연애나 학점, 아니면 군대일까. 생각나는 것들은 뻔하고 식상한 것들뿐이었다. 나는 저들을 철저히 오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방금 점심으로 먹은 제육볶음에서 잡내가 났다는 얘기를 하며 얼굴을 찌푸렸던 것일 수도 있잖은가. 저기 지나가는 조그만 남자(바로 나)가 자신들을 쳐다보는 걸 의식하며 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든 나는 복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치한 감이 있는 그들의 얼굴을 일별하는 순간에 문득 쓸쓸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 감정이 서서히 나를 휘감는 게 느껴졌고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의 나도 분명히 저들처럼 친구들과 길가에 모여서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길고 지루한 인생을 어찌할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진지하지만 장난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것이다. 그것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데 이미 오래전 일이 되었다. 담배를 문 그의 눈빛이 나를 깊게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는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
1996년에 발표된 언니네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에는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다. 인디음악만 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밴드는 언니네이발관 1집 앨범의 곡들을 카피하곤 했다. ‘푸훗’이나 ‘동경’ 같은 특히나 쉬운 곡들 위주였지만 합주는 언제나 경쾌하고 기분 좋았다. 간단하면서도 상큼한 기타 멜로디에 얹힌 자조적이고 우울한 가사의 아이러니가 1집 앨범의 매력이다. 개중에서 특히 우울한 곡은 ‘생일 기분’이다.
오늘은 나의 스무 번째 생일인데 참 이상한 건 멀쩡하던 기분이
왜 이런 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걸까
난 정말 이런 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오늘은 나의 스무 번째 생일이라 친구들과 함께 그럭저럭 저녁시간
언제나처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별 이유도 없이 왜 이리 허전할까
나 이런 기분 정말 싫어 너희들의 축하에도 이런 기분 정말 싫어
(후략)
화자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십 대 때는 스무 살이 하나의 고비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스스로 몸에 새긴 아프고 예민한 상처는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소설이나 ‘바이준(1998)’ 같은 영화로 틴에이저들에게 찾아왔다. 제대로 된 성인식을 치르지 못하고 어른이 된 보통 아이들은 스무 살 생일을 맞아 이유도 모른 채 우울해 어쩔 줄 모르는데 이 노래가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나에겐 소원 하나 있어 좀 물어봐 줘 죽이고 싶은 누가 있어 넌 모를 거야
어쩌면 그래 나를 보는 저 눈을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중략)
넌 바로 나였어
넌 바로 나였어
넌 바로 나였어
넌 바로 나였어
미움의 제국이란 나라 안에서는 이 사람도 싫고 저것도 싫어
어쩌면 그래 나를 보는 저 사람들도 내가 싫어하는 것처럼
날 싫어할까 날 미워할까 그래도 난 상관없어
(후략)
같은 앨범에 실린 ‘미움의 제국’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자기혐오와 대상 없는 증오를 토로한다. 나는 이 노래의 화자도 아마 스무 살일 거라고 추측한다. 이게 바로 스무 살의 감성이기 때문이다. 불안이 불만으로 표출된다. 자신을 학대하고 타인을 저주한다. 속으로 애정을 갈구하면서 그까짓 것 상관없다는 듯 태연한 체한다. 지나온 길은 더럽고 앞에 놓인 길은 뿌옇고 흐릿하다.
스무 살 이후에도 언니네이발관 1집 앨범은 많이 들었다. 요즘에도 갑자기 학창 시절에 듣던 노래들이 생각나면 찾아 듣곤 한다. 알고리즘을 타고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 보면 두세 시간 금방이다. 그러나 추억에 젖을 뿐 진정으로 감동하는 일은 없다. 그러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생일 기분’을 들어도 우울하지 않고, ‘미움의 제국’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그런 시기는 계속되지 않는 것이다. 인파 속에서 사람들에게 밀려 한 걸음씩 어딘가로 움직이듯이,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다 보면 어느새 출구에 가까워지듯이, 우리는 어떻게든 그 시기를 지나간다. 그리고는 문득문득 그때를 떠올리며 쓸쓸함을 느낀다.
분노와 자포자기가 적절히 섞인,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살짝 비웃는 듯 올라간 입꼬리. 저 남자의 얼굴이 스무 살의 얼굴이다. 그의 눈빛이 묻고 있었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나는 나의 뇌 구조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 안에는 줄어드는 잔고에 대한 불안, 수익률 좋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정보, 현실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부족한 돈과 용기,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는 답답함,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이지 쓰레기 같은 것들로 가득.
문득 부끄러워졌다. 치욕스러울 만큼 창피했다.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재빠르게 걸으며 되뇌었다.
넌 바로 나다. 넌 바로 나다. 난 바로 너다.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