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4.
S는 좋은 사람이었다. 업무에 있어서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다. 적어도 자기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팀원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업무 외적으로도 그녀의 성품은 나무랄 데 없었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호응하는 태도를 지녔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노력을 하는 때도 있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내가 처음 입사했던 15년 전에 우리는 같은 본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부서가 달라서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할 일은 없었다.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여러 번의 부침을 겪으며 소속 부서가 바뀌거나 일하는 층이 달라지기도 했다. 사내 메신저를 통해 이런저런 마음속 얘기를 나누던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한참 별 대화 없이 지내던 시기도 있었다. 그 사이에 그녀는 결혼과 출산을 겪었고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뒤로는 모종의 사유로 내가 속한 부서로 편입하게 됐다. 그렇게 되고 보니 같은 부서 소속이 된 최근 1,2년은 조금 더 친하게 되어서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늘었다.
현역으로 입학한 대학을 한 번의 휴학 없이 다니다가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한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어렸지만 입사는 2년 선배였다. 선배 몇몇은 대학을 갓 졸업해 어린 학생으로만 보였던 S가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별 뜻 없이 하며 세월의 흐름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S는 네 살 난 아들 이야기를 할 때면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목소리 톤이 변했다. 그러면서 꽤 자주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남편이 아들 같다며, 애를 둘 키우는 것처럼 힘들다는 푸념을 하는 거였다. 물론 그 불만의 말에는 기대와 애정이 담겨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주로 아들이 등장하는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와 주말에 남편이 한 철없는 행동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것을 듣는 것이 나는 싫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 처해있는 상황이 나와는 많이 달라서 완벽히 공감하긴 어려웠지만 얼마든지 끄덕이며 들어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나 생각을 알게 되는 때도 있었다. 교육열 높은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S는 심한 압박감 속에 입시 준비를 했고, 많은 사교육을 받았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톱클래스의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백 없이 취업해 안정적인 삶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경제적 안정이 깨질까 두려워하는 기색을 종종 드러냈다. 일이 꼬였을 때 심하게 자신을 자책하거나 심지어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던 S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강한 채찍을 그녀는 들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보았던 쾌활함과 적극성의 이면에 거대하고 오래된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랬던 S는 더 이상 극단적으로 자책하거나 심한 우울에 빠지는 일이 없는 듯했다. 아이를 낳은 후로. 엄마가 된 후로. S는 그런 면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S는 나와 결이 다르지만 나는 그녀를 항상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돈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인간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많이 달랐지만, 내가 보는 그 사람의 좋은 면이 가려질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날, 몇 명의 동료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주요 대선후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특정 후보에게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혐오에 가까울 만큼 부정적이었다. 그 후보는 오랜 시간 심각한 비리와 범죄 혐의에 시달리며 악마화된 사람이었다. 그 후보를 향한 검찰과 보수 진영, 언론의 협공은 너무 심각해 보였고, 지지자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불쌍할 지경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 사람을 제거하지 못해 혈안이 된 거대한 권력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해온 일과 걸어온 길, 공격받는 문제를 더 관심 갖고 찾아봤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에게 남은 질문은 ‘도대체 왜 저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하는가?’였다. 그런 나에게 S는 “그 사람이 너무 너무 너무 싫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를 둘러싼 공기는 싸늘하게 변했다. 순식간에 몸을 감싸는 이질감과 생경함. 갑자기 S가 너무나도 낯설었다.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웠다.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인이 진심으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해줬을 때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이 몸이 굳던 일. 여행에서 만난 선한 외국인 친구가 어떤 나라에 핵공격을 퍼부어도 문제없다고 했을 때 돋았던 소름. 이재명이 당선되면 앞으로 전라도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며, 전라도 음식을 파는 식당에도 가지 않겠다고 소리치던 옆집 아주머니. 이런 순간에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굳건한 벽이 세워지고 있었다. 나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눈코입이 있다는 것만 빼고는 같은 점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낯설어지는 순간.
그런 순간에 슬퍼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소름 끼칠 만큼 낯설고 무서워 보이는 순간이 있겠구나.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말해선 안 되는구나. 피부에서 오돌토돌하게 돋아나는 한계의 증거들.
S가 너무 너무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내가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점심을 먹으며 넌지시 그녀의 심정을 들어볼 수도 있었을 거다. 완벽히 공감이 되지는 않아도 그녀가 가진 공포를 인정하고 함께 고개를 끄덕거려 줄 수도 있다. 어쩌면 설득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네가 무서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러면서 나는 S가 가진 공포가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주제넘게.
그러나 이제 나는 S와 일상적으로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일은 아마 없을 거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의 아이가 커가는 에피소드와 남편에 대한 애정 어린 험담을 즐겁게 들을 것이다. 둘째의 순산을 기원하고 회사에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말해줄 거다. 나는 S를 좋아하니까. S의 건강한 삶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벽은 항상 보이지는 않아서, 가끔, 정말 가끔씩, 우리를 이상한 세계로 데리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