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삽질 Jul 05. 2018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금기의 보물들


선전의 나라, 북한 미술전


경직된 표정으로 로봇처럼 행진하는 군인들의 열병식. 총과 무기, 거대한 나팔수과 힘줄이 불끈불끈 튀어나온 팔뚝이 그려진 선전화를 들고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북한미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사실이다. 북한은 선전(Propaganda)의 나라다.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포스터를 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체제의 특성상 ‘선전’이 발달한 북한미술은 풍경에도 구호가 그려져 있지 않을까.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네덜란드 미술재단 스프링타임 아트(Springtime Art)가 개최한 ‘유럽에서 들려주는 북한 미술전, 숨겨진 보물들이 드러나다’를 찾았다.


북한미술전에는 주로 북한 개성지역에서 수집한 풍경화, 인물화, 산수화 등 북한 화가 70명의 작품 15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임렬, 공천권, 최하택, 탁효연, 신철웅, 김일수 등 국제 전시회에서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는 북한 최고 작가의 작품이다.


‘대동강에 핀 꽃이 곱디 고와라’는 시구가 북한사회주의 체체를 미화했다며 ‘종북’으로 몰리는 이 시대에 북한 미술작품을 두고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적당히 곱네’ ‘빨간 것은 불순하구만’ ‘이 그림 속에 공산주의 사상이 담겨있을 꺼야’ 이렇게 색안경을 껴야하나 싶다. 자기검열의 시대에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 갔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보드라운 북한 미술 작품


그런데 이럴 수가. 북한미술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딱딱한 껍질을 깨고 벌리면 보드라운 속살이 드러나듯이 의외였다.


터치는 봄. 2007.7 정화


<터치는 봄. 2007.7 정화>은 살구꽃을 소재로 봄의 절정을 표현했다. 화려함의 극치로 봄이 그대로 그림에 번지는 느낌이 잘 살아있다. 


벚꽃만개. 2006.5 김안수


<벚꽃만개. 2006.5 김안수>는 활짝 핀 벚꽃을 빨려 들어갈 것처럼 압도적으로 묘사했다. 눈을 감으면 볼에 벚꽃이 흩날리는 득하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북한 미술은 사실적인 묘사와 화려한 색체가 특징이다. 생소한 몰골기법은 단 한 번의 붓질로 대상의 성격과 형태, 질감을 나타내는 기법이라고 한다. 몰골기법은 다른 회화기법들과는 달리 실수를 고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만큼 섬세하고 세밀한 작업인 셈이다.


탁효연은 젊은 작가로 북한 유화의 대표주자다. 1990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해 만수대창작사의 서양화가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회 입상하는 등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차세대 북한 대표 미술가다.


평양지하철 1998 탁효연


그가 1998년 그린 평양지하철 그림이다. 거친 유화질감 붓 터치로 흐릿해 보이지만 생동감 있는 살아있는 그림이다. 화려한 조명과 아치형의 천장으로 북한 문명의 상징인 지하철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묘사했다. 


평양의 거리 2007 탁효연


2007년에 그린 평양의 거리도 비슷한 느낌이다. 비가 그친 후에 번진 화려한 야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흔들리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노을 지는 저녁풍경이 아름답다. 한적하면서 도시화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긁어내기(스크레치) 기법으로 가을날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정주철 화가의 그림 역시 매우 독특하다. 낙엽 밟는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은 그런 그림이다. 겨울날 백양나무에 쌓인 눈과 강렬한 석양이 눈부시다. 스크레치 기법으로 더욱 실감나게 사실성을 부여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미술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김찬동 미술회관팀장의 <북한 문화예술의 흐름>에 보면 북한의 미술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높일 수 있다.


오늘의 북한 미술은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하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기초하여 사회주의적 내용을 철저히 민족적 형식에 담아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생활의 사실성에 민족 정서의 복합이라는 양면을 충족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중략)


북한 조선화는 동양화의 맥을 이은 것이지만 채색과 서양화적 기법을 혼합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족적 형식의 전형을 획득한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장 탁월하게 구현해 낸 독자적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모든 북한 미술의 중핵이 되고 있다. 사상성과 현실,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세 개의 요소를 완벽하게 이룩한 미술장르를 조선화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설을 찾아보다보니 좀 더 북한미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 북한 미술이라는 느낌이 조금 더 살아있는 그림은 해맑게 웃고 있는 탄부와 목가적 느낌이 물신 풍기는 염소 치는 여성이 그림이다. 모두 2000년대 후반에 그린 그림이다. 경제적 여유는 없더라도 노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의 모습이 그림에 반영된 듯하다. 



정치색이 철저히 배제된 북한미술. 정치색은 없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 강토를 그린 북한미술가들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삼천리 금수강산의 절반인 북한의 풍경을 언제쯤 직접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감추어진 세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지만 분단이라는 현실에 다시 눈을 뜬다. 예술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휴전선을 넘어 지금 우리나라에 와있는 북한의 미술작품이 특별하게 보인다. 아마 예술이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민족혼을 깨우기 위한 외침, 이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