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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프라하의 겨울로

프라하, 카를교를 중심에 둔 도시는 온통 붉은 지붕과 그 사이사이 뾰족한 첨탑으로 뒤덮여 있다. 젊었을 때 프라하를 방문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히틀러가 은퇴 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전쟁 중에도 이곳만은 폭격을 못 하게 했을 정도이니 그 아름다움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프라하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건출물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도시다. 


프라하는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에는 식민지의 중심도시였고, 1989년 벨벳혁명이 일어나 공산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사회주의 국가였으므로 상업자본주의의 흔적도 거의 없다. 물론 요즘에는 상당히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을 것이다. 그 프라하로 떠난다.


카를교와 프라하성


동유럽으로 출발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42분이다. Aeroflot 항공기 29G 좌석에 앉았다.


날씨가 화창해 기분이 매우 좋다. 청명한 날씨가 지난 추운 겨울처럼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피게한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계획했던 동유럽 여행의 시작이다. 아무래도 전에 이용해봐서 친숙한 러시아 항공이라 왠지 푸근하다. 익숙한 러시아 말등이 흘러 나온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름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이 여유를 즐겨보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공존한다. 다들 새해에 새로운 사업을 위해 바쁘게 살고 있겠지. 이번 여행을 통해 날 돌아보며, 미래도 그려보고, 평소 관심있었던 미술과 음악을 마음 껏 향유해보자.


이륙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30분까지 착석인데 러시아 항공이라 그런지 원래 그런지 1시가 다되도록 아직 이륙을 안 한다. 러시아가 원래 잘 늦장을 부린다. 처음엔 실감이 안났는데 비행기에 타니 설렌다. 기대가 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찾아가보자. 


떨리는 Aeroflot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인다. 사실 비행기가 굉장히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고 시설도 괜찮아서 안심이 된다.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서, 내심 불안함 맘도 있었는데 막상 이륙하려하니 기대감이 잔뜩 부푼다. 밖으로 비행기 날개가 보인다. 인류가 하늘을 날고자 하는 태초의 꿈을 이제 마음껏 향휴하는 지금, 선대의 수 많은 노력에 잠시 감사를 드린다.


비행기 승무원들의 옷이 멋있다. 특히 가슴의 Aeroflot의 문양이 낫과 망치다. 과거 소련시절부터 있었던 항공사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 영광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둥긋 낫 속에 굳은 망치, 그들이 건설한 인류의 새 역사를 언젠가 그들도 다시 찾을 것이다. 이번에 동유럽을 가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는 좌절된 사회주의의 참상,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중세건축과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클림트의 그림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말이다. 


비행기가 서서히 굴러간다. 갑자기 묵직한 충격이 오면서 날아오를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언제나 그 특유한 설렘과 긴장감이 있다. 비행기가 달리다 오~ 떴다. 드디어 이륙이다. 귀가 멍멍하다. 인천의 섬들이 보인다. 이 불안함.. 혹시 폭발하는거 아니야라는 불안감과 귀를 조여오는 기압차이가 더해간다. 하지만 푸른바다가 창밖으로 보인다. 아름답다. 창공을 나는 비행기, 차츰 불안감이 가시고 창밖을 계속 본다. 모스크바까지는 9시간이 걸린다. 점심과 저녁식사를 제공한다는 기내방송이 나온다. 기내식이 별로라는 인터넷의 글이 있었지만 얼마나 맛있는 식사가 나올까 한번 기대해본다. 기내방송은 러시아어와 영어, 한국어로 나오는데 영어나 한국어나 다 발음이 이상해 못알아듣기는 매한가지다. 


카레이스키, 고려인이 사는 곳

기내에서 만난 사람들


험준한 산맥위를 날고 있다. 출발한지 3시간 정도 지났으니 9시간 비행의 1/3 온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 대륙의 벌판 어딘가, 바이칼 호 근처의 산맥들을 넘고 있는 건가? 사진을 보니 몽골위를 지난 듯 하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은 독일에서 임학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여자 분이다. 한눈에도 여행객은 아닌듯 보였지만 뭔가 뚝심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모스크바에서 10시간 넘게 기다려서 독일로 가야 한다니 정말 피곤하겠다.


또 한 명의 승객은 우연히 공항 발권대기줄에서 본 사할린 강제 이주 동포이다. 이분의 아버지가 일제 징용 때 광부로 사할린 섬으로 끌려와 거기서 사셨다고 한다. 이웃 할머니 같이 푸근한 그분도 자식들이 모스크바에서 공부해 모스크바에서 살며 한국, 러시아 모두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록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까레이스키들의 아픔이 베어있는 인생사였다. 나라가 힘이 없고 유린 당하면 국민들의 삶은 황폐화되고 평범하고 흔한 행복도 누릴 수 없게 되는 현실이 이 공간에서 가슴 아프게 가르쳐준다. 


시베리아, 광활한 대륙, 우랄산맥의 어디쯤인가를 날고 있을까? 창밖으로 눈 덮인 산맥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면 이 수첩이 얼마 안가겠다 생각이 들어 다시 오페라 해설책을 보며 오페라의 세계에 빠져야겠다. 비행기에 나오는 지도를 보니 울란바토르, 아직도 몽골위를 지나고 있다. 생각보다 얼마오지 않았다. 이제 몽골을 지나 러시아로 들어섰다. 


모스크바에서 환승


장기간 비행은 상당히 힘들다. 벌써 6시간 째 비행기를 타고 있다. 안그래도 감기 때문에 얼굴의 왼쪽이 다 아픈 상태인데 가만히 6시간 동안 책, 지도를 보니 눈도 아프고 머리도 띵하다. 가이드북을 보니 프라하에는 볼 곳이 정말 많다. 언제 다 볼까 싶을 정도로 서둘러 봐야지 볼수 있겠다. 이제 우랄산맥 쯤 왔다는 비행기 안내 그림이 나온다. 남쪽으로 보면 인도를 지나서 파키스탄 쯤 되는 경도 같다.


식사를 마치고 심해지는 치통을 참으며 가져 온 프라하 여행 안내서를 마져 다 독파했다. 눈이 빠질 지경이다. 덕택에 여행코스와 경로를 거의 짰으니 다행이다. 어느 덧 착륙할 때가 되었다. 15분 후면 착륙이다. 언젠가 한 번 쯤 오고 싶은 모스크바이다. 나갈 수는 없지만 러시아 특유의 공항에서 불친절은 만끽할 수 있겠다. 어서 육지를 밟고 싶다.


구름 바다 위를 나는 비행기 창밖으로 해가 비춘다. 푹신푹신한 구름에 발을 놓으면 뜰 것 같은 기분이다. 이 구름을 뚫고 내려가면 모스크바가 보이려나. 강렬한 햇볕에 눈이 부시지만 아름답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며 내려간다. 창밖에는 뿌연 구름이 보이고 생각보다 금방 지나갈줄 알았던 구름이 금방 걷히지 않는다. 드이어 눈 덮힌 산야가 보인다. 모스크바 주변은 완전히 눈에 파묻혀있다. 모든 건물이 눈에 덮혀 하얀색이다. 비행기가 부드럽게 착륙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다 같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나도 안도감에 같이 박수를 쳤다.


러시아 폭탄테러 여파 때문인지 보안검색이 강화되었다. 원래는 안하는 여권, 티켓 확인, 짐검사을 일일이 하느라 한참을 허비했다. 프라하 가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어보인다. 옆의 친근한 러시아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지만 영어를 못하신다고 해 전혀 대화가 안되 금방 그만 하신다. 곧 있으면 탑승이다. 생각보다 환승시간이 금방지나간다. 


프라하에 도착


프라하행 비행기에 올랐다. 타자마자 밀려오는 서양인 특유의 역한 냄새가 적응하기 힘들다. 벌써 3번 째 기내식이 나온다. 한참 자다가 깨어나 기내식을 먹었다. 러시아식 식단, 호밀빵, 버터, 쨈, 닭고기 샐러드, 케이크 나름 괜찮은 식사였다. 시차 적응이 힘들다. 야행성 생활을 즐겨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요즘 처럼 규칙적으로 자는 나에겐 만만치 않은 잠과의 싸움이 예상된다. 한국시각 31일 새벽 3시 30분, 프라하에 도착했다.  

헤프닝은 공항에서 일어났다. 짐을 따로 수화물에 맡기지 않았던 나는 수화물 통과하지 않고 헤메다가 다른 게이트 쪽으로 가버렸다. 출국수속을 안 밟은 것이다. 다들 다른 버스를 타고 떠나고 혼자 한 15분 버스를 기다리자 택시기사인 듯한 사람이 호객행위를 한다. 하우 머취 하니 너무 비싸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니 빨간 119번 버스가 온다. 


프라하 지하철


체코의 밤거리는 공항근처라서 그런지 삭막해 보였다. 지나는 길에 주유소, 페라리 전시장, KFC가 보인다. 조용한 도시의 외곽 느낌.. 창밖 풍경에 넋을 놓다가 사람들이 다내리는 순간 종점에 다다른 것을 깨닫고 또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나가서 신혼부부인듯한 한국인 커플에게 말을 물었더니 시큰둥하다. 나름 한국사람이라 반가워서 그랬는데 은근히 경계하나 보다. 타지의 경계감이 사람사이에 벽을 만들구나.


지하철은 상당히 아래 쪽에 있고 열심히 내려가니 또 빨간 나름 귀여운 체코 지하철이 나온다. 마침 지하철이 왔는데 어느방향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최종 목적지를 보고 마지막에 쑥 들어갔다. 제 버릇 남 못준다더니 서울에서 처럼 똑같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 정거장 후 내려서 올라가보니 테스코가 보였다. 한국에서도 보는 테스코가 여기도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초국적 자본은 참 어디를 가나 있구나.


프라하의 봄


숙소는 오른쪽을 돌아 5분정도 걸어가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3분민박 초인종을 누르니 주인 아주머니는 자고 있고 다른 투숙객이 나온다. 열쇠를 겨우 열어 들어가 진짜 2인용 허름한 나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까지 올라왔다. 영화에서 보던 그런 엘리베이터 느낌이다. 이게 올라가는게 신기하다. 도미토리 룸이 꽉차 운 좋게 3인실을 혼자 독차지 하게됐다. 허름하기는 하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다. 


누우니 책에서 본 프라하의 봄이 생각난다, 대표적으로 체코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사회주의에서 겪은 수정주의에 대한 혼란이 나중에 미국식 민주주의 투쟁으로 포장되었던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이다. 1956년 소련 내에서 흐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난 후에 스탈린주의 정권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수정주의자 두프체크가 펼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본 프라하의 봄. 과연 나중에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사회주의가 건설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동구권 사회주의는 무너졌다. 하지만 중국, 북한, 쿠바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는 여전히 건재하다. 쉽게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자본주의의 폐해, 좌절된 사회주의의 현장. 프라하에서 엿볼 수 있을까.


유럽에 흔한 바닥에 물안빠지는 샤워장에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니 피곤이 좀 풀린다. 이렇게 프라하의 첫날밤은 다행히 무사히 지나갔다.


프라하의 봄(소련 탱크의 투입)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바츨라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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