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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n 21. 2018

블라디보스톡, 그리움이 남는 그곳

2003.08.07까지 기록들

풍물굿에 대한 고민


러시아 아이들 장구 가르치면서 호흡과 폼새 교정을 해주었다. 앞으로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풍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들은 김덕수 사물놀이를 알고 배운 듯 했다. 같이 어울어짐이 아닌 공연. 김덕수가 해외에 우리 전통문화를 알린 업적을 무시하지는 못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풍물의 마을굿 적인 의미가 많이 아니 거의 없어진 듯 했다. 


사물놀이를 가르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러시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것, 새삼 내가 풍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얻어가야 할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민요를 녹음 하러 찾아왔다. 평소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불러주었다. 민요가사가 생각나는 대로 한번 써봐야겠다. 


공동체의 나라

 

러시아 A팀 부단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는 친구가 되면 소유 개념이 없다. 러시아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계속 같은 반이므로 친구를 정말 소중히 생각한다. 우리보다 덜 분화된 공동체적 나라다. 러시아는 법은 엄하지만 문화와 맞지 않아 부패가 아주 심한 곳이다. 그리고 러시아 나쁜 것 3가지는 도로·자동차·남자, 러시아 좋은 것 3가지는 자연·문화·여자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답사를 고려인계 이곳 한국어 선생의 도움으로 가게 되었다. 언덕을 따라 쭉 올라가니 도시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 나타났다. 이곳은 택시의 개념이 없다. 그냥 손 흔들면 가격을 협상하고 탄다. 시장에서 학교까지 50루불 이었다. 


러시아 서커스를 보러갔다. 서커스의 느낌은 왠지 슬픈. 이것이 러시아 정서인가. 단지 음악이 슬픈 것이었나. 그 와중에서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러시아. 아니 이곳의 민족색을 조금 알게 되었다. 


축제의 날


오늘 음식문화축제, 설장구 공연이 있는 날인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다들 음식준비에 바끄고 나는 공연 준비에 정신이 없다. 오늘 공연이 기대된다. 오후 1시 20분이 되자 각 방송사에서 카메라들이 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몇 방송사와 인터뷰하고 사진 찍고 또 러시아 친구들에게 한복을 입혀주었다. 나도 치복으로 갈아입고 열심히 준비한 고깔을 쓰로 준비를 마쳤다. 2시가 조금 지나서 공연을 시작했다. 중간에 어제 연습한 설장구를 조금 넣어서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카메라 앞이라고 떨어서 실수했지만 어떻게 해서 끝났다. 


인사굿을 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 완벽하진 못했지만 나름 만족했다. 고깔을 벗을 때 시원함은 참 좋다. 쑥스럽지만 홀가분한 기분.. 그리고 같이 있어서 기쁨으로 남는 하루다. 


여유로운 이 기분 정말 좋다. 설장구를 끝내고 창가에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행복함을 느낀다. 나중에 보니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신문에 단신으로 나왔다. 우스운 일이지만 사서 가져가야겠다. 


내일은 한국에서 온 VJ특공대에서 촬영을 한단다. 덕분에 음식을 다시 해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난 반대했지만 모두들 하자는 분위기여서 그냥 있었다. 생각을 바꾸면 더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준비해서 잘하면 더 좋을 것이다. 


찌뿌둥한 날씨에서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한다. 어제 맥주와 보드카로 기분 좋게 취하고 자영이 누나가 취해서 오랜만에 배꼽 잡고 웃었다. 간단히 회의가 끝나고 이른바 보드카팀이 뭉쳤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우리 방 냉장고의 맥주를 빼왔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각각 5병씩 맥주를 먹어서 간장 맥주 밖에 안남아 결국 보드카를 가지고 내려왔다. 울고 노래 부르고 난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만취한 동료의 이빨도 닦아주고 주물러 준 덕택에 새벽 5시에 잤다. 이렇게 웃어본 적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웃을 수 있는 추억 생겼다. 


VJ 특공대 블라디보스톡 통신 '파워 오브 코리아' (영상 39분 부터)

http://www.kbs.co.kr/2tv/sisa/vj/view/past/2312220_93033.html


니콜라이의 집


꼴랴의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선물할 부채를 챙기고, 카메라까지 잘 챙겨서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트롤리(아주 오래되고 느린 도시전철)를 타고 가기로 했지만 그냥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어떤 곳일까? 할머니, 어머니, 누나, 매형, 조카와 같이 산다는 말에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버스에서 내려 꼴랴가 약간의 바나나, 사과, 케익을 사서 같이 들어갔다. 


우리나라 주공아파트 같은 5층 아파트였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여니 그리 크지는 않지만 너무 예쁜 집이 보였다. 꼴랴 누나와 매형의 방, 거실 겸 꼴랴의 방, 할머니 어머니의 방이 있었다. 


꼴랴의 방에는 벽에 카펫이 걸려 있고 거기에는 메달과 표창장이 걸려있었다. 가서 또 한 번 놀란 사실은 꼴랴가 98,99,00 블라디보스토크 킥복싱 챔피언이었다. 운동을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 일 줄이야. 그리고 고등학교 수석 졸업 표창장이 걸려 있었다. 뜨아. 


할머니의 안내로 방으로 갔다. 거기에는 오래된 재봉틀과 의자, 그리고 베란다에는 레몬 나무와 여러 가지 민트들이 있었다. 문지르면 더 향이 나는 민트를 직접 키우고 계셨다. 손을 씻고 다시 방으로 가자 여러 가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토마토, 오이, 피망, 마요네즈 오일 샐러드, 훈제 연어와 다른 고기들, 약간 비린 고등어 같은 생선, 고사리 무침, 감자와 고기요리, 만두 비슷한 러시아 전통요리, 여러 가지 야채 약간의 빵과 와인이 있었다. 정말 눈이 놀랄 정도의 푸짐한 식사였다. 


러시아와 한국을 위해 건배하면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해 배가 너무 부르게 먹었다. 할머니께서 목요일 날 러시아에 손님으로 초대되면 모두 한 가족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되고 식사는 계속되었다. 


사진을 찍고 선물을 줬다. 아냐라는 5살짜리 조카가 처음에는 수줍어서 숨어 있다가 그 때부터 친해졌다. 꼬마가 큰 버섯, 인형, 머리띠, 동화책을 주었다. 꼴랴의 어머니는 민트 씨와 잎을 주셨다. 


그렇게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셨다. 러시아 전통차와 케익, 과일을 먹었다. 정말 배부르고 행복한 시간들, 정말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이 사람들과 가족이 되고 이 시간들이 6일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 아쉽다. 


러시아. 처음에는 두렵고 사람들도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았지만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좋다. 오늘 정말 일생 중에 기억에 남는 그런 하루가 될 것 같다. 민트 냄새가 아직도 난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운 꼴랴


마지막 여행


드디어 모든 일정이 끝났다. 남은 것은 오늘의 파티와 앞으로의 여행 그리고 고깔을 태우는 것 뿐. 근처 호수와 해변가로 가는 마지막 여행이다. 


노란 꽃들,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 탁 트인 평야에 나무 몇 그루, 나지마한 산들, 가슴이 뻥 뚫리게 만든다. 너무 아름다운 이곳의 자연, 햇살이 지나는 곳과 구름이 가리운 곳의 명암으로 구름이 지나는 곳마다 짙은 푸르름이 된다. 


낡고 작은 집들, 쌓아 놓은 장작개비, 집 앞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느낀다. 도로 바로 옆에 시냇물이 흐르고 몇몇의 러시아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휴가를 즐기고 있다.


산이 아주 멀리 보이는 이 광활한 대지의 주인이 이 사람들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예전 발해의 땅인 이곳이 우리의 땅 이였으면 지금도 그렇게 발버둥 치면서 살까? 버스가 매우 흔들려서 몇 자 적을 수 없었다. 4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에 도착하니 가까이 있는 호수의 경치가 정말 멋졌다. 방 배치를 하고 꼴랴와 같은 방을 쓰기로 됐다. 잠시 쉬는 동안 꼴랴와 국제관계,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꼴랴는 내 이야기를 신기한 듯이 받아들였다. 영어가 딸려 충분한 설명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나의 의중을 다 전달할 수 있었다.

우리는 호수로 향했다. 길거리의 개들, 닭 몇몇의 아이들 러시아 시골 풍경을 보는 듯 했다. 얼마 걸으니 호수에 도착했다. 얼마 크지 않다고 들었지만 막상 보니 우리에겐 큰 호수였다. 여러 아이들과 어른들이 수영을 하고 망설이다가 꼴랴가 먼저 들어가서 같이 들어갔다. 물은 미지근했고 꽤 깊었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니 피곤했지만 수영 후의 샤슬릭(돼지고기 꼬치구이)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사슬릭, 만두, 맥주를 먹고 여자애들이 사우나를 가는 동안 다시 맥주를 먹으면서 기다렸다. 


러시아 사우나에 갔다. 한국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은 없었지만 러시아라는 느낌 하나만으로 그냥 즐겼다. 낚시하고 싶다. 내일은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지 기대된다. 


마지막 밤의 아쉬운 작별


아침 일찍 눈을 떴다. 10시에 나호톳까의 해수욕장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을 느긋하게 보냈다. 들뜬 마음에 버스에 올랐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역시 넓은 초원, 햇볕이 없어서 좋았지만 해수욕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한 시간 즘 달린 뒤 해수욕장에 도착해 보니 기대 이하였다. 허나 재밌게 놀자고 마음먹으니 또 그것이 어찌 아니 재미있으랴. 


기회비용, 내가 이곳을 와서 얻은 것이 더 많은가 잃은 것이 많은가? 그건 한국에 돌아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긴 휴식의 시간이 끝나간다. 검토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정리해야겠다. 오늘밤도 많은 이야기 가슴을 열어 했으면 좋겠다. 그 단한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진지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밤이다. 보드카팀과 아리랑 곡선을 하다가 날을 꼬박 셌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 가고 있다. 


식사 후 바닷가로 가는 길에 꼴랴의 기분이 계속 안 좋아 보여 이야기를 했다. 내일이면 헤어진다는 것, 일의 스트레스 때문에 기분이 별로 인가보다. 바다 부두 길을 걸으면서 어느 할아버지가 낚아 올린 고기를 손에 들고 사진 찍었다. 비록 손에 비린내는 남았지만 그 바닷바람의 시원함 구름 낀 우중충한 하늘, 잿빛 바다, 그리고 사람들.. 이것이 이곳의 이미지이다. 


어디를 봐도 손에 술을 들고 있는 이곳의 사람들, 정말 놀기 좋아하고 잘 안 씻는 사람들이다. 버스를 타거나 옆을 지나가면 풍기는 악취, 그것도 이곳의 냄새, 도시의 풍경, 풍경을 머리에 담았다. 정말 쏜살 같이 지나간 2주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몸은 피곤하지만 오늘도 밤을 새야겠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저녁이 되고 고깔을 태우면서 우리의 2주를 마무리하러 나갔다. 바람이 세게 불어 힘들었지만 불이 달아오르고 재가 바람에 날려 마지막 불씨가 사그라지는 순간 이번 굿은 끝난 것이다. 다음의 더 좋은 굿을 만들기 위해서 고깔을 또 만들어야겠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기숙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친구들이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포옹을 하고 우는 사람들.. 눈물이 고여 떨어지려고 했지만 계속 참았다. 목이 메인다. 꼴랴와 나는 축구경기를 끝낸 것처럼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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