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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중세시대로 시간여행, 프라하

드디어 본격적인 프라하 여행이다. 시차적응이 안되 4시에 눈이 떠졌다. 일찍 일어나 산책에 나섰다. 밖은 매섭게 춥다. 처음나가서 본 프라하 길이고 새벽인지라 조금 두렵다. 발걸음을 옮겨 바츨라프 광장으로 갔다. 체코 역사문화의 중심지라는 이곳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이른바 프라하의 봄(벨벳 혁명)이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 거리에는 술취한 젊은이들과 맥도날드와 삼성이 보인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처럼 가운데 바츨라프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오 나의 여신님’ 알퐁스 무하


골목을 해메이다가 알퐁스 무하 박물관을 발견했다. 알퐁스 무하는 아르누보시대에 파리에서 활동했던 화가다. 아르누보(Art- Nouveau)란 1900년대, 세기의 전환기에 서구에서 유행했던 예술양식으로, 순수예술과 각종 실용적인 디자인, 상업적인 분야까지 포괄했던 화려한 장식 양식이다. 알퐁스 무하는 아르누보의 대표 화가이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은 과거 이 작가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듯한 일본 만화책에서 본 것이다. 중고교 시절 봤던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만화에서 본 양식이 바로 아르누보 양식이었다. 정말 굉장히 화려하고 섬세한 화폭은 만화나 포스터 같은 평면 예술에서 보여지는 한계에 도전하는 듯 했다.



카네이션, 백합, 장미, 수선화를 여인으로 의인화 해 그려놓은 작품과 4가지 예술 시, 춤, 미술, 음악을 모티브로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여성성을 아름답게 묘사한 고대부터의 예술작품은 어머니에 대한 포근한 향수와 성적 욕망, 미적 감각이 맞물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도 예술작품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또 눈길을 끄는 작품은 어두운 눈밭에 홀로 앉아있는 러시아 여인을 그린 대형화폭이다. 절망적 분위기가 감도는 전체적인 작품 이미지 속에 세심하게 묘사된 좌절한 여인의 얼굴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작품과는 완전히 상반된 작품이다. 


여세를 이어서 알퐁스 무하가 디자인한 체코인들을 위한 무대인 시민회관을 찾았다. 시민회관의 화려한 양식과 가운데 모자이크에서 아까 박물관에서 보았던 무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밖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간단히 보았다. 이 화려함 속에 사람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무하의 작품을 보고난 후 던지는 질문이다.



밖으로 나와 트램을 탔다. 체코의 트램은 차와 도로에서 공존한다. 어찌보면 참으로 불편한 교통수단이지만 거리를 한가롭게 바라보기 원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탈거리이다. 강을 건너자 까를교와 프라하성의 풍경이 나타난다. 다리건너 바로 내려 등산열차를 향해 걸어갔다. 한참 높은 언덕에 있는 전망대 근처로 데려다주는 케이블카 같은 역할을 한다. 등산열차에 오르니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빨간 지붕의 향연, 프라하


열차에 내려 탑에 올랐다. 과거 송전소로 쓰였지만 지금은 전망대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 영화에 보았던 장면이 펼쳐진다.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그대로 펼쳐진 풍경, 빨간 지붕의 구시가지 집들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빼어난 풍경이다.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오는 피렌체의 빨간 지붕 도시가 이런 느낌인가? 아름다운 프라하의 정경이다.

고딕 양식의 성당,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보인다. 함부르크가와 그 당시 영주들의 공간들은 잘 보존되어 있다. 영세 자작농이나 농노들의 집은 전혀 남아있지 않겠지. 저 시대의 인류문명이 수세기를 흘러 현재에 전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당시 인류가 꿈꾸었던 이상이 건축양식에 녹아있다. 하늘로 오르고 싶었던 고딕,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극치인 아르누보, 어디서 발로 된 것이든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빨간 지붕의 연속, 기하학과 미학, 그 속에 인간의 이상이 만난 중세시대의 도시, 프라하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네루도바 거리에 들어섰다. 건물마다의 독특한 자기 표시가 있는 거리에서 백조, 두개의 태양, 황금 열쇠 등을 사진에 담으며 언덕을 내려왔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쭉 줄지어 있는 거리를 내려오다보면 정말 과거에 와있는 듯 하다. 지금은 커피숍, 음식점, 기념품 가게,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안내서에 나온 집마다의 심벌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천정화의 미학, 성 미쿨라세 교회


성 미쿨라세 교회에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근사한 천정미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각 벽마다 그려져있는 예수의 일대기와 장식, 크게 조각되었있는 천사와 사도들. 천장을 프레스코화인 성미쿨라세의 축제, 삼위일체 신의 축하를 보며 평생을 바쳐 이 그림을 그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으로 새겨진 천사들과 악마의 모습들을 볼 때 ‘인간의 종교적 신념과 상상력은 어느정도인가’ 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그 많은 신화와 천사, 악마들을 어떻게 다 창조하였을까?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들으면 펄펄 뛸 소리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 수천년동안 인간이 본 환상의 조합이라고 해야하나. 


이런 성인들을 기리는 교회를 보며 ‘신념을 지키는 인간은 언제나 높게 평가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신념도 신념 나름이지만.. 그들이 신념이 현재 인간에게 전해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예수의 신화속에 더 큰 깨달음을 받아야 할 텐데.. 아무튼 천정화의 미학. 아름답다.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중세의 거울, 성비투스 대성당


조심조심 둘러보며 프라하성 정문을 지나 안쪽 문을 지나자 성비투스 대성당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인간의 왜곡된 욕망, 신의 입장에서 보면 바벨론 같은, 하늘에 닿고 싶은 욕망이 드러난 건축 양식의 건물이다. 뾰족한 삼각 지붕의 끝 장식은 접근하기 어려운 경외감을 상징하는 듯 하다. 정면 중앙의 거대한 원 모양 안의 문양은 이상향과 완벽을 찾는 것 같고, 굽어보는 사탄과 성인들의 부조는 인간에게 회개를 바라고 있다. 지극히 신 중심의 건물에 인간의 욕망이 깃든 이곳의 모습, 중세 시대의 마녀가 된 느낌이다.


들어가는 거대한 문이 묵직한 느낌을 주며 열린다. 사도들을 형상한 스테인드글라스, 거대한 금빛 성인 조각, 양을 칼로 찔러 제물로 삼는 그림이 보인다. 각 벽면의 공간마다 양쪽으로 순교자 혹은 대주교인지, 왕인지 모를 옛 성인들의 묘와 제단이 있다. 벽마다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가 각 성인들의 삶을 말하고 있다.



방사선의 제단을 돌아 성당 오른편으로 가자 ‘얀 네포무츠키’의 묘가 나온다. 은 2톤이 쓰인 이 묘는 화려함과 경건함을 둘다 갖추었다. 무덤의 위쪽은 성당 천장아래 금빛지붕 그 네 귀퉁이에서 내려오는 붉은 천을 은빛 천사들이 감싸고 있다. 지붕아래 얀 네포무츠키는 십자가 위의 예수를 두 손에 들고 측은하게 바라보며 당당히 사각 궤위에 서있다. 이 궤를 어린 천사들이 조각된 가운데 기둥과 두명의 은빛 천사가 지탱하고 있다.



이 사람의 생애는 어땠는지 매우 궁금하다. 예수보다 더 좋은 관을 가지며 영원히 인류에게 기억될 조각으로 남을 이가 무슨 업적을 남겼을까? 오래되서인지 그 수 많은 보석과 금이 빛이 나진 않는다. 영욕의 세월동안 보석은 빛을 바란다. 영원히 빛나는 가치는 인류에 남기는 정신적 재부 뿐.


전체 성당이 그 시대를 함축시켜놓은 듯한 정신적 자산의 압출물이다. 각종 보석과 고난에 찬 성인들이 세겨져 있는데 사실 아름답기 보다 눈살을 찌뿌린다. 성인들의 표정이 저 황금 집을 위해 수탈당한 고난에 찬 민중의 표정과 겹쳤기 때문이다.


꼴레뇨, 체코전통요리 코젤 스피리쉬 맥주


다시 22번 트램을 타고 체코 전통요리인 꼴레뇨를 맛보러 도심으로 향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해준 전통있는 가게가 마침 나와 동행이 가는 날부터 공사중이다. 국립미술관을 포기하고 숙소 1층에 있는 Fama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Fama가 전통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맛도 괜찮고 무엇보다 숙소에서 움직이기 싫었기 때문에 그냥 골랐다.


우리는 지하에 자리앉아 오늘의 메뉴인 꼴레뇨와 코젤 흑맥주를 시켰다. 코젤 흑맥주의 부드러운 목넘김이란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흑맥주의 텁텁함은 없고 그 깊은 맛과 부드러움이 체코 맥주의 명성을 말해준다. 기다림 끝에 꼬챙이 끼워나온 큰 족발 한덩이가 덩그러니 나왔다. 이걸 잘라서 머스타드와 절인 양파에 먹는 것이다. 


겉은 바삭하고 고소했고 속은 그냥 돼지고기 삶은 맛이었다. 부드러운 맥주 한 모금과 함께 프라하에서의 시간여행은 종착역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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