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대화'하고 있는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던지는 질문

by 카이
AI와 대화할 때, 우리는 정말 '대화'하고 있는가?

아침 출근길, ChatGPT에게 오늘 회의 아젠다를 정리해달라고 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답변을 받아들고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이 정말 내 고민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그럴듯한 문장들을 조합하고 있을 뿐일까?


퇴근 후 집에서 둘째랑 놀아주던 중, 첫째 아이가 "헤이 구글,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묻는 걸 봤다. 구글은 "저는 항상 좋아요!"라고 답하자 아이가 중얼거렸다. "거짓말쟁이. 넌 하루가 뭔지도 모르잖아."

열살 아이도 아는 이 단순한 진실을, 우리 어른들은 왜 자꾸 잊을까.


100년 전, 비슷한 의문에 사로잡힌 한 엔지니어가 있었다. 맨체스터 대학에서 제트 프로펠러를 설계하던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는 기계의 정밀한 작동 원리를 파고들다가 결국 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했다. 언어란 무엇인가? 의미란 무엇인가?

버트런드 러셀의 『수학원리』를 읽은 후, 그는 공학을 버리고 철학으로 전향했다. 제트 엔진을 만들던 손으로 이제 언어라는 더 복잡한 기계를 해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OpenAI, DeepMind, Anthropic...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코드를 짜다가 철학자가 되어가고 있다.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다가 '지능이란 무엇인가'를 묻게 되고, 데이터를 학습시키다가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삶의 형식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이 AI 시대에 새삼 뼈아프게 다가온다. LLM은 우리의 언어 패턴을 학습했지만, 우리의 '삶'을 학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랑해"라는 말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는 알지만, 사랑에 빠져 잠 못 드는 밤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각광받는 시대다. 같은 AI를 쓰면서도 누군가는 놀라운 결과물을 뽑아내고, 누군가는 "이 멍청한 기계!"를 외친다. 차이는 간단하다. AI와 제대로 된 '언어게임'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다.

우리 팀의 박 대리는 ChatGPT로 일주일 치 기획안을 15분 만에 뽑아낸다. 김 대리는 하루 종일 씨름해도 쓸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박 대리의 비결을 물었더니 의외로 단순했다.

"저는 제가 뭘 원하는지 먼저 명확히 해요. 그리고 그걸 AI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죠."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유명한 명제가 AI 시대에는 더 직접적인 의미를 갖는다. 당신이 AI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의 수준이 당신이 AI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답변의 한계를 결정한다. 모호한 질문에는 모호한 답이, 날카로운 질문에는 날카로운 답이 돌아온다.

더 흥미로운 건 AI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는 점이다. ChatGPT와 대화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두서없이 생각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논리 없이 말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AI는 우리의 언어 습관과 사고 패턴을 그대로 반영한다. 편견 섞인 질문을 하면 편향된 답이 나오고, 창의적인 프롬프트를 던지면 놀라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온다.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자기 기만'을 경계했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게 말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이 통찰은 더욱 중요해졌다. AI가 제시하는 그럴듯한 답변에 무비판적으로 기대지 않으려면, 먼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진정한 자기 인식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 스타트업 대표가 내게 물었다. AI 시대에 인간의 경쟁력은 무엇이냐고.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을 빌려 이렇게 답했다.

LLM은 맥락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맥락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다. AI는 "생일 축하"라는 말이 언제 쓰이는지 수십억 개의 예시로 학습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의 생일을 실제로 기억하고, 작년의 감동을 떠올리며, 올해는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새로운 축하 방식을 창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단순히 '이해'하는 것보다 언어로 '무엇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이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철학이다. 마치 요리책을 다 외운 사람과 실제로 요리를 해본 사람의 차이 같은 것이다. LLM은 모든 레시피를 알지만, 양파를 썰다 눈물 흘려본 적은 없다.


큰아이가 최근에 물었다. "아빠, ChatGPT가 숙제도 다 해주는데 나는 뭘 공부해야 해?"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ChatGPT는 모든 떡볶이 레시피를 알고 있지만,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 맛은 모른다고. 네가 할 일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맛을 찾아 가는 과정과 경험이라고.

우리 아이들은 AI와 함께 자라는 첫 세대다. 이들에게 AI와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재미있는 건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AI와 인간의 차이를 안다는 점이다. "ChatGPT스럽게 말하지 마"라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답변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언어게임의 규칙을 만들어가고 있다. AI를 도구로 쓰되 의존하지 않고, 협업하되 주도권은 놓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태도다. 정보를 암기하는 대신 경험을 축적하고, 정답을 찾는 대신 질문을 만들며, 규칙을 따르는 대신 규칙을 창조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제트 엔진을 버리고 언어의 세계로 뛰어들었듯, 우리도 낡은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뛰어들 때다. AI는 우리의 언어를 학습했다. 이제 우리가 AI와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갈 차례다.

오늘도 나는 ChatGPT를 켜고 묻는다. 너와 나 사이에 진짜 대화가 가능할까? 그러면 비트겐슈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질문을 바꿔라.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대화를 만들어갈까?'라고.

결국 AI와의 대화는 우리 자신과의 대화다. AI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언어, 우리의 사고, 우리의 한계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AI보다 우월한 유일한 지점이다.

맥락을 이해하는 것과 맥락을 만드는 것. 그 차이가 바로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우리는 단순히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언어로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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