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본질로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미래

모든 아이가 폭탄 제조자가 되는 시대

by 카이
사업의 본질은 마케팅입니다.
기술이 아니에요.


노트북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강연자의 목소리가 새벽 2시의 정적을 깼다. 우연히 클릭한 유튜브 영상이었다. 원래는 제품 개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것인데,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기술 기업의 99%가 망하는 이유'.


"마케팅은 핵폭탄을 터뜨리는 겁니다.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


강연자의 비유가 거칠었지만, 묘하게 와닿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옆에서는 1살 딸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고, 건너편 방에서는 10살 아들이 내일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자고 있을 시간. 그런데 나는 갑자기 이 아이들의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강연자는 계속 말했다. "B2B니 B2C니 하는 구분, 다 쓸모없습니다. 결국 모든 비즈니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폭발 이후의 세계


나는 화면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핵폭탄. 과격한 비유지만 정확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듯이, 진짜 마케팅은 '이전'과 '이후'를 나눈다. 아이폰 이전과 이후. 유튜브 이전과 이후. ChatGPT 이전과 이후.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모두 '이후'의 세계에서 태어났다. 10살 아들은 스마트폰이 없던 세상을 상상조차 못한다. 1살 딸은 태어나자마자 AI와 대화하는 부모를 봤다. 이 아이들에게 '폭발'은 일상이다. 매일 새로운 폭탄이 터지고, 매일 세계가 재구성된다.


문득 지난 주 아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빠, 나중에 뭐 하면서 살지?" 예전 같았으면 "하고 싶은 일 찾아봐"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답했다. "네가 어떤 폭탄을 터뜨릴지 생각해봐."


아들은 의외로 금방 이해했다. "아, 세상을 바꾸는 거?"


그렇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모두가 잠재적 폭탄 제조자다. 기술이 민주화되고 AI가 도구가 된 세상. 이제 중요한 건 폭탄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터뜨릴지를 아는 감각이다.


제3자의 철학


강연은 계속됐다. "2자 간의 계약에만 집착하지 마세요. 제3자를 끌어들이는 순간, 게임의 룰이 바뀝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멈칫했다. 최근 우리 회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정확히 그랬다. 우리는 A사에 솔루션을 판매하려 했지만, 계속 가격 협상에서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우연히 A사의 주요 고객사인 B사가 우리 솔루션에 관심을 보였다. B사가 "A사가 이 솔루션을 쓰면 우리도 혜택을 본다"고 말하자, 갑자기 A사의 태도가 바뀌었다. 우리는 A사와 B사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내 아이들이 배워야 할 사고방식이다. 1대1의 거래가 아닌, 생태계를 만드는 것. 가치의 네트워크를 짜는 것. 10살 아들이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와 다른 크리에이터, 그리고 로블록스 플랫폼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1살 딸이 자라서 10살이 되는 2035년. 그때는 아마 모든 거래가 다자간 네트워크일 것이다. 단순 판매자와 구매자의 시대는 끝났다. 모두가 동시에 생산자이자 소비자이고, 중개자이자 최종 사용자다.


숫자의 함정, 서사의 힘


"논리나 숫자는 상대방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강연자의 이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CPO로서 수없이 많은 제안서를 검토하고 작성해본 나로서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우리는 늘 숫자로 설득하려 한다. ROI 몇 퍼센트, 효율성 몇 배 향상. 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최근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나는 우리 AI 솔루션의 성능 지표를 길게 설명했다. 그는 정중하게 듣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그러다 내가 우연히 "우리도 스타트업일 때 밤새워 코딩하다 번아웃 왔었다"고 말하자, 그의 눈빛이 변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가 원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공감이었다.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결국 그는 스스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우리 개발자 5명이 하루 3시간씩 아낄 수 있다면..." 내가 제시하지 않은 숫자를 그가 만들어냈다.


이것을 아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설득하려 하지 마. 상대가 스스로 깨닫게 해." 하지만 10살에게는 너무 추상적이다. 그래서 나는 다르게 접근한다. 아들이 친구들에게 자신이 만든 게임을 소개할 때, "재밌어 보이지?"가 아니라 "뭐가 제일 재밌을 것 같아?"라고 묻게 한다. 친구들이 스스로 재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기술 너머의 가치


새벽 3시. 강연은 끝났지만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부엌으로 나가 물을 마시며 창밖을 봤다. 도시의 불빛들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이고, 누군가의 사업이다.


나는 문득 1살 딸의 미래를 그려봤다. 2040년대, 이 아이가 20대가 되었을 때. 그때는 기술이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닐 것이다. AI가 모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시대. 그때 이 아이가 가져야 할 무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왜'를 묻는 능력일 것이다. 왜 이것을 만드는가. 왜 사람들이 이것을 원하는가. 왜 지금인가. 기술이 '어떻게'를 해결해준다면, 인간은 '왜'에 답해야 한다.


10살 아들이 최근에 한 말이 떠오른다. "아빠, AI가 다 해주면 사람은 뭐해?" 나는 그때 답했다. "AI가 할 수 없는 것. 꿈꾸고, 원하고, 사랑하는 것."


마케팅이라는 이름의 철학


결국 그 강연자가 말한 마케팅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꿈을 파는 것이었다.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이 꿈꾸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내가 CPO로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만드는 것. 우리가 만든 AI 솔루션이 단순히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생겼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고방식이다. 무언가를 만들 때, 그것이 세상에 어떤 폭발을 일으킬지 상상하는 것. 혼자가 아니라 생태계를 만드는 것. 숫자가 아니라 의미를 만드는 것.


새벽 4시. 나는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1살 딸아이가 잠결에 뒤척였다. 이 아이가 자라서 무엇을 하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되, 기술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시장을 읽되, 시장을 만들 줄 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폭탄을 만들 것이다.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조금 더 의미있게 만드는 그런 폭탄을.


내일 아침, 아들이 일어나면 물어볼 것이다. "어제 그 게임 아이디어, 더 생각해봤어?"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작은 폭발을 준비하면서. 한 걸음씩, 미래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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