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 Dec 30. 2022

콘텐츠 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콘텐츠 기획과 야생학습

뉴스통신사 지역 본부 수습기자 출근 첫 날이었다. 둘째날이었나. (그게 그거 아냐?) 선배가 사건이 터졌다고 취재를 해오라며 전화번호를 줬다. 아마 사건 담당 형사의 번호였을 것이다. 칼부림 사건 아니면 기차 사고 사건이었다. 아직도 둘 중 뭐가 먼저였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 것도 모르던 나는 도대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뭘 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치만 하라고 하니까 뭐라도 해야 했다. 전화를 걸어 뭔가 물어봤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아마도 “어디에서 칼부림 사건이 났다” 같은 답을 들었고, 선배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당연히 혼이 났다. 아무 것도 취재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기차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뭘 물어야할지 몰랐다. “몇월 몇일 몇시 몇분에 어디에서 누가 기차 사고가 났대” 이 정도의 정보만 얻은 채로 보고 했다. 당연히 또 크게 혼났다. 기사를 쓸 수 없는 정보였다.


나는 둘중 하나의 사건 중 하나에서는, 담당 형사에게 8번이나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선배에게도 취재원에게도 지독하게 혼이 났다. (실제로 나중에 친해진 형사들 중에 “우리가 수습기자를 키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게 일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나머지 사건도 사정이 나은 건 아니었다.


이런 식이다.


나 : “00에서 술먹고 칼부림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대요”

선배 : “피해자는 몇살이고 성별이 뭐래”

나 : “모르겠습니다..”


전화를 걸어 묻는다. 나름 가해자의 성별과 나이까지 알아간다. 칭찬 받을 것 같다. 하지만.


선배 : ”칼은 몇센티래“

나 : ”…“


다시 전화를 건다.


”찔렀대 그었대?“ “그었으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찔렀다면 몇 번?“ “상처는 몇 센티?“ “어느 병원? 상태는?” “아는 사이래?” “신고는 누가했대?“


물어볼 것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때는 정말 몰라서 한두개씩만 물어보고 다시 보고하고 깨지기를 계속했다. 나도 왜 그렇게까지 멍청했을까. 그러니 전화를 받는 사람도 보고 받는 사람도 짜증이 안 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기차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의 성별, 나이, 선로에 들어가게 된 경위, 그 전에 어디를 방문해 누굴 만났는지, 몇호선 어느 방향인지, 치였는지 깔렸는지, 누가 발견했고 발견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 등등등.


어리버리했던 나는 그걸 한두개씩 주섬주섬, 선배에게 혼이 나고서야 다시 물어보고 왔던 것이다.


이 두 사건의 혹독한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실히, 굉장히 빠르게 배웠다. 사건 취재는 “내가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기사에 담기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야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는 것, 국가가 적법하게 조치했는지를 감시해 차별화된 기사를 쓸 수도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정확한 정보를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단 것.


기자 일은 그만 뒀지만 여전히 그때 배운 걸 써먹는다. 글을 쓰거나 편집할 때, 콘텐츠 상품을 만들 때, 인터뷰 기사를 쓸 때 등 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콘텐츠와 작가에 대해 마치 내가 그걸 만든 사람인 것만큼 알아가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밖에도 모든 일의 토대가 된다.


당시에는 선배가 정말 야속했다. 선배는 심지어 무슨 사건인지조차 안 알려주기도 했다. 그냥 ”전화해서 물어봐“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고, 친절한 설명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럼 난 전화를 걸어 통화 중 눈치게임을 시작하고.. 저도 왜 당신께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뭐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정말 긴장되고 불편했던 마음은 기억에 남는다. 말 끝을 “다나까”로 해야 한다는 주문을 들었던 건 그냥 귀여운 정도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한동안 출근해서 식은땀을 흘리거나 혼이나는 꿈을 꿨다. 아직도 ‘그 사람은 꼭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혹독하게 배워 잘써먹고 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배운 점은 많았지만 함께해서 거지같았고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싶은.


그래도 이제는 앙금같은 건 없어서, 그렇게 출근하자마자 나를 현장으로 바로 몰아넣은 게 일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생각을 한다. 취재 방법을 가르치는 어떤 커리큘럼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취재 방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지? 직접 취재하게 하고 피드백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취재 방법론 같은 건 없다.


야생학습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땐 잘 이해를 못했다. 그리고 요즘 같은 때엔 야생학습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나는 야생학습에 낯설고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의 가장 첫 직업적 배움은 미친듯한 야생학습에서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계속 뭔가를 실제로 경험하면서 배워오고 있던 것이었다. 자격증이 없어서, 뭔가 정규 커리큘럼을 따라 배운 적이 없어서,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건 틀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나는 일부만 알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내가 아는 게 없는 게 맞다. 그러나 자격증과 정규 커리큘럼을 거친 적이 없어서 아는 게 없다고 한다면 그건 틀린 것이다.


콘텐츠 일에는 정답이 없다. 실력이나 기술을 측정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도 없다. 모든 일이 그런데, 콘텐츠의 성적 같은 아웃풋은 꼭 인풋의 양과 질에 비례하지는 않으며 뜨는 것에 대한 분석은 모두 사후분석이라 그런 분석이 정확한 이유를 짚는다 할 수도 없다. 결과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외부적 환경이나 운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불안해지고 무슨 자격증을 땄거나 뭘 배워서 하는 일도 아닌데 내가 도대체 뭘 잘하는 사람이며 내 일의 핵심 스킬은 뭔지 혼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콘텐츠 현장에서 부딪히고 고민하며 뭔가를 만들어봤다는 것 그 자체에 배움이 있다. 매일 실제 업무에서 필요한 것을 야생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안에서 플레이를 해봤고 배운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곧 나의 지식이자 핵심 기술이다. 배운 것을 정리하고 그걸 발전 시켜나가야 할 뿐이다. 그것이 가장 좋은 포트폴리오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콘텐츠 기획자의 일>에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