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오프 이후 - 슬슬 정신차리며 나아가기

Layoff를 이야기하다 [5]

by Laugh and Meditate

팀동료들과 연락을 취했더니, 다들 팀장과 회사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동료 중 한명은 사내 커플이었었는데, 그의 아내도 이전에 육아휴직 중 레이오프를 당했었다며, 계속 이런일이 벌어진다는 것에 회사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우리 매니저는 우리 팀은 폭파해놓고, 본인은 다른 팀의 팀장으로 옮겨갔다. 본인도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라고 생각되면서도, 일말의 배신감같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전에 VP와의 면담을 했던 사건에 대한 팀원들에 대한 보복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팀원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크게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회사에 남아있는 동료들은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LinkedIn에 recommendation을 써주겠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본인의 팀에 뽑고 있는 자리가 있다며 hiring manager와 연결해주었다. 레이오프 소식 1주일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간절한 마음은 있었지만, 사실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아직도 너무 잠이 부족해서 정신이 멍하였고, 나름 급하게 인터뷰 준비를 했지만, 내가 봐도 상대가 확신을 가질만큼 답변을 하지 못했고, 결국 기회는 물건너 갔다.


비자문제도 방법을 찾아봐야했는데, 다행히 몇 달전에 H-1B비자상태로 레이오프를 당했다가 다시 취업한 대만친구가 많은 조언을 주었다. 현재 회사에서 나의 고용이 끝나기 전에, H-1B에서 관광비자와 같은 다른 비자로 status변경 요청을 하라는 것이었다. Status변경 요청이 들어간 이후에는 그에 대한 결정이 나올 때까지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고, 적어도 3-4개월 이상 걸리므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했다. H-1B는 한번 받으면 3년간 일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회사에서 일한 기간을 빼고, 남은 기간은 내가 다시 고용이 되면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결국 비자 변경신청을 하고, 그동안 새로운 고용주를 찾으면 다시 추첨을 받지 않아도 내 H1-B비자를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이가 태어난지 두달 쯤 되자 친정엄마는 예정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힘들게 이어가던 모유 수유를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모유양이 부족해서 지속적으로 펌핑에 의존하여 수유를 해왔는데, 그 과정이 너무 기빨리기도 했고, 아이가 자는 잠깐의 시간에도 펌핑을하고 있자니 가뜩이나 부족한 휴식시간이 날아갔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게 되었다. 의지할 가족없이 육아며 생계며 우리 두 부부가 헤쳐나가야하는 상황이없다.


분유를 먹이기 시작하니, 내가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좀 더 용이해졌고, 남편이 아이를 보는동안 하루에 2-3시간 정도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출산 후 처음으로 가지고, 회사지원도 하고, 레쥬메도 고치고, 인터뷰 연습을 시작해 나가니 마음도 조금 안정되고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출산 후 10분이상 걷기도 힘들었던 상태에서 몸도 서서히 회복이 되어가기 시작했고, 아파트에 있는 gym에가서 짧게나마 트레드밀이라도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10분에서 15분, 20분 시간을 늘려가며, 서서히 다리의 근력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퇴사했던 이전의 VP는 Hewlette Packard Enterprise (HPE) 로 옮겼는데, 나의 layoff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팀에 새로운 Product marketing manager를 뽑고 있다며,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너무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바로 지원을 하였고, 몇 주후에 처음으로 대면 면접인터뷰까지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외출을 할말큼 몸이 회복되어있었고, 몇 시간동안의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이후 연락이 없어서 안되었나보다 하였다.


어느 덧 통보받었던 퇴사일이 다가왔다. 이미 육아휴직 중이었기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회사에 컴퓨터와 뱃지를 반납하러 가야했다. 베이비샤워를 해주고, 선물을 챙겨주었던 동료들이기에 아이도 소개시킬 겸, 유모차를 끌고 회사를 방문했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아기와 함께 갔기에 다들 축하의 인사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열심히 인터뷰 보는 중이라는 나의 안부를 전하고 작별을 고했다. 두 달전의 나라면 이렇게 웃으면서 인사하기 힘들었을텐데, 그나마 두 달사이 나는 마음도 체력도 약간은 회복이 된 상태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고, HPE에서 오퍼를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겨우 잡서치를 시작한 상황이라, 향후 몇 달은 더 구직활동을 하리라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빨리 오퍼를 받다니, 너무 기쁘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함께 일했었던 VP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몇 일후에는 딸아이의 100일이 찾아왔다. 백일상을 함께차릴 식구들은 없었지만, 간단히 백설기떡을 주문하고, 그나마 어여뿐 옷들을 몇개 골라 입혀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기념을 하였다. 미국이라는 낯선 곳이라 의지할 곳이 없고, 레이오프까지 겪으며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한국의 친구들이 하듯이 신생아 시절 전문적인 사진을 남긴다거나, 예쁜 백일상을 차린다거나 하지 못했던 것이 그 당시에는 매우 속상하였었다. 시간이 흐른 이제는, 남편과 나의 핸드폰으로 찍은 그 시절의 사진들을 볼때마다, 그 힘든시간동안에도 크게 다투지않고 함께 웃었고, 아이 사진은 열심히 찍었고, 한 가족으로 어떻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지 배워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오퍼도 받았고, severance package로 몇달간 월급도 나오는 상황. 육아휴직이 연장되었다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지고 일에 복귀를 할 준비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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