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오프 이후의 감정들

Layoff를 이야기하다 [4]

by Laugh and Meditate

지난 번 글을 쓰면서 갑작스레 찾아온 울컥하는 마음과 눈물에, 10여년전의 감정이 내 안에 아직 남아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못하였던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오늘은 그 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잊고 있었는데, 그때 많이 외롭고 힘들었었구나. 억울함, 서러움, 외로움. 상처, 혼란, 아픔등과 함께 깜깜한 벽에 가로막힌 "막막함" 이란 감정이 떠오른다.


외국인으로 미국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학교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미국에 직장을 잡았고, 운좋에 H-1B비자도 신청한 첫 해에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이란 곳의 제도나 환경이 아직 낯설기는 하지만, 남편과 함께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조금씩 정착해가며, 내 꿈을 펼쳐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레이오프의 소식을 들은 순간, 미래에 대한 모든 기대가 날라가버렸다. 외국인 신분으로서 나의 비자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해졌고, 6개월 후에 우리가 계속 미국에 있을 수 있을런지 알 수 없었다. 남편과 나 모두 한국의 안정된 직장을 두고, 미국생활이라는 모험을 선택했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둘 다 직장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까지 겪어본 적도, 오만하게도 겪어보리라 생각해보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미국에 남기로 결정했을때, 외국 경험도 없이, 30대에 건너가서 잘 적응할 수 있겠니라는 걱정어린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그들이 맞다는 걸 증명한 것만 같고, 내 자신의 능력이 여기까지인 것만 같다는 좌절감도 들었다.


또한 이민자로서의 삶이란 이토록 불안한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회사안에 있을때는 남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지만, 회사를 나오는 순간, 외국인인 나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내 삶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모래성처럼 언제든지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허무했다. 미국 동료들은 그나마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기도 하고, 비자문제가 없으니 좀 쉬다가 새로운 직장 찾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국에 온지도 얼마 안된나는, 그리고 신분도 불안한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야하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었다. 당시 bay area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아는 한국분들도 많지않았고, 누가 어떤 조언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생각에 빠져있을 여유가 별로 없었다. 갑자기 차가운 물에 던져저서, 왜 이런일이 내게 벌어졌나고 울어봤자 소리쳐봤자 들어둘 이가 없었기에, 팔을 허우적대서라도, 가라앉지 않고 버텨야했고, 다시 물가로 올라올 방법을 찾아야했다.


넘어지면 아플수밖에 없는 것. 나의 감정들은 아프다고 힘들다고 위로받고 이해받고 싶다고 외쳐대지만, 어린시절처럼 나를 안아주고 일으켜세워줄 보호자는 없었다. 내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두운 터널 속을 하루하루 걸어나가는 수밖에. 지나고보니 용기있게 씩씩하게 걸어나왔으면 좋았으련만 그 당시 내 마음은 그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었다. 다만 나의 강점(?)인 참을성으로, 두려워도 무서워도 꾹 참고 그 시간들을 버텨낸 것같다.


무엇보다도 당장 눈앞에 빽빽 울어대는 신생아가 있었고. 처음겪어보는 이 외계인같은 존재를 이해하고, 그녀가 안전히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꽉차고, 매일 5분만 더 자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상처를 바라보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집중했고, 해야할 일들을 하기에 바빴다.


그 당시 나의 상처와 아픔을 좀 더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인생 첫 레이오프라는 시간을 내가 성숙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을까? 사실 많은 이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감정을 빨리 벗어나려하고, 다른 일들에 집중함으로써 애써 외면하려 하기도 같기도 하다. 불편한 감정을 맞닺뜨리는 것은 아픈 일이고,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그리고 그 당시 내게는 그러한 용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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