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off를 이야기하다 [7]
7개월된 아이와 단둘이 12시간의 비행이라니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항공사 승무원분들이 웃는 얼굴로 바시넷도 잘 설치해주시고, 어린아기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겟다는 표정으로 지나갈때마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눠주신다. (역시 국적항송사 승무원들의 친절함이란). 내 양옆으로는 여자 대학생과 내 엄마뻘에 가까운 아주머니가 앉으셨는데, 두 분다 애 때문에 쩔쩔매는 나를 도와주려 하였다. 수줍고 애띤 얼굴의 대학생 친구는 자기 가방에 달린 인형으로 징징거리는 우리 딸내미를 달래었고. 아주머니께서는 밥도 못먹고 애를 안고 있는 나에게, 선뜻 자기가 잠깐 앉아줄테니 밥 먹으라고 하신다. 힘겨운 순간이었기에 작은 친절도 너무 값지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띠를 매고 비행기를 앞뒤로 걸어다니며 보내었지만. 낯선이들의 친절에 감사했고, 마음만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인천공항에 도착. 한국은 무더운 여름의 시작이었다. 2년만에 돌아와 친정집에서 머물며, 육아에 잠시 숨을 돌릴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약간이나마 하였지만, 왠걸 아이는 한참 엄마에 대한 집착이 심한 시기였고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욕실에 갈때도 문을 닫으면 문 앞에서 대성통곡 울어서, 문을 항상 열어놓아야 했고, 무슨 일이든 잽싸게 마치고 아이에게 달려가느라 마음이 급했다.
어찌보면 애 때문에 정신없어서, 비자에 대한 걱정이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고 할 시간없이 보냈던 것같다. 그냥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 먹고, 먹고싶었던 떡볶이가게에 가고, 밤에는 미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야식도 시켜먹고, 나름 즐거웠던 기억만 생각난다. 애가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이유식을 너무 안먹어서, 그거 신경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에너지는 방전이었으니까.
그렇게 남편없이 독박육아로 한국에서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나의 H-1B는 무사히 승인이 되어, DHL로 바로 내게 서류가 배달되었고. 그 서류를 가지고 나는 바로 비자 인터뷰를 잡았다. 아침 8시 미국대사관에 잡힌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 이른 시간인데도 지하철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바쁜 출근걸을 나서는 직장인의 무리에 있었는데 말이다. 유학가기전 일했던 회사의 사옥도 대사관 근처에 있어 이전 생각도 새록새록 하다. 갈때마다 왠지모르게 긴장되는 미국비자인터뷰이지만, 별 문제없이 인터뷰가 끝났고, 1주 내로 여권이 배송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처음에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비자관련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집에 돌아와 나는 출근 일자를 회사와 논의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취업에 필요한 비자 인터뷰로 간 한국방문이니 회사에서 비행기티켓도 지원을 해준단다.
사실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기전까지 비자문제가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직장이 없는 것도 힘들지만, 비자로 인한 신분의 불확실성은 그 상황에 10배 이상의 무게감을 더 실어넣는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비자거절이었고, 예정보다 3개월 출근이 늦어진 것은 이후 내게 그닥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지만, 뜻하지않은 장점도 있었다.
우선 원래는 아이낳고 12주 안에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었던것이, 레이오프로 인해 2달정도 연장되었고, 비자문제로 다시 3개월 더 연장되었다. 결국 아이가 9개월이 되었을때 일을 다시 시작하였고, 마침 기다리면 데이케어에 자리도 나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와 떨어질 수 있게 되었다.
한달 간의 독박육아는 육체척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는 아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아이와 엄청 가까워졌다. 아이의 작은 행동, 표정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 무얼 원하고 있는지가 감이 왔고,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이어짐이 그 아이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이후로는 아이와 24시간 붙어지낼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 돌아보면 값진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과의 시간. 결혼 이후로 직장생활 하느라, 미국에 있느라 식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은 항상 아쉬운 일이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강제로 한달 간 친정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를 같이 지켜보고, 어떻게하면 이유식을 더 잘 먹여볼까 같이 고민하고, 함께 웃고 떠들고, 잊지 못할 추억들이다. 당혹스럽고 도움이 필요했던 시기에,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이었다.
전화위복이란말도 있고, 영어로는 blessing in disguise라 하기도 한다. 원하지 않았던 일, 당황스럽고, 힘겨운 경험이었지만, 어둠속에서 별이 더 잘 보이듯이, 타인의 친절함, 가족들의 따뜻함, 작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비로소 인지하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첫 번째 레이오프부터 다음회사로의 첫 출근까지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들을 한번 정리해서 써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