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로의 복귀, 석 달 후 다시 찾아오는 위기

Layoff를 이야기하다 [9]

by Laugh and Meditate

레이오프 후 첫 출근. 새로운 회사에서의 시작은 처음엔 순조롭게 흘러갔다. 익숙지 않은 엄마라는 자리에서 아이와 붙어만 지내다가, 회사에 나오니 새로운 활력도 느껴지고, 더 익숙한 공간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일했던 동료들도 여럿 있어서 낯익은 얼굴들을 보는 것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팀에 들어오고 나니, 나의 매니저인 T와 그 밑에, 시니어 매니저 한 명, 나, 그리고 MBA를 갓 졸업한 두 명의 주니어들이 있었다. 결국 팀 내 시니어 매니저 한 명을 빼고는 모두 회사에 처음이고, 나를 포함한 두 명의 MBA 졸업생들은 product marketing manager를 처음 맡는 상황이었다. Symantec에서도 알고 지냈었던 T는 Utah에 살면서 remote로 일을 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출장을 오는 형태로 일을 했다. 이전 회사에서 Product marketing manager들과 전략을 짜는 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업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이 많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매니저가 바로 옆에 있지 않다는 것은 아쉬움이 많았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아이를 데이케어에서 픽업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느라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아직 새벽에 한 번씩 깨는 아이 때문에 여전히 잠은 부족하고, 피곤했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활력으로 잘 버텨나갈 수 있었다.


잠깐 사족을 붙이자면,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Hewlett Packard는 실리콘밸리의 초기 기반을 닦은 회사 중 하나로, Palo Alto에는 두 창업자가 같이 일했던 garage가 아직 보존되어 있다. 창업자 가족들의 기부활동 또한 Bay Area전체에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초기의 활력과 영화가 많이 사라진, 오래된 미국기업의 전통과 가족적인 분위기가 남아있는 회사였다. 20년 30년이 넘게 일해온 사람도 많았고, 미국의 신생 테크기업보다는, 한국의 대기업의 문화에 가깝다 느껴졌다. 그래도 그 당시 CEO였던 Meg Whitman은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software조직을 맡고 있는 최고 책임자인 Sue까지 여성임원들의 리더십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나에게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우리 팀은 B2B security software의 마케팅 조직이었는데, 당시 시장 1위 제품을 담당하고 있었고, 대기업, 정부 등 큰 기관들을 통해 꽤 큰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품이 오래되어 여러 기술적 한계가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규 제품을 전체 portfolio안에 추가하는 것이 내년도 목표였다, 당시 보안 소프트웨어시장은 크게 성장하는 중이었고, VP는 내가 입사할 때, 향후 회사는 보안시장에 더 큰 투자를 할 계획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키우기 위해 나를 뽑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회사의 전략적 중요성이 담긴 신규 제품의 출시 및 마케팅 업무를 맡은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sales training에 사용할 제품소개자료를 만들었는데, VP 한테 여태까지 팀에서 만들어진 소개자료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고, 매니저와도 원만한 관계로 지내며, 이렇게 미국에서의 나의 회사생활은 안정을 찾아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입사한 시점은 HP/HPE라는 비효율적인 거대 공룡이 커다란 방향전환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바로 직전이었다. 하드웨어로 시작한 HP라는 조직은 소프트웨어 사업을 M&A를 통해 키워왔는데, 결국 소프트웨어사업에 대한 역량의 한계를 깨달았고, 이를 분리,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입사 후 몇 달 후 발표되었다. 소프트웨어팀 내에 성장가능성이 높은 보안시장 삼품을 키운다는 전략 또한 흔들리게 되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회사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게다가 팀에서 유일하게 경험이 많았던 시니어 매니저는 T와의 불화로 인해, 해고되었다. 불안해하는 팀원들에게 T는 그가 기대되는 만큼 기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예산 삭감의 목적은 아니라고 담담히 이야기하였다. 결과적으로, 내가 팀원 중에 가장 시니어가 되어 버렸고, 팀장은 Utah에 있는 상황에서, 나는 사무실 내에서 다른 팀과의 민감한 관계 관리와 리더십과의 조율에 빈번히 노출되는 상황이 되었다. 불안함을 느꼈는지, 팀 내 주니어 한 명은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겨버렸고, 팀은 5명에서 3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회사전체적으로나 팀 구성면에서나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실패를 피하기 위해, 나 자신을 더 몰아붙이고,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들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소비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나를 더 힘겨운 상황으로 이끄는 결정들을 했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내가 겪은 회사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6개월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다음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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